녹음이 짙어질 무렵이었다. 침대를 보러 가기로 한 주말 오후, 외출 준비를 마친 나는 거실을 둘러보다 책장 위에 올려놓았던 무언가가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여보, 여기 사진들 또 치웠어?” 아내에 대한 항의였다. “지저분하잖아. 사진을 놓고 싶으면 액자에 넣으란 말이야!” 생각이 짧았다. 매번 이런 식의 역공이 펼쳐질 것을 알면서도 똑같은 방식으로 선제공격한 것이다. 그래도 반격은 해봐야지. “괜찮은 액자를 구할 수가 없다니까!” 이기기 위한 억지는 아니다. 엽서만 한 크기 사진을 액자에 넣는다는 것이 촌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특히 액자의 플라스틱 투명 커버는 사진의 촉감을 무참히 짓이겨버린다.
목수의 공방은 경기 파주 들녘에 있었다. ‘우’씨 성을 가진 목수의 공방이다. 손님을 맞이하러 나온 우 목수는 예수처럼 곱슬곱슬한 다소 긴 머리였고 체구는 옹골차게 보이지 않았다. 속으로 ‘저래서 침대를 제대로 만들려나’ 하고 생각했는데, 문뜩 예수님도 한때 목수였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머릿속에 떠오른 성경 구절.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 11장 28절. 나는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편히 쉴 수 있는 좋은 침대를 원하옵나이다!’ 떡갈나무 테이블에 앉은 아내는 우 목수로부터 침대 프레임 제작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었다. 나는 전시된 가구들을 구경하다 호두나무 침대 머리 위에 걸린 액자를 발견했다. 침대와 같은 빛깔이 나는 원목 액자에 담긴 사진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침대 위 액자는 마치 창틀처럼 보였다. 맑은 날씨였지만, 우 목수의 공방 창밖에는 빗줄기가 시원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액자 속에 담긴 사진은 인터넷에 떠도는 이미지를 아무렇게나 다운받아 인화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목수에게 물었다. “사진도 찍으세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취미로 설렁설렁 찍는 실력은 아니신 거 같아요.” 목수가 사연을 풀어놨다. “사진 찍는 게 직업이었죠.”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다 아는 출판사에서 사진을 찍었단다. 나무를 다루는 일은 단지 취미였는데, 체질에 맞는 자신을 발견했다. “각도가 조금만 틀어져도 전체가 달라진다는 점이 사진이랑 가구랑 똑같더라고요.” 나는 목수의 말에 몇 마디 덧붙이고 싶었지만,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을 문장으로 조립할 수 없어 고개를 주억거리기만 했다.
보름이 지났을까? 우 목수의 형이 침대를 가져왔다. 예수님에게 기도를 드린 덕분인지 호두나무 침대의 다리는 안방의 집성목 바닥에 단단하게 뿌리를 내렸다. 매트리스를 올리고 침대에 누워 목수의 공방으로 외출하던 날을 떠올렸다. ‘아내가 치워버린 사진은 어쩌지?’ 한동안 나의 두 눈을 즐겁게 해주었던 고 한영수 선생의 사진들은 전시장 기념품 코너에서 판매하는 엽서만 한 크기였다. 지난해 겨울 열렸던 한영수의 사진전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When the Spring Wind Blows)>는 하얀 액자들이 걸려 있었다. 1960년 전후 ‘우리가 몰랐던 여인들’을 찍은 사진이었다. 나는 아내가 치워버린 여인들 사진 하나를 꺼내 작은 방 책장에 다시 올려놓았다. 트렌치코트를 입고 길을 건너는 여인의 뒤태가 담긴 사진이다.
유난히도 더웠던 날씨 때문이었을까? 책등에 기대어 있던 트렌치코트 여인은 활처럼 구부러져 있었다.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 관측이 시작된 1940년 이래로 가장 더운 여름이었다니 트렌치코트 여인이 지칠 만했다. 아내의 충고대로 사진을 액자에 끼워 넣어야 할까? 고개를 꺄우뚱거리고 있는 참에 스마트폰에서 메일 알림이 울렸다. 트렌치코트 여인을 찍은 한영수 작가의 딸이자 한영수문화재단 대표 한선정씨가 보낸 메일이었다. 목수가 운영하는 독립서점에서 전시회를 연다는 소식이다. 순간, 내 머릿속에는 우 목수의 공방이 떠올랐다. 하지만 메일에 적힌 목수의 성은 ‘우’가 아니라 ‘최’였다. 그이도 원래 사진을 찍었다. 월간 ‘전원생활’의 사진기자였다. 매체가 요구하지 않은 자기만의 사진도 틈틈이 찍었다. 그것들을 엮어 <논>(2007), <흐름>(2010), <소>(2011), <유랑>(2015) 등의 사진 연작을 발표했으니, 최수연이라는 이름 앞에 ‘전원생활 사진작가’라는 호칭을 덧붙이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겠다.
최수연 작가는 3년 전에 <목수> 사진전을 열었다. 측면대패, 나비날, 수평추, 등대기톱 등 목수였던 장인어른의 연장들을 찍은 사진들이다. 연장 주인은 세상을 떠났기에 그것들은 ‘유산’이 되었다. 한평생 움켜쥐며 시름했던 나무 장인(匠人)의 손(手) 흔적들이 밴 유산인 것이다. 생전의 장인은 물푸레나무를 깎아 창틀을 짰다. 그의 손을 거친 창문은 몇개나 될까? 사람이 사는 집의 고갱이는 지붕이나 벽이 아니라 창(窓)일지도 모른다. 창이 없는 장소는 집이 아니라 동굴일 테니까. 하루하루의 삶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을 보며 시작된다. 고로 장인이 만든 것은 우리들 삶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경기 여주의 독립서점에서 열리는 <수연목서X한영수: 여름에서 겨울> 전시는 장인과 아버지가 남긴 위대한 유산의 협업이다. 한선정 대표는 한영수 작가의 사진을 인화하고, 최수연 작가는 장인으로부터 전수받은 목공예 기술로 제작한 액자에 한영수의 사진을 넣는다. 최 작가는 “프레임이 사진 전체의 분위기를 고정시키거나 확장시킨다”며 “원목 프레임은 나무가 가지고 있는 물성이 다른 소재보다 훨씬 풍부한 감성을 내뿜는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한다. 한영수 사진에 사용한 나무는 로즈우드, 티크와 호두나무다. 호두나무는 가장 무난한 나뭇결과 색을 보여주며, 티크와 로즈우드는 고전적이고 중후한 멋을 각각 뿜어낸다. 프레임의 목질만큼 중요한 것은 사진과의 어우러짐이다. 액자가 사진 감상에 방해를 주어서는 안 되는데, 최 작가는 “사진의 상상력을 확장시킬 수 있는” 볼륨감을 고민했다.
전시에서 액자식 구성을 보여주는 사진이 하나 있다. 가을비 내리는 명동 거리를 걷는 여인을 찍은 호두나무 액자에 담긴 사진이다. 1960년 전후의 명동 거리인데, 한영수는 건물 내부에서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사진에 담았다. 셀프 포트레이트를 제외한 모든 사진에는 사진을 찍는 이의 모습이 담길 수 없다. 따라서 사진을 보는 우리는 사진 찍는 이의 존재를 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한영수는 사진 안에 창틀을 보여줌으로써 자기 위치를 관객에게 알려준다. 화면 구성을 돋보이게 하려는 목적의 얕은 사진술은 아니다. 그렇게 찍어야만 사진의 상상력이 펼쳐지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왼손에는 하얀 장갑을 들고, 오른손은 손잡이 위쪽 우산대를 잡고 있는 진주 귀고리를 한 여인이 걷고 있다. 프리다 칼로처럼 짙은 눈썹에 이목구비도 뚜렷하다. 그녀를 지나친 사내의 뒷모습은 애써 그녀를 외면하는 것처럼 걸음걸이에 힘이 들어간 것처럼 보인다. 지나치기 직전 사내의 얼굴은 우산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진주 귀고리를 한 여인을 훔쳐보고 있을 것이다. 아무도 이 위풍당당한 여인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는데, 사진을 찍는 이도 마찬가지라서 창가에 몸을 숨기고 셔터를 누를 수밖에 없었다.
찰칵! 롤랑 바르트가 이상한 일이라고 했지만, 다른 많은 사람들도 그이처럼 좋아하는 것이 바로 카메라 셔터 소리이다. 바르트는 “사진가의 대표적인 기관은 눈이 아니라(눈은 나에게 두려움을 준다), 손가락”이라고 <카메라 루시다>(열화당)에 적는다. 지속의 시간에서 어느 한순간을 잘라내는 카메라 셔터 소리의 음원은 악기 연주자처럼 손끝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괘종시계와 손목시계를 좋아하는 바르트는 “원래 사진기재는 고급가구 제조기술과 정밀기계에 속했음을 상기”하며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카메라는 무엇인가를 보게 하는 괘종시계였으며, 나의 내부에 있는 어떤 구식사람은 아직도 카메라에서 목관악기의 생생한 소리를 듣는다.” 쇠, 티타늄, 플라스틱 이전에 카메라의 외피는 나무였다.
1960년 전후 서울의 풍경을 담은 한영수 사진의 매력에 빠진 나와 최수연 작가도 구식 사람일까? 시계 괘종 같은 울림은 나무로 만든 스피커를 통해 들어야만 제맛을 느낄 수 있다는 감수성이 있으니 말이다. 나는 위스키 향이 밴 호두나무 침대에 누워서 한영수 선생의 사진들과 어울리는 원목 액자들을 떠올려 본다. 해 질 무렵 긴 그림자가 드리워진 한강대교에서 개와 함께 다리를 건너는 사내의 사진은 중후한 맛이 묻어난다는 로즈나무가 어울릴 것 같고, 남해의 다랑논처럼 보이는 설경의 뚝섬은 고전적인 티크가 어울리지 않을까? 눈밭에 헤치고 낸 길처럼 보이는 나무줄기 너머의 얼어붙은 한강은 백참나무 액자에 넣었다고 하는데, 사진 속 나무줄기의 옅은 명도와 어우러질 것 같다. 사진은 원래 그와 어울리는 나무로 만든 방에 있어야 하니까. 카메라의 어원은 라틴어로 ‘방’이다. 사진과 궁합이 맞는 액자는 ‘카메라 옵스큐라(어두운 방)’가 아니라 ‘카메라 루시다(밝은 방)’에 걸릴 것이다. 지나간 계절의 감각들은 나무의 나이테처럼 사진에도 각인될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