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역 1번 출구를 올라오면 수많은 쪽지가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해밀톤호텔 옆 골목 앞에는 포스트잇이 놓인 작은 책상이 마련돼 있고, 지나가는 시민들은 각자의 마음을 담아 메시지를 남긴다. 때로는 음식이나 음료수, 꽃 등을 놓고 가기도 한다. 어느덧 1주기가 다가오는 10·29 이태원 참사 현장은 추모와 애도의 마음들로 채워지고 있다.
포스트잇에 적힌 많은 메시지는 희생자의 명복을 비는 것들이다. 그다음으로 많이 보이는 내용이 ‘미안하다’는 것이다. 이태원 지역 주민, 참사 당일 현장 인근에 있었던 사람들이 그 소식을 몰랐던 것에 대해 남긴 미안함, 너무 늦게 현장을 찾아온 희생자의 지인이 남긴 미안함 등이 그러하다. 당일 현장에서 희생자와 함께 있었던 생존자, 구조자가 더 많은 이를 구하지 못하고 자신만 살아남은 것에 대해 미안하다고 적은 글을 보면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한다.
한편으로 한 명의 시민으로서 미안하다고 이야기하는 메시지도 많이 있다. 세월호 참사를 이미 경험했음에도 또다시 대형 참사를 겪어야 했던 것에 대한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책임감, 희생자보다 좀 더 앞서 살아간 이들로서 사회 구조를 바꾸지 못한 것에 대한 사과를 담은 글을 여럿 찾아볼 수 있다.
정작 참사에 책임을 지고 사과해야 하는 이들은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는 가운데 시민들이 서로에게 미안해해야 하는 상황에 안타까움과 분노를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메시지들이야말로 이태원 참사가 천재지변도, 개인의 과실로 발생한 사고도 아닌, 취약한 사회 구조로 인해 일어난 사회적 참사임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사회적 참사에서 이루어지는 추모와 애도는 단지 희생자의 상실을 슬퍼하고 기억하는 것만이 아니라 참사 진상을 밝히고 사회정의 실현을 국가와 사회에 촉구하며 남은 사람들이 책무를 돌아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태원역 1번 출구를 찾은 수많은 발걸음은 그러한 사회적 애도의 실천이다.
나아가 나란히 붙은 포스트잇들은 연대의 힘을 보여주고도 있다. 이러한 연대는 단지 함께 모여서 슬퍼한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참사를 마주한 이들이 각자 위치에서 현재를 돌아보고 서로의 곁이 되어주며, 이후의 변화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국가와 사회에 요구하는 과정이 바로 연대를 통한 애도이다. “제대로 된 진상 규명이 이루어질 때까지 함께하겠다” “잊지 않고 바꿔나가겠다”와 같은 메시지를 통해 시민들은 함께 사회 구조 변화를 촉구하고도 있다.
그렇기에 참사 직후부터 여러 차례 했던 것이지만 온전한 사회적 애도와 연대가 이루어질 수 있는 근본적인 변화가 요구된다.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되었지만 아직 제정되지 못한 10·29 이태원 참사 특별법과 얼마 전 5만명 국민동의청원이 달성된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을 시작으로, 참사의 진상을 알리고 재발을 막기 위한 대책들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골목은 새롭게 정비될 예정이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시민대책회의, 이태원 관광특구연합회 등이 협의해 해당 공간은 ‘10·29 기억과 안전의 길’로 조성된다. 특별법이 아직 제정되지 못한 상황에서 중간단계로 이루어지는 공간 정비지만 이를 통해 지난 1년간 시민들이 남긴 수많은 추모와 애도의 마음이 온전히 전달되기를 바란다. 나아가 이 공간이 희생자들의 존엄을 보장하고 유가족, 생존자, 구조자, 지역 주민 등 참사 피해자들이 상실과 아픔을 서로 위로할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기 위한 사회적 논의가 이어져야 할 것이다.
세월이 무상하게 어느덧 1년이 된 지금, 다시 한번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함께 바꿔나가겠다는 다짐을 하며 최근 참사 현장에 붙은 한 시민의 메시지를 전한다.
“나는 그날 이태원에 있었어요. 잊히지가 않아요. 잊지 않으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