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건문’ 네 번 째 책은 클로이 쿠퍼 존스의 <이지 뷰티>(안진이 옮김, 한겨레출판사)입니다. ‘easy beauty’ 뜻을 담은 문단은 중반 이후 소개하겠습니다.
존스는 장애인입니다.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나에게는 척추와 골반을 연결하는 뼈인 천골(엉치뼈)이 없었다.” 의학 용어로 ‘천골무형성증(Sacral Agenesis)’입니다. 존스는 “어떤 것이 생성되지 않았거나 생성에 실패했다는 뜻”의 그리스어 ‘agenesis’를 두고 이렇게 표현합니다. “나에게 없는 천골, 나의 누락된 요소.”
“골목길의 이상한 물체였다”
이 ‘누락’은 삶에 여러 형태로 나타납니다. 길에 나가면 낯선 사람이 빤히 쳐다보기 일쑤죠. “(사람들은) 나를 걸어 다니는 비극 외에 다른 어떤 것으로도 보지 않으려” 합니다. 여행지에 가면 자신을 세워두고 사진을 찍으려는 이들도 나옵니다. “나는 작았고, 난쟁이였고, 그건 웃기고 기막힌 일이었다. 나는 진짜가 아니었다. 그냥 골목길의 이상한 물체였다.”
10대 시절 어떤 아저씨는 존스가 계단을 올라가는 모습을 지켜보고는 “너에게는 우아함이라고는 없구나”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대학원 지원 때 정체성에 관한 내용은 하나도 넣지 않았지만, 동기 하나는 소수자 비율 의무규정이라는 요행 덕에 존스가 합격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리적 공간만의 일이 아닙니다. 어른이 된 뒤에는 “추상적인 장소 중에도 내가 속하지 않는 곳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혐오를 드러내는 이도 나타납니다. 미국 뉴욕 브루클린 대학의 동료 교수 하나는 취중에 “임신한 여자들은 모두 의무적으로 장애 검사를 받게 하고, 만약 장애가 발견되면 강제로 낙태를 시켜야 한다”는 말까지 합니다. 청각장애인 부부의 선택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는 이런 말을 우생학적인 말을 한 겁니다.
청각장애인 부부가 배아 단계의 청각장애 아이를 선택해 키우면서 문화, 언어, 삶을 아이와 공유하기를 원한다면? 즉 “청각장애 아이의 배아만을 선택해서 자궁에 이식하는 것은 윤리 원칙에 위배될까?” 존스는 고통스러운 일이었지만 매 학기 이 사례를 수업에서 다룹니다. 학생들은 열띤 토론을 벌이죠. 찬반 와중에 분명한 건 학생들이 ‘청각장애인을 온전한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동료는 말할 것도 없죠.
존재를 교묘하게 부정하는, 선의의 말들
친구나 가족이 좋은 의도로 하는 말도 상처가 되곤 했습니다.
배제의 도끼들
존스는 ‘배제의 도끼’란 표현을 씁니다. 곳곳에서 이 도끼를 휘두르는 상황에서 존스는 누구와도 삶을 공유하지 않으려 합니다.
존스는 “나는 거리를 두고 존재하는 것, 나의 중심에 홀로 존재하는 것이 나의 본성”이라고 믿게 됩니다. ‘임신’과‘모성’은 또 다른 배제의 영역이었습니다.
“생명을 키우기에 부적합니다.”
존스도 자신을 “생명을 키우기에 부적합”하다고 여깁니다. “그 결과 내 상상력의 어떤 부분, 나 자신의 아이를 사랑하는 게 어떤 걸까를 궁금해하는 부분은 전혀 발달하지 않았다.”
결혼하고 임신한 뒤에는 “임신해도 되는 거예요?” “어떤 아이를 낳게 되는데요?” 같은 자신을 아이에게 위험 요소로 여기는 질문을 받게 됩니다. 산부인과 의사는 “이게 도덕적으로 맞나요? 당신과 똑같은 아이가 태어나면 어떻겠어요?”라고 말합니다.
‘중립의 방’으로 도피하다
‘배제의 도끼’를 막기 위해 자신만의 방법들을 고안합니다. 편견, 오해, 공격, 동정에 부딪힐 때면 자신을 ‘중립의 방’에 놓습니다. 두 남자 동료가 술집에서 존스를 가운데 두고 ‘불행한 출생’이란 주제를 두고 입씨름을 벌일 때도 그랬습니다.
1, 2, 3, 4, 5, 6, 7, 8. 1, 2, 3, 4, 5, 6, 7, 8.
수를 세다 보면 다른 것은 모두 희미해진다. 모든 것이 무가 되고, 무뎌져야 할 것이 무뎌지는 텅 빈 곳에서 나는 길을 잃는다. 그곳에서는 세상이 흐릿해지고, 술집은 더 어두워지고 더 시끄러워진다. 콜린의 얼굴과 목소리도 희미해지고, 그의 말들은 나에게 힘없이 와 닿았다가 흩어져서, 술집 안의 끽끽대고 삐걱대는 소리와 거리의 소음에 섞여버린다. 윙윙거리는 소리는 계속되고, 검은 소음은 긴 밤을 더 검게 만든다.
육체로부터 정신을 분리하기
‘철학하기’는 ‘도끼’에 대비하는 또 다른 방법입니다. “철학이 인간 본성과 인간의 정신과 우주의 커다란 수수께끼들에 관해 뭔가를 느끼게 해줘서 좋았다.” “철학이라는 학문은 ‘나의 진짜 일은 새로운 깨달음의 길을 닦는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천천히, 심각하게 글을 읽도록 나를 훈련시켰다.”
존스가 스승으로 삼은 철학자는 고대 그리스의 플로티노스입니다. “(가족, 나이, 고향 같은) 실체적 현실을 인간에게 해로운 잡념으로 취급”한 철학자입니다. 이 철학자는 “선과 진리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육체 안에서 보내는 시간 동안 누적된 오염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존스는 “기꺼이 육체로부터 정신을 분리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영원한 아름다움이 기다린다”는 말을 믿으려 합니다. “이성과 지혜와 조화를 달성”한 ‘소프로시네’ 상태에 이르려 합니다. 소프로시네를 획득하려면 “육체의 자극, 고통과 쾌락을 모두 차단”해야 한다고 플로티노스는 말합니다. “그렇게 정화된 영혼은 육체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진 지적인 이데아와 이성이다. 오직 이 신성한 질서에서만 아름다움의 원천과 온갖 종류의 아름다움이 생겨난다.” 존스가 또 좋아한 철학자는 흄입니다. “아름다움은 외적 속성들의 집합이 아니라 깊이 사색하는 마음속에 존재한다”는 흄의 이론을 선호했습니다.
플라톤 이론을 비틀어 ‘배제의 도끼’를 막는 방패를 만들다
즉 존스는 남들과 섞이지 않고, 홀로 있으며 자신의 완전한 존재를 발견하려 합니다. 플라톤에게서도 도끼를 막는 ‘방패’를 만듭니다.
존스는 종종 “더 현실적인 삶, 사방에서 반짝이는 삶, 밝고 충만하고 접근 불가능한 삶의 흐름에서 밀려나기 전에 나만의 고독한 장소로 대피”합니다. “(비극적인) 빛 속에 들어가 있을 때면 내가 그들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느낍니다. “경험을 추상화해서 이론으로 만들며 우월감”을 느끼는 일은 존스에게 익숙한 방어 기제였습니다.
빛 속에 들어가는 일은 “나를 다른 사람들과 단절시키는 홈을 더 깊게” 파는 것이기도 하죠.
비욘세 콘서트에서 단절과 고립, 어둠에서 벗어나다
단절과 고립, 어둠에서 벗어나 자신을 드러내기로 한 계기는 ‘비욘세 콘서트’에서 비롯됩니다. 출석 문제로 다툼을 벌인 제자 한 명이 나중에 사과하러 와서는 “그때 제가 화가 났던 건 얼마 전에 비욘세를 보고 왔기 때문이었어요”라고 말합니다. 이 제자는 콘서트에 다녀온 뒤 가창 수업을 신청합니다. 자녀가 그날 사고를 치면서 가창 수업은 못 받게 됩니다. 새로운 선택의 기회를 놓친 것 같아 겁이 난 제자가 존스에게 출석 문제를 두고 화를 낸 것입니다. 이 제자는 비욘세 콘서트를 꼭 보라며 추천합니다.
여기서 ‘이지 뷰티’에 관한 내용이 나옵니다.
쉬운 아름다움은 눈에 잘 띄고 편안하다. 단순한 곡조, 단순한 공간적 리듬… 장미, 젊은이의 얼굴, 전성기를 맞이한 사람의 육체. 이 모든 것은 단조롭고 직설적인 기쁨을 준다.
비욘세의 ‘온전히 현재에 존재하는 능력’
보려 해도 비욘세의 뉴욕 콘서트는 끝이 난 상태였습니다. 남편이 생일 선물로 밀라노 공연 표를 끊어주면서 이탈리아로 떠납니다. 존스는 이 콘서트에서 비욘세의 다양한 힘들을 낍니다. “그녀가 지금 이 순간 안에, 온전히 현재에 존재하는 능력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존스는 이 콘서트에서 “사람들의 바다”를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시간과 인내, 집중을 요구하는 ‘어려운 아름다움’
‘이지 뷰티’의 반대말 ‘어려운 아름다움(difficult beauty)’입니다. ‘시간과 인내와 더 많은 집중을 요구’하는 겁니다.
존스는 비욘세 콘서트에서 다시 ‘어려운 아름다움’ 의미를 생각합니다. 존스가 지향하는 바를 집중한다면 책 제목은 ‘어려운 아름다움’이 맞을 듯도 합니다.
콘서트에서 아들 울프강이 태어날 때 느낀 복합적이면서 섬세한 감정들을 떠올립니다.
장애학, 철학, 미학에다 여행기, 예술비평
영화제와 테니스 경기 등 현장을 다녀야 하는 잡지사 기자로 일합니다. 자기 장애를 직시하며 써낸 게 이 책입니다. 책은 기본적으로 자서전이자 회고록입니다. 존스와 마찬가지로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보고, 삶의 무시무시한 평범함에 압박을 느끼고, 더 많은 것, 더 아름다운 어떤 것을 갈구”하던 아빠, “항상 장애를 나에게 유리하게, 또는 적어도 나를 보호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도구”로 바라본 엄마 이야기가 나오죠.
장애학, 철학, 미학에다 여행기, 예술비평을 종횡무진으로 오갑니다. 베르디부터 앨리슨 래퍼까지 여러 예술가와 작품에 관한 깊이와 재미를 아우른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존스의 다른 글은 ‘미국 최고의 여행 기사’와 ‘미국 최고의 스포츠 기사’로도 뽑히기도 했습니다. <이지 뷰티> 중 킬링필드의 다크 투어리즘에 관한 이야기와 테니스 경기에 관한 글을 보면 수상 이유를 알게 됩니다.
당신이 ‘엘프’에 요정으로 나왔을 때 아이들이 진짜로 열광했답니다
<왕좌의 게임> 티리온 라니스터 역을 맡은 피터 딘클리지와 선댄스 영화제에서 만나면서 벌어진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딘클리지가 먼저 존스에게 다가와 인사를 건넵니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중 한 사람이 끼어들어 “우리 아이들이 <왕좌의 게임>에서 당신을 정말 좋아한다고 꼭 말씀드리고 싶었어요”라고 말합니다. 이까지는 괜찮았죠. 이어지는 말이 다음과 같습니다. “그런데 있잖아요. 당신이 <엘프>에서 요정으로 나왔을 때 우리 아이들은 진짜로 열광했답니다.” 딘클리지가 맡은 역할을 크리스마스 요정 엘프가 아니라 동화 작가 핀치입니다. 이 영화에서 버디(윌 페럴 분)가 핀치가 북극의 엘프인 줄 알고 자꾸 ‘엘프’로 부르다가 핀치의 화를 부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끼어든 사람은 이런 말도 합니다. “꼬마 요정이 꼬마 요정 역할을 하는 게 뭐가 문젠데요? 난쟁이가 꼬마 요정 역할을 하는 거요. 그 사람을 난쟁이라고 해도 되는 건가요?”
책은 퓰리처상 전기·자서전 부문 최종 후보까지 올랐습니다. 비장애인도 ‘배제의 도끼’에 당하곤 합니다. 삶을 살아내야 한다면, 공감할 대목이 많습니다.
책 추천사는 주례사일 때가 많습니다. 김원영(변호사)의 추천엔 공감하게 됩니다. “장애여성이자 철학자, 한 아이의 엄마인 클로이는 아름다움도 삶도 고통도 철학적으로 관조하던 인물이었지만, 이 책이 담고 있는 여행과 만남들을 통과하며 삶의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가고, 마침내 자기 자신에게 고정되었던 시선을 들어 올려 세상을 향하는 데 성공한다. 이 과정을 따라가는 일은 문학적 체험이면서 여행이었고, 매우 신체적이면서도 철학적인 경험이었다.”
김원영이 2018년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사계절)을 냈을 때 서평을 썼습니다.
지난 9월에 쓴 <좋은 엄마 학교>(허블) 저자 제서민 챈이 존스의 이 책을 추천했습니다. 구글을 검색하니 두 사람이 만나기도 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