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 검찰청법에 따르면 검찰은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 직접 수사를 개시할 수 없다. 그러나 검찰은 ‘윤석열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언론사들을 대대적으로 수사하고 있다. 이를 두고 검찰이 ‘직접 관련성’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수사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중앙지검 대선개입 여론조작 특별수사팀(부장검사 강백신)은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과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씨가 금전을 대가로 허위 인터뷰를 하고, 뉴스타파를 통해 이를 보도한 혐의(배임수재·청탁금지법 위반)가 있다며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그러면서 신 전 위원장과 김씨, 뉴스타파, 리포액트, 경향신문, 뉴스버스 전·현직 기자들이 윤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하는 허위 보도를 했다며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를 적용해 수사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이 전·현직 기자들에게 적용한 명예훼손죄는 검찰청법상 검찰이 직접 수사를 개시할 수 없다. 검찰청법은 검찰 수사권 축소를 위해 검사의 수사개시 범위를 ‘부패·경제범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범죄’로 제한한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취임 후 법무부가 시행령을 개정해 이 범위를 대폭 넓혔지만 여기에 명예훼손죄는 포함되지 않는다. 배임수재·청탁금지법 위반죄만 검찰청법 제4조에 1항1호가 정하는 검사의 직접 수사 범위에 들어간다.
검찰은 신 전 위원장 및 김씨 혐의와 전·현직 기자들의 혐의가 ‘직접 관련성’이 있어 검찰이 수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검찰 관계자는 지난 2일 기자들과 만나 “큰 틀에서 대장동 관련 수사 과정에서 허위 인터뷰 의혹 수사를 시작했고, 관련 증거나 증인들, 범죄사실이 직접 관련성이 인정되기 때문에 정통망법 명예훼손이 수사 대상이 되는 것은 명백하다”며 “이 사건이 김만배·신학림 배임수재랑 계속 연결되기 때문에 정통망법(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라고 했다. 범인·범죄사실·증거가 공통되는 사건은 검찰의 직접 수사 대상이 아니더라도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경향신문 등의 보도가 이른바 김만배·신학림 배임수재 혐의와 어떤 점에서 범인·범죄사실·증거가 공통된다는 것인지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
당초 시행령에는 부패·경제범죄와 직접 관련성이 있는 경우만 검찰이 수사할 수 있도록 돼 있었는데, 법무부는 지난해 직접 관련성 조항을 삭제했다. 이후 대검찰청은 ‘관련성 있는 범죄는 수사할 수 있다’는 취지를 넣은 예규를 만들었다.
이를 두고 검찰이 검찰청법에 정해진 수사개시 범위를 자의적으로 넓히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창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검경개혁소위원회 위원장은 5일 “검찰이 대검 예규 등을 바탕으로 법에 정해진 것 이상의 수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짜맞추기식 수사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며 “심지어 검찰은 이 같은 ‘직접 관련성 범죄’에 대한 해석을 선택적으로 넓히고 있는 것 같은데, 허위 인터뷰 의혹 수사의 적법성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찰이 수사권이 없는 상황에 억지로 (신 전 위원장과 김만배씨의) 배임수재 혐의와 (명예훼손을) 연관지어 압수수색을 하고 있다”며 “직접 관련성을 아무리 넓게 해석해도 연관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언론사와 기자들을 상대로 한 검찰의 압수수색이 불법이라 본다”고 했다. 한 교수는 ‘법원이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했으니 수사에 문제가 없다’는 검찰 주장에 대해선 “법원이 전혀 (위법한 수사를) 걸러주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지난해 8월 개정된) 시행령 자체도 위법 소지가 있기 때문에 총체적으로 헌법재판소에서 판단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검찰이 공직선거법 사건의 공소시효(6개월)가 지났음에도 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정통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를 적용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