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후 숱한 우여곡절 딛고, 문화와 쇼핑의 중심 무대로
한국에서 가장 땅값이 비싼 서울시 중구 명동 한복판에 있는 명동예술극장은 일제강점기인 1936년 명치좌(明治座)라는 극장으로 개관하였다. 명치, 즉 메이지라는 명칭은 일본 왕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며, 당시 명동 일대를 명치정(明治町)이라고 불렀다.
명치좌는 1100여명의 관객을 수용하는 지하 1층, 지상 4층의 건물이었고, 주로 일본 영화를 상영하는 일본인들을 위한 위락시설이었다. 명동의 안쪽 사거리에 위치하여 건물의 모서리 부분을 정면으로 하여 양 측면이 같은 모양으로 지어졌다. 이 건물은 일본 도쿄에 있었던 유명 극장인 다이쇼칸(大勝館)을 그대로 베꼈다고 한다.
명치좌는 해방 이후 많은 변화를 겪었다. 1946년 ‘국제극장’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1947년에는 서울시 소유가 되어 ‘시공관(市公館)’이란 이름으로 집회시설로 쓰이거나 연극 등을 공연하였다. 1957년에는 ‘명동예술회관’으로 개칭되어 국립극장 역할을 맡게 되었으며, 1962년에는 다시 ‘명동국립극장’이란 이름을 달고 연극, 오페라, 무용 등 다양한 공연이 개최되었다. 1973년 남산에 국립극장이 새로 개관하면서 폐쇄되었고, 1975년에는 금융 회사에 매각되어 사무실로 사용되었다. 그 후 한때 헐릴 위기에 놓였으나, 문화예술계를 중심으로 명동을 ‘문화예술의 거리’로 불리게 한 주역인 이 건물을 보존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에 문화관광부가 건물과 땅을 사들여 2009년 명동예술극장으로 재개관하여 지금까지 주로 연극 공연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1971년의 사진은 명동국립극장 시절의 모습이다. 건물 왼편 외벽에 <폭풍의 언덕> <피아노 협주곡의 밤> <합창 연주회> 등 다양한 공연을 선전하는 간판이 보이고, 건물 앞에 경찰이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선전탑에는 “5월은 방첩 승공 청소년의 달” “새마을 가꾸듯이 청소년 선도하자”라는 흥미로운 문구가 쓰여 있다.
2023년의 명동예술극장은 옥상에 유리 구조물이 증축된 것을 제외하면, 외관상으로 변화가 없다. 건물의 왼편에는 <햄릿> 광고판이 붙어 있다. 가장 큰 변화는 길거리에서 발견된다. 다양한 국적의 길거리 음식을 파는 노점들이 늘어서 있고, 이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는 외국인들이 가득하다. 한국에서 외국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관광지가 명동임을 입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