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일회용품과 플라스틱 빨대 사용금지 단속시행을 돌연 유예하면서 종이빨대 등 친환경 소비재 제조업체들이 ‘날벼락’을 맞고 있다. 정부 말을 믿고 투자와 고용을 늘렸다가 판로를 잃고 빚더미에 앉을 판이다. 정책 변경으로 존폐 기로에 몰린 중소기업들을 정부는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종이빨대는 국내 커피전문점·편의점에서 연간 100억개 이상 사용돼온 플라스틱 빨대의 대체재로 주목받았다. 화석연료로 제조돼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데다 썩지 않는 플라스틱 대신 생분해되는 종이·쌀·전분 등으로 만든 제품들이 국내서 개발·시판 중이다. 하지만 정부가 지난 7일 일회용품 규제방침을 뒤집으면서 가격이 절반 수준인 플라스틱 빨대로의 복귀를 막을 방법이 사실상 사라졌다.
종이빨대 업체들은 도산 위기다. 계도기간 종료(23일) 이후에 대비해 직원을 뽑고 원자재를 구입했다는 한 중소기업인은 기존 판매 분량조차 반품되면서 재고 수천만개가 쌓이고 있다고 호소했다. “정부 정책을 믿고 사업을 해왔다”는 또 다른 회사 대표는 정부 발표 다음날 직원 11명이 전원 퇴사했다면서 “종이빨대 시장은 이제 끝났다”며 한탄했다. 행정이 이토록 무책임할 줄 누군들 예상했겠는가.
윤석열 정부가 규제 합리화라는 불투명한 명분을 앞세워 지난 1년의 계도기간을 허사로 만든 이번 결정으로 환경정책에 대한 국민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자영업자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그런데도 한화진 환경부 장관의 인식은 안일하기 짝이 없다. “일회용품 규제는 유지하면서 과태료 부과나 강제적 행정이 아닌 홍보, 계도를 통해서 하겠다는 것”이라고 9일 말했다. 1인당 연간 88㎏으로 세계 3위 수준인 한국의 플라스틱 배출량을 오로지 국민의 자발적 참여로 감축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2019년 일회용품 감축 로드맵이 마련됐고, 1년이나 계도기간을 가졌으니 사용금지 시행에 들어가도 충분했다. 그러나 약속한 정책을 정부는 지키지 않았고, 그 피해를 시민이 떠안는 상황이 됐다. 환경의 미래를 위한 일관된 정책방향을 제시하고 적정한 규제를 통해 변화를 촉진할 의무를 정부가 저버린 것이다.
정부는 정책 번복으로 인해 피해를 입게 된 제조업체들에 납득할 만한 수준의 보상을 하고 지원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정부의 환경정책에 대한 신뢰도는 콩으로 메주를 쑨대도 못 믿을 지경이 돼가고 있다. 탄소저감에 역행하는 윤석열 정부가 총선을 앞두고 유권자 지지를 얻으려 또 어떤 근시안적인 결정을 내놓지는 않을까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