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 자녀 둔 아버지들
글쓰기 프로그램 모임 참여
“부모 마음은 다 똑같은 것”
공감대 형성...이해 폭 넓혀
“아빠가 된다는 건 무엇일까.”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아들을 둔 주호민 웹툰작가를 두고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 7월 마지막주 토요일. 발달 장애 아동을 키우는 김남욱씨(43)는 ‘나와 같이 발달장애 자녀를 둔 다른 아버지에게’ 편지를 써보자는 요청을 받고는 잠시 고민하다가 연필을 들었다.
“첫 아이를 낳고 함께 성장해가면서 아이의 즐거움이 곧 나의 기쁨이었는데. 장애 아이의 아빠가 되면서, 아이를 평생 책임지는 게 아빠임을 알아가는 것 같습니다.”
김씨의 딸 나은이(9)는 만 2세 때 욕실에서 익수 사고를 당해 중도 장애를 입었다. 갓난아기인 남동생을 보며 꺄르르 웃고 재잘대던 나은이의 모습은 그날 이후 사라졌다.
하루 아침에 달라진 딸처럼, 아버지 김씨는 그날 이후 움츠러들었다. 아이를 잘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오래도록 김씨를 괴롭혔다. 나은이가 웃고 떠들던 영상을 2~3년간 쳐다보지 못했다. 사고 후 5년까지, 마음이 울컥할 때면 운전 하는 차 안에서 딸의 이름을 울부짖듯 외쳤다.
이는 모두 아내 앞에서만 꺼낼 수 있었던 이야기다.
그런 김씨가 나은이의 기억을 밖으로 낼 수 있게 된 것은 지난 6월 ‘발달장애 자녀 아버지 대상 글쓰기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다. 고려대학교 사회공헌원이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아내가 먼저 권했다. 이 자리에서 김씨는 나은이가 장애 판정을 받을 당시의 기억, 발달장애 자녀를 둔 아버지의 삶, 앞으로 펼쳐질 자녀와 나의 모습을 글로 써내려갔다.
김씨를 포함한 아버지들은 어디서도 쉽게 꺼내지 못했던 속얘기를 터놓았다. 아이들의 장애 유형과 정도, 나이대는 제각기 달랐지만 ‘이들은 내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란 공감대가 서로의 말문을 열었다. 김씨는 “경험하지 않으면 공감하기 어려운 얘기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말했다.
아버지들은 이 모임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나눴을까. 경향신문은 프로그램에 참여한 세 명의 아버지를 지난 11월 21일·26일·28일 만났다.
① 9살 나은이 아버지는 ‘현명한 답’을 찾고 싶다
나은이에게는 두 명의 남동생이 있다. 이들에게 누나는 ‘말 없는 사람’이다. 김씨는 “나은이는 모든 기능이 다 정상이지만 뇌가 죽었다 보니 손짓을 잘 못하고 걸을 때도 휘청거린다. 두어살쯤의 지능에 멈췄다”고 했다.
막내가 나은을 툭툭 건드릴 때면 김씨의 마음이 복잡해진다. 그는 “나은이가 첫째 동생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책을 읽어주던 영상이 있지만, 그런 누나였다는 걸 동생들이 알기까지 한참을 커야할 것”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얘 왜 이래요?” 또래 아이들의 악의 없는 질문도 김씨에게는 상처다. 그는 “애들 질문은 직구라, 때론 가장 잔인하다”고 했다. 순수한 질문이지만 들을 때마다 마음이 내려앉는 건 어쩔 수 없다. 자신이 준비가 돼 있어야 나은이의 두 동생도 “우리 누나는 이런 사람이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고심은 더 깊어진다.
김씨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그는 “장애가 있는 것과 아픈 것은 다르다”며 “사고 때문에 장애를 갖게 됐다고 설명하는데, 더 나은 대답이 있지 않을까 늘 고민하게 된다”고 했다.
귀촌을 꿈꿨던 김씨는 그 꿈을 사실상 접었다. “서울을 떠나서는 특수학교도 재활병원도 거리가 너무 멀어 아이를 키울 수 없겠더라”고 했다. 나은이가 장애를 얻고 난 후 7년, 김씨 부부는 아이의 말 한 마디와 움직임 하나를 보기 위해 수없이 많은 재활치료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치료에는 돈이 많이 들고, 특수학급·학교와 교사가 너무 부족하다는 것도 자연스레 알게 됐다.
부부는 아이의 사고 이후 차를 샀다. 장애인 콜택시는 두세시간씩 기다리기 일쑤고, 대중교통으로는 나은이와 함께 다니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김씨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출근길 선전전에 대해 “저도 나은이가 없었다면 ‘출근길에 꼭 그래야 하나’ 욕했을 것 같다”면서 “하지만 이제는 그 외침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고 했다.
김씨는 “저희도 부유하지 않지만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은 가정에서 장애 아이를 키운다면 정말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장애 아동들이 집안 형편과 무관하게 안정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특수학교 선생님 및 특수학급 증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② 19살 유민이(가명) 아버지는 “그저 버텨왔다”고 했다
안민우씨(가명·53)의 아들 유민이(가명·19)는 4~5살이던 무렵 자폐 스펙트럼 장애와 발달 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책을 오래 들여다보며 또박또박 한글을 읽던 아이는 성인이 된 지금도 학습 만화 ‘WHY 시리즈’를 읽고, 또 읽는다. 겉표지가 닳아 너덜너덜해진 책을 새 책으로 바꾼 게 몇 권째인지 모른다.
유민이가 성인이 되기까지의 세월을 안씨는 “그냥 버텼다”고 말했다. 특히 유민이가 사춘기를 거칠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그는 “아이가 울고, 혼잣말을 하고 집에서 쿵쿵 뛰면 으레 아랫집에서 항의가 들어왔다”며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는 동작이 더 커지니 정말 어려웠다”고 했다. 그는 ‘다 큰 애가 왜 저러냐, 조용히 시켜라’는 말과 시선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고 했다.
유일한 도피처는 안씨의 자동차였다. 그는 “아이를 데리고 피해 있을 수 있는 곳은 그나마 소리가 잘 새지 않는 자동차 뿐이었다”며 “아이 엄마 앞에선 울지 않았지만, 아이와 차에서 30~40분을 함께 있을 때엔 많이 울었다”고 했다.
안씨는 글쓰기 모임에서 만난, 어린 장애 자녀를 키우는 아버지들에게 “어렵겠지만 아이에게 과하게 몰입하는 걸 조금은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버티다 보면 점점 나아지더라”는 경험도 전했다. 그는 “어릴 때 치료를 받아야 효과가 좋다는 생각과 조금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란 기대에 아이에만 전념하는 걸 놓기 힘들다”며 “그런데 결국 아이가 할 수 있는 범위가 크게 달라지진 않더라. 그 부분을 내려놓으니 예전보다는 조금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고 말했다.
맞벌이를 하는 안씨 부부는 ‘집-회사-집-회사’만 반복하며 십여 년을 보냈다고 했다. 이들 부부는 스스로를 돌볼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했다. 안씨가 글쓰기 모임에 지원한 이유도 떨어진 자신감을 채우기 위해서였다. 그는 “발달장애와 자폐가 있는 아이를 키우는 부부에게 조금 떨어져서, 자신의 시간과 부부의 시간을 갖는 것이 좋다고 추천드리고 싶습니다”라고 편지에 적었다.
마음을 덜어도 된다고 조언했지만, 그 역시 여전히 매일 밤 아들 곁에서 잠든다. 성인으로 길러냈지만, 아직 아들을 볼 때 느끼는 감정은 기대보다 걱정이 앞선다. 그는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아이를 돌볼 수 있겠지만 그 이후엔 어떻게 될까”라며 “부모가 없어도 지금 삶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방식으로 살아갔으면 좋겠는데, 시설은 나쁘게 말하면 수용소가 아니냐. 여러모로 걱정이 된다”고 했다. 안씨의 꿈은 ‘아이 곁에서 돌볼 수 있을 데까지 곁을 지키는 아버지’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③ 24살 지훈이(가명) 아버지는 ‘아이가 홀로 설 수 있길’ 바란다
“아이에게 밥을 떠먹이기 보다 수저를 쥐어줘서 혼자 먹는 습관을 길러 주십시오.”
24살 지훈씨(가명) 아버지 강석우씨(가명·64)는 아버지들을 향한 편지에 이렇게 썼다. 강씨는 모임에서 가장 장성한 장애 자녀를 키워낸 아버지다.
지훈씨는 4살쯤 됐을 무렵 지적장애 3급 판정을 받았다. 강씨가 기업의 해외지사에 파견 가 일하던 때였다. 아내와 아들은 부랴부랴 한국행을 택했고, 강씨는 그들과 2년 반을 떨어져 지냈다. “집사람이 혼자 고생을 많이 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너무 미안하다.” 강씨는 눈물을 훔쳤다.
지훈씨는 중학교 때까지 일반 학교를 다니다가 고등학교는 특수학급이 있는 곳으로 진학했다. 문제는 졸업 이후였다. 강씨는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난 후에 이 아이들이 사회에 자리잡을 수 있는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지 않다”고 했다.
강씨는 어떻게든 졸업 이후 지훈씨가 직업을 갖게 하려 애썼다. 그 덕에 지훈씨는 정보기술자격시험(ITQ) 등 컴퓨터 자격증을 여러 개 땄고, 지금껏 배운 것을 잊지 않기 위해 꾸준히 컴퓨터 수업을 듣는다. 강씨는 “여러 해를 거친 결실이었다”며 “비장애인은 몇 달이면 땄겠지만, 아이가 해냈다는 것 자체가 기특하다”고 했다. 최근 지훈씨는 한 기업에 정규직으로 취업했다. 온 가족이 끌어안고 기쁨을 나눴다.
하지만 여전히 강씨는 ‘자신과 아내가 죽고 난 뒤’를 걱정한다. 그는 편지에 “아이가 성인이 되고 보니 부모가 이 세상을 떠날 경우, 우리 아이를 어떤 상황으로 만들고 떠나야 하나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적었다.
지훈씨는 여태껏 두 번의 사기를 당했다. 한 번은 고등학교 시절, 지훈씨의 중학교 친구가 ‘카카오톡으로 게임머니를 보내달라’며 돈을 갈취했다. 또 한 번은 보이스피싱 사기였다. 세상에 좋은 사람만 있지 않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가 어수룩한 아들을 노리고 접근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강씨는 분노만큼 큰 걱정을 갖게 됐다. 강씨는 “그 이후 스마트폰을 뺏고 2G폰을 줬다. 지훈이가 아주 불만이 많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강씨의 가장 큰 고민은 자신과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아들이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아내는 ‘내가 죽을 때 아들과 같이 죽고 싶다’고 강씨에게 말했다. 그 역시 아들이 사람을 좋아하는 걸 막을 수도, 아들에게 나쁜 사람이 꼬이는 걸 알 수도 없다는 게 불안하다. “부모의 욕심일 수 있지만 세상을 좀 더 현명하게 잘 살아줬으면 좋겠는데…”라던 강씨는 이내 “사실 부모 마음이 다 똑같겠지”라며 애써 웃었다.
세 아버지는 모두 아이들이 남겨질 세상이 조금씩 좋은 방향으로 변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안씨는 “복지도, 사회 인식도 우리 아이가 자라나면서 조금씩 나아지는 게 체감될 때가 있다”며 “더 나아가 아이가 살아가는 데 안전한 사회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강씨는 “장애가 있는 사람을 볼 때 단순히 동정하는 게 아니라 이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같은 사회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