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FM ‘온가족 수다방 다정다감’ 특별한 제작진
유학·결혼에 한국 온 이주여성들
진행·작가·편집까지 직접 맡아
한국생활·고향 주제 주 1회 방송
여가부·행안부서 연이어 수상
사연 읽으며 울고 웃고 공감하며
이주여성들의 ‘수다방’ 역할도
더 많은 국적의 가족 모였으면
청취자들이 보낸 사연에 스튜디오 책상을 둘러싸고 마주 앉은 진행자들이 맞장구를 치며 웃고 울었다. 이야기에 딱 맞는 음악도 흘러나온다. 노래는 한국어뿐 아니라 베트남어·중국어 등 다양하다. 지난 8일 세종시 반곡동 세종FM방송 스튜디오에서 올해 마지막 녹음 중이던 <온가족 수다방 다정다감> 제작진을 만났다.
여느 라디오 녹음 현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제작진 구성이 특별했다. 사연을 읽어주는 진행자 4명, 사연을 정리하고 토막 정보전달 코너에 출연하는 작가 3명, 음악을 선곡하고 편집하는 엔지니어 1명이 모두 이주여성이다.
이주민 삶을 다루는 방송 프로그램은 많다. 하지만 진행자·제작진은 한국인, 패널과 게스트가 이주민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매주 금요일 세종 전역에 송출되는 <다정다감>은 이주여성들이 주축이 돼 전문가 도움을 받아 완성하는 방송이다.
베트남 출신으로 최근 귀화한 진행자 김인아씨(29)는 “집에서 원고를 미리 연습할 때는 잘 읽다가도 녹음만 시작되면 실수할 때도 있었다”면서도 “주변 이웃들의 격려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온 진행자 최금실씨(38)는 “외국에서 경력단절이 되니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되고 힘들었는데, 방송을 통해 가족들에게 지지받고 인정받는 느낌이 든다”며 “제 가치가 올라간 것 같다. 방송이 저에게 새로 나아갈 발판이 됐다”고 말했다.
현직 방송작가이자 이주여성들의 멘토 역할을 하는 유금령 작가는 “한국에서만 살면 경험하지 못하는 주제를 다루니 사연 자체가 재미있다”며 “작가들은 맞춤법 정도만 고쳐준다”고 말했다.
라디오에 소개되는 사연 중에는 문화 차이에서 오는 재미있는 상황도 많지만 가슴 아픈 이야기들도 있다. ‘고향’이 주제인 날에는 사연을 읽으면서 남 얘기 같지 않아 함께 눈물도 흘렸다고 한다.
이중언어 강사이기도 한 이지윤씨는 “가르치던 베트남 출신 학생이 ‘신조어를 모른다’며 놀림당했다고 해 마음이 아팠다”며 “친구끼리 재밌게 대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차별하기 위해서라면 신조어는 안 쓰는 게 좋겠다고 방송에서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라디오 녹음 현장은 프로그램 이름과 같이 가족 같은 이주여성들의 ‘수다방’이기도 하다.
방송은 세종시 가족센터가 세종시청자미디어센터와 함께 기획한 취약계층 대상 미디어 교육에서 시작됐다. 세종에는 다문화 가정 1600여가구와 1만명 외국인이 산다. 2020년 말부터 시나리오 작성법이나 음원 편집, 스피치 등을 배우려 이주민 여성들이 모이자 2021년 예산 400만원을 확보해 한 달에 한 번 유튜브 방송을 제작했다. 이듬해 세종FM 개국 소식을 듣고 가족센터가 협업을 요청해 그해 4월 개국 때부터 <다정다감>이 정규편성됐다.
작가 사금씨(39)는 유학을 왔다가 결혼해 아이를 낳으며 한국에 정착한 지 17년째다. 그는 “남편 직장 때문에 세종으로 이사 왔는데, 3년간 집에서 아이만 봤다”며 “친구들을 만나 뭔가 배우면서 일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참여했다”고 했다. 베트남에서 온 작가 이지윤씨(25)는 “유튜브에서 방송을 봤는데 진행자가 한국 사람인 줄 알았다”며 “멋진 일이라 생각해 참여해보고 싶었고, 한국말을 쓰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싶었다”고 했다.
어느덧 90회를 바라보는 <다정다감>은 지난 9월 여성가족부가 주관한 가족 서비스 우수 프로그램 공모에서 대상을, 지난달 행정안전부 주관 외국인 주민 지원 우수사례에서는 우수상을 받았다. 유 작가는 “노래 선정이나 한국어 발음을 조언해주기도 하지만 방송이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건 적극적인 구성원들 덕분”이라고 말했다. <다정다감>은 내년에 구성원들을 더 다양한 국적으로 보강하려고 한다. 방송 실무를 담당하는 한유리 세종시 가족센터 팀장은 “이주민분들이 방송을 더 많이 즐길 수 있도록 유튜브에서 다국어 자막 서비스를 하는 것도 계획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