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은 용기를, 우리 모두에게

웹툰을 자주 본다. 솔직히 말하면 거의 중독 수준이다. 수만권의 만화책에 시간을 쏟아붓지 않았더라면 조금은 더 건실한 인간이 되었을 것 같다는 후회 때문에 조금은 자중했지만, 몇번의 입원과 잦은 출장을 핑계로 결국 이 새로운 형식의 만화에 흠뻑 빠져들고야 말았다. 이제는 틈이 나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켜고 이 안온하고 유쾌한 세계로 자연스레 향한다.

만화책에 익숙한 독자 입장에서 요즘 한국 웹툰의 수준은 놀랍다. 스크롤을 이용해 좁은 스마트폰 화면에서 스펙터클한 장면을 만들어내는 솜씨는 펼침면과 컷을 리드미컬하게 다루며 몰입감을 이끌어내던 전성기 출판 만화들에 비해서도 탁월하며, 서사는 대단히 날렵하고 정교하다.

하지만 예전에 즐겨 보던 만화들을 떠올릴 때도 있다. 예를 들어 ‘수련하는’ 주인공이 그리워질 때다. 한때 만화방을 가득 채웠던 일본 만화책에는 유독 수련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들은 손이 부르틀 때까지 스윙 연습을 했고, 타이어를 끌고 바닷가를 달렸다. <슬램덩크>의 강백호는 2만번의 점프 슛을 쏘았고, <드래곤볼>의 손오공은 중력이 지구의 열 배에 달하는 텅 빈 공간에서 하염없이 무술을 연습한다. 심지어 초밥이나 라면 요리사들도 손이 상처투성이가 될 때까지 무언가를 수련하고 ‘특훈(特訓)’을 한다.

물론 웹툰에는 출판 만화의 다채로운 요소들이 대부분 잘 계승돼 있고, ‘수련하는’ 주인공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비중이다. 대다수 웹툰 주인공은 능력을 얻기 위해 딱히 수련하지 않는다. 그들은 갑자기 다른 세계에서 귀환하거나, 억울한 죽음을 맞는 상황에서 돌연 과거의 특정 시점에 되돌려진다. 미래 지식과 경험을 사용해 현재를 사는 일은 훨씬 신나고 수월하다.

물론 웹툰 주인공들도 노력한다. 어쩌면 예전 만화책의 주인공들보다 훨씬. 그들은 다시 온 소중한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아침부터 밤까지 시간을 성실하고 오롯하게 보낸다. 하지만 노력과 수련은 조금 다르다. 예를 들어 수련에는 불완전한 자신에 대한 미움, 고된 훈련을 통해 자신의 일부를 파괴하고 다시 만들겠다는 의지, 그리고 어쩌면 수련 자체가 무의미할 수 있다는 공포감 같은 복잡한 감정이 깃든다. 하지만 롤플레잉 게임의 상태창 같은 것으로 자신의 성장을 확인하는 오늘날의 웹툰 주인공들에게 그런 공포나 불안은 없다. (불공평한 능력을 활용하고 있지만) 성실한 노력이 보답을 받는 공정하고 투명한 세계에 그들은 산다.

생각해 보면 자신을 둘러싼 구조적인 문제를 수련을 통해 싸워 해결하려는 예전 만화책 주인공들의 정신 건강을 더 걱정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소설가 미셸 우엘벡은 한 개인이 붕괴하는 세계를 구하고 자신도 성장하는 전통적인 서사를 조롱하며 ‘중간 크기 포유류들의 끔찍한 망상’이라 썼다. 사실 오늘날의 사회는 마치 거대한 기계처럼 돌아가는 것 같다. 거기 던져진 개인이 싸우는 것이 가능할까. 규칙에 대해 항의하기는커녕 헉헉대며 달리는 것도 버겁지 않나. 우리의 현실은 이미 카프카의 소설 속 미로나 <오징어 게임>의 세트장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싸움이 무의미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이 글을 쓴다. 올해 나와 동료들은 출판 생태계의 작은 주체들을 지원하는 공간을 지키기 위한 싸움에 휘말렸다. 공공의 재원을 사용하는 방식에는 물론 합리적인 검토와 민주적인 토론이 필요하다. 하지만 발언의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고 상황은 지지부진하거나 때로는 위협적이었다. 그러나 항의하는 동료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싸움을 통해 ‘어차피 안 될 거라고 포기하는’ 개인이 ‘그럼에도 민주적인 절차를 따져 묻는’ 시민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즉 세상이 바뀌지 않더라도 한 인간의 실존적 차원은 어마어마하게 변화한다. 그러므로 결과를 신경쓰지 않는 싸움과 연대, 그리고 용기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란다.

김현호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 플랫폼P 센터장

김현호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 플랫폼P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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