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시찬·김유진 방심위원 인터뷰
지난해 말부터 거듭해온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파행의 중심에는 류희림 방심위원장이 있다. 지난달 말 류 위원장이 가족·지인에게 민원을 넣게 했다는 ‘청부 민원’ 의혹이 제기됐으나 류 위원장은 어떠한 해명도 내놓지 않았다. 되레 ‘민원인 정보 유출은 범죄행위’라며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방심위 내부의 반발은 더욱 거세졌다. 야당 추천 방심위원 3명은 류 위원장에게 의혹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다. 회의는 공전하고, 위원 간 고성이 오갔다. 지난 12일 방심위는 ‘폭력’ ‘비밀유지의무’ 위반 등을 이유로 옥시찬·김유진 위원에 대한 해촉건의안을 의결했다. 경향신문은 두 위원에게 방심위 내홍 사태에 관해 물었다. 이들은 “청부 민원 의혹을 덮기 위해 해촉이라는 무리수를 뒀지만 진실을 가릴 수는 없다”고 했다.
발단은 지난 3일 전체회의였다. 옥시찬·김유진·윤성옥 위원은 ‘청부 민원’ 의혹 관련 안건을 다루기 위해 전체회의를 소집했다. 여권 추천 위원들의 불참으로 회의가 무산되자 김 위원은 현장에 온 취재진에게 안건에 관해 설명했다. 류 위원장은 이 행동을 문제 삼았다.
“방심위, 여당 불리한 뉴스 막는 기구 전락” 내부 불만 임계치
야권 추천 위원 2명이 말하는 ‘해촉’ 사건의 전말
류 위원장 ‘청부 민원 의혹’
야권 위원들 안건 배포하자
비밀유지 위반 등 문제 삼아
공익제보자 색출까지 시도
해명 요구~해촉까지 ‘열흘’
속전속결로 ‘야권 밀어내기’
김 위원이 취재진에게 안건 자료를 배포한 행위가 ‘비밀유지 의무 위반’이라는 것이었다. 김 위원은 14일 경향신문과 통화하면서 “안건은 사전에 기자들에게 다 공개해왔다. 방청을 신청한 기자는 회의자료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며 “위원장에게 구체적 판단 근거를 알려달라고 했지만 듣지 못했다. 졸속으로 검토하고 해촉을 밀어붙인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8일 전체회의에서도 잡음이 불거졌다. 야권 성향 위원 3명은 지난 3일 회의에서 불발된 청부 민원 안건을 다시 꺼냈다. 류 위원장은 ‘민원인에 대한 명예훼손 우려가 있다’며 비공개 안건으로 처리하겠다고 했다. 김 위원이 ‘왜 안건을 비공개하느냐’고 항의했으나, 류 위원장은 거수 표결로 비공개 결정을 내렸다. 김 위원 등이 거세게 항의하자 류 위원장은 정회를 선포한 뒤 복귀하지 않았다. 김 위원은 “류 위원장은 안건의 이해관계자라 제척 사유에 해당한다고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충돌은 지난 9일 방송소위원회에서도 이어졌다. 김 위원은 “류 위원장이 독립성·공정성을 의심받고 있는 상황에서 심의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류 위원장은 ‘회의와 무관한 발언’이라고 맞받았다. 류 위원장이 발언을 제지하자 옥 위원이 “너도 위원장이냐 XX”라고 욕설한 뒤 퇴장했다. 옥 위원은 “류 위원장이 김 위원이 말하는 걸 막길래 순간적으로 울컥했다. 욕설은 분명 잘못한 일”이라면서 “욕설 직후에도 사과했고 직접 사과하기 위해 위원장실을 찾았으나 류 위원장이 거부해 만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위원장이 거듭된 의혹 제기에 답하지 않고 회의를 파행시킨 것은 정당한 것인지 되묻고 싶다”고 했다.
방심위는 지난 12일 긴급전체회의를 열고 두 위원의 해촉건의안을 의결했다.
옥 위원의 ‘폭력’ ‘욕설’, 김 위원은 ‘비밀유지 의무 위반’ ‘회의진행 방해’ 등이 사유였다. 두 위원이 ‘청부 민원 의혹 해명’을 요구하고부터 해촉건의안 의결까지 열흘이 걸렸다. 윤석열 대통령이 건의안을 재가하면 두 위원은 해촉된다.
이들은 해촉건의안 의결 배경에 청부 민원 의혹을 덮으려는 의도가 있다고 했다. 김 위원은 “무리하게 해촉을 밀어붙이는 이유는 결국 청부 민원 의혹을 덮겠다는 것”이라며 “위원장 개인의 의혹을 덮기 위해 이토록 파행으로 치달아도 되는지 걱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왜 특정 시기, 특정 안건에 위원장의 가족·지인들이 집중적으로 민원을 냈는지가 의혹의 핵심”이라면서 “류 위원장은 이 사안을 ‘민원인 개인정보 유출사건’이라며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옥 위원은 “방심위 역사상 이렇게 막무가내로 해촉이 결정된 경우는 없었다. 우리를 솎아내려고 기회를 노리다가 이번에 결국 무리수를 둔 것”이라며 “ ‘민원 사주’라는 훨씬 큰 잘못을 저지른 위원장은 아무 처분도 받지 않고 있다. 선택적 정의가 적용되고 있다”고 했다.
제보자 색출을 위해 내부 특별감사를 벌이는 것에 대해선 “불법 행위”라고 비판했다. 옥 위원은 “공익신고자보호법은 특별법적 지위를 인정받는다. 공익신고자보호법을 개인정보보호법보다 우선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 ‘특별감사를 벌이는 것이 불법 행위’라고 얘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했다.
이들은 방심위가 정권의 비호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위원은 “해촉이 이뤄지면 방송소위는 여권 성향 위원들만 참여하게 된다. 눈치 볼 것 없이 표적심의, 정치심의가 난무하게 될 것”이라며 “지금껏 표결은 여권 성향 위원들 뜻대로 진행됐지만, 회의 발언을 통해 반대 의견을 낼 수 있었는데 그마저 무력화됐다”고 했다. 해촉이 재가되면 여야 추천 위원 비율은 기존 ‘4 대 3’에서 ‘4 대 1’로 바뀐다.
총선을 앞두고 방심위가 신속심의 제도를 남용하지 않을지 우려하기도 했다. 옥 위원은 방심위가 김만배·신학림 녹취록 안건을 신속심의한 것을 두고 “수년 전 보도를 두고 신속심의하겠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총선 전 언론에 재갈을 물리겠다는 의도”라고 했다. 김 위원은 “신속심의 제도는 정부·여당에 비판적이고 불리한 프로그램을 먼저 심의하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방심위 내부의 불만도 임계치에 이르렀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해촉건의안이 의결된 지난 12일 방심위 직원 149명은 국민권익위원회에 ‘류 위원장의 청부 민원 의혹을 조사해달라’고 신고했다. 옥 위원은 “방심위 전체 직원이 200명을 조금 넘는데 150명이 실명으로 집단행동을 했다”며 “방심위 내부에서 류 위원장의 영이 서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했다.
김 위원은 “민원 사주 의혹 대응을 놓고 직원들의 분노와 반감이 커진 것을 체감한다. 부당함에 맞서 싸우는 직원들에게 미력이나마 힘을 보탤 수 없다는 게 안타깝다”면서 “일단 해촉되면 가처분신청을 내고, 방심위 파행의 책임을 묻는 작업을 함께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