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가 지인의 빚보증을 섰다면 이것은 나의 부채일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애매한 대답이 정답이다. 지인이 열심히 돈을 벌어서 대출을 착실하게 잘 갚으면 내가 제공한 보증은 부채가 아니다. 그러나 믿었던 지인이 잠적하거나 상환 능력이 없어서 빚보증한 내가 대신 갚게 된다면 이는 나의 부채가 될 것이다. 이런 지급보증 같은 것을 가리켜 우발부채라고 한다.
즉 발생 가능하기는 한데 미래의 불확실함을 내가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우발부채이다. 미래에 내가 대신 갚게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그때는 우발부채가 아닌 확정부채가 될 것이다.
계열사 등에 지급보증을 해주는 기업들은 어떻게 회계 처리를 할까? 원칙적으로 이 우발부채에 대해서는 재무상태표에 부채로 표시하지 않는다. 미래에 해당 기업이 피보증회사를 대신해서 갚는 일이 벌어질 수 있겠지만 현재 시점에서 그럴 가능성과 금액에 대한 추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부채로 표시하지 않는다.
기업의 재무상태표를 보는 주주나 은행 등 정보이용자 입장에서도 재무상태표에 표시된 자산과 부채 금액 위주로 확인하느라 이런 우발부채를 잘 신경 쓰지 않게 된다. 그러다가 이번처럼 태영건설 같은 사태가 벌어지기라도 하면 부랴부랴 확인해보게 될 것이다.
우발부채는 재무상태표의 부채로 잡히지는 않지만 정보이용자들에게 알려줘야 하는 중요한 정보이므로 재무제표 주석 사항에 기재한다. 상장기업의 경우 정기보고서(분기, 반기 및 사업보고서) 안에 ‘우발부채 등에 관한 사항’ 항목에 자세히 기재해 분기마다 공시하고 있다.
태영건설의 지난해 3분기 별도 재무상태표의 부채를 살펴보면 갚아야 하는 차입금이 1조2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3분기 누적 기준으로 1000억원에 가까운 영업이익을 냈고 보유한 현금이 3000억원이 넘으며 공정가치가 4000억원이 넘는 투자부동산과 여러 유가증권도 갖고 있어서 재무구조가 그렇게 위험해 보이지는 않는다. 재무상태표에 나오는 자산, 부채와 손익계산서만 놓고 봤을 때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분기 보고서에서 우발부채 등에 관한 사항을 찾아보면 재무상태표에서 부채로 잡지 않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잔액이 4조4000억원이 넘고 110건에 대한 채무보증을 진 것으로 나온다. 물론 이는 태영건설 입장에서 당장 다 갚아야 하는 의무가 생긴 것도 아니고, 만기까지 어떻게 될지도 불확실하다.
일정 금액에 대해 보증 부담을 지기는 했지만 시행사들이 하고 있는 부동산 개발이 잘된다면 불똥이 튈 가능성은 작기 때문에 재무상태표의 부채로 달아놓지 않았다.
그런데 여러 사업장에서 하고 있는 부동산 개발 분양률이 저조하거나 아예 사업이 진척이 안 될 정도로 어려운데 차입금 만기가 돌아온다면 결국 갚을 능력이 없는 시행사 등을 대신해 태영건설이 갚아야 한다. 그러면 우발부채는 곧 확정부채가 되어 회사의 손익을 악화시킬 것이고 부채가 늘어나면서 재정적 부담을 주게 될 것이다. 실제로 과거부터 재무상 멀쩡했지만 우발부채가 확정부채가 되면서 이를 대신 갚다가 회사까지 넘어간 사례가 꽤 많았다. 이는 건설사뿐만 아니라 자회사나 계열사 빚보증을 섰던 우량 중견기업들도 많이 겪었다.
경기 침체로 인해 이전보다 더욱 기업 재무제표 분석에 신경을 쓰는 상황이 되었다. 당장 갚아야 하는 재무상태표의 부채도 중요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아도 기업들이 공시하는 우발부채를 미리 점검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은행과 주주 등 여러 이해관계자가 화를 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