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범죄라며 엄벌 후 ‘관행’ 셀프특사···제왕적 대통령의 ‘면죄부’

2024.02.06 17:13 입력 2024.02.06 18:02 수정

윤 대통령, 김관진과 김기춘 특별사면 단행

검사 때 국정농단·댓글공작 수사·기소 대상

‘보수층 결집’ 치중한 편파적 사면 지적도

윤석열 대통령이 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6일 단행한 특별사면 대상에는 그가 검사 시절 수사하고 재판에 넘긴 인물이 여럿 포함됐다. 정부는 지난해 초 “직책·직무상 관행에 따라 범행에 이르렀다”며 국정농단 가담자들을 대거 특별사면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지난해 사면과 “형평성을 맞춰야 한다”며 국가기관의 댓글조작,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 등 가담자들을 사면했다. 검사일 때는 중대범죄라 엄벌이 필요하다더니 대통령이 되자 ‘관행에 따른 범죄’로 규정해 면죄부를 준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의 사면권 남용’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는 이번 특별사면의 취지에 대해 “갈등을 일단락하고 국민통합의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고 했다. 그러나 사면받은 이들 대다수가 여권·보수 성향이어서 ‘국민 통합’보다는 ‘보수층 결집’에 치중한 편파적 사면, 내 편에 면죄부 주기식 사면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검사 시절 수사, 엄벌 주장하더니 사면으로 면죄부

이번 특별사면 대상에는 국가기관의 댓글 공작 연루자들이 포함됐다. 잔형 집행 면제와 복권 대상에 오른 김관진 전 장관은 이명박 정부의 국방부 장관일 때 국군사이버사령부를 이용해 댓글 공작을 하는 등 정치에 관여한 혐의로 기소돼 지난해 8월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김 전 장관은 현재 대통령 직속 국방혁신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형 선고 실효와 복권을 받게 된 서천호 전 부산경찰청장은 이명박 정부 때 경찰을 동원해 댓글 공작을 한 혐의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서 전 청장은 국가정보원 2차장 재직 때 검찰의 국정원 댓글 수사를 방해한 혐의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기도 했다. 모두 윤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일 때 수사를 지휘해 기소한 사건들이다.

권순정 법무부 검찰국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들을 사면하는 이유에 대해 “지난해 신년 사면 때도 과거의 잘못된 관행으로 불법행위를 저지른 공직자를 사면했고, 그와 형평성을 맞춰야 한다”며 “장기간 쌓은 능력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판단을 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윤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이던 2019년 김 전 장관 1심 결심공판에서 “다시는 국군이 정치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해 민주주의 기본질서를 확립하는 역사적 선언이 본 사건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징역 7년을 구형했었다. 그래놓고 이제와서 ‘관행이었다’며 사건에 대한 평가를 바꾼 것이다.

심우정 법무부장관 직무대행(차관)이 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2024년 설 명절 특별사면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심우정 법무부장관 직무대행(차관)이 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2024년 설 명절 특별사면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국정농단 일환인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기소돼 지난 24일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도 윤 대통령이 국정농단 특검의 수사팀장으로 있을 때 특검이 기소한 사건이다. 윤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일 때 검찰이 수사·기소한 세월호 유족 불법 사찰 사건의 김대열·지영관 전 기무사 참모장은 잔형 집행 면제 및 복권 대상에 올랐다.

대통령의 사면권은 사법부 판단을 뒤집는다는 점에서 예외적이고 신중하게 행사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회에 중대한 해악을 끼친 이들에 대한 특혜로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윤 대통령이) 검사로서 법치주의를 적용하던 잣대와 대통령으로서 사면권을 행사할 때 적용하는 법치주의의 잣대가 다른 것 같다”며 “사면의 취지에 부합하는 적절한 사면인지 의문이 들고, 정부의 잘못된 관행을 사면 사유로 내세우는 것도 부적절하다”고 했다. 사면 기준이 매우 자의적이라는 것이다.

서보학 경희대 법전원 교수는 “대통령 본인이 검사 출신으로서 중대범죄로 수사·기소하고 유죄를 받아낸 사건들인데 대통령이 돼 이들을 사면하는 것은 스스로의 활동을 가치없게 만드는 것이고 사법권을 무력화하는 사면권 남용”이라며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는 국민들 공감대가 형성돼 지지를 받아야 하는데 중대한 직무범죄를 범한 이들을 이런 식으로 사면하는 것은 국민 통합에도 저해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앞서도 검사 시절 자신이 수사·기소한 이들을 잇따라 사면했다. 대통령 취임 후인 2022년 광복절 특별사면 때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2023년 신년 특별사면 때 ‘화이트리스트’ 사건의 김기춘 전 실장·조윤선 전 정무수석, 이석수 특별감찰관 불법 사찰 혐의를 받은 우병우 전 민정수석을 사면했다. 국정원장 특수활동비 뇌물 사건의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남재준·이병기·이병호 전 국정원장, 국정원 댓글조작 사건의 핵심 인물인 원세훈 전 국정원장도 사면했다.

언론 장악 메시지 주나, ‘노조 탄압 유죄’ MBC 전 경영진들 사면

이번 특별사면 대상에는 MBC 전 경영진만 4명이 포함됐다. 김장겸·안광한 전 MBC 사장, 백종문·권재홍 전 MBC 부사장이다. 이들은 MBC 노동조합의 운영을 방해하고 노조원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등 부당노동행위를 한 혐의로 기소돼 대법원에서 유죄를 확정받았다. 이들 사건을 심리한 2심 법원은 “우리 사회의 ‘워치독’으로 감시자 역할을 해야 할 언론사가 정작 내부 노사관계에서는 기본원칙을 무시하고 부당노동행위를 한 매우 심각한 사안”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김 전 사장은 국민의힘 가짜뉴스·괴담방지 특별위원장, 권 전 부사장은 22대 총선 선거방송 심의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의 사면을 두고 윤석열 정부의 ‘언론 장악’ 의중을 보여주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언론노조는 이날 성명을 내고 “언론 장악 홍위병으로 나선 이들에게 범죄 이력을 지워준 보상일 뿐 아니라, 언론계 주변의 친정권 날파리들에게 결격 사유를 제거해줬으니 언론 장악 돌격대로 나서라는 추잡한 거래인 셈”이라고 했다.

특별사면된 기업인 중 최재원 SK수석부회장은 횡령 혐의로 실형을 확정받은 뒤 2021년 경영에 복귀했다. 지난해 12월6일 윤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 기업 총수들과 부산 중구 깡통시장에서 떡볶이를 먹을 때 그 자리에 함께 했다. 구본상 LIG 회장은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일 때 서울북부지검이 조세 포탈 혐의로 수사·기소했다. 윤 대통령은 2012년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일 때 직접 LIG 오너 일가를 수사하면서 사기 혐의로 구 회장을 구속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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