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의료계가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포함한 ‘의료개혁’ 내용을 두고 양측 모두 한발 물러섬 없이 평행선을 달린다. ‘의료대란’이 본격화하기 전에 양측이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의협)는 20일 밤 첫 TV 방송 토론을 벌인다. ‘강대강’으로 맞서고 있는 정부와 의료계 간 대화의 물꼬를 틀지 주목된다. ‘의대 증원’을 둘러싼 주요 쟁점에 관한 양측 입장을 정리했다.
①의사 수 부족 vs 의사 수 과잉
정부는 2025학년도부터 의과대학 정원(현 3058명)을 5058명으로 늘려 5년간 유지, 2035년까지 1만명의 의사 인력을 확충하겠다고 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서울대 홍윤철 교수 연구 등 3개 연구를 참고해 2035년 의사 1만5000명이 부족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상 한국은 인구 1000명당 임상의사 수가 2.6명으로 OECD 평균(3.7명)에 못 미친다는 점도 근거로 제시했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20일 브리핑에서 “2035년 65세 이상 인구수는 현재보다 70% 늘어나 입원일수는 45%, 외래일수는 13%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며 “2035년 의사 중 65세 이상 비중은 2배 증가해 의사 인력의 고령화도 심화한다”고 했다. 이어 “2000명 증원은 고령화로 인한 의료 수요 증가와 공급 감소를 고려한 결과”라고 했다.
의료계는 OECD 통계에서 한국의 1인당 외래 진료 횟수(연간 15.7회, 2021년)가 OECD 평균(5.9회)을 웃도는 점 등을 근거로 한국이 의료접근성이 높은 나라라고 강조한다. 저출생 여파로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고 본다.
문석균 의협 의료정책연구원 부원장은 이날 기자 질의에 “OECD에 가입된 38개 국가들의 의료정책·제도가 너무나 다양해 단순하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정부가 인용하는 여러 연구결과에서 사용한 인구추계 자료보다 급격하게 저출산이 진행되고, 또 정부가 인용 연구결과에서 사용한 ‘의사의 근무일수’ 같은 의사의 업무량이 현실적으로 반영되지 않았다”고 했다.
②의대 증원 필수의료 살리기 “답 아냐” vs “필요조건”
의료계도 지역·필수의료를 살려야 한다는 데는 공감한다. 다만 ‘필수의료 분야 인력 부족’은 낮은 수가(의료행위 대가), 의료사고로 인한 민·형사 소송 위험 부담 등이 원인이라고 본다. 의료계 전반적으로 의대 증원이 답이 아니라는 관점이 지배적이지만, 의대 증원을 찬성하는 쪽에서도 필수의료 유입 정책이 먼저 제시돼야 한다고 본다.
정부는 ‘응급실 뺑뺑이’나 ‘소아과 오픈런’ 등의 문제 해결을 위해 의료개혁을 해야 하고 “의사 인력 확충은 의료개혁의 필요조건”이라고 본다. 정부는 필수의료 분야에 5년간 10조원의 건강보험 재정을 투입하겠다고 했다. 수가 인상, 전공의 노동환경 개선,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 등을 포함한 ‘필수의료 정책패키지’를 발표했다. 의료계 숙원 내용이 포함됐지만 개원 면허제, 비급여 혼합진료 금지 검토 등 의사들의 개원 활동을 제약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김택우 의협 비상대책위원장은 “썩은 당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문석균 의료정책연구원 부원장은 “(정책패키지에) 비급여 관리 강화, 보완형 공공정책 수가, 대안적 지불제도, 실손의료보험 제도 개선 등이 포함돼 있는데, 구체적인 내용이 없어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며 “의료비와 의료제도, 의료계를 통제하기 위한 정책 위주로 그것도 일방적으로 발표하는 것은 결코 성공할 수 없는 정책 방향”이라고 말했다.
③의대 증원 “건강보험 재정 악화” vs “문제 없다”
의협은 대정부 궐기대회에서 “의대증원, 건강보험 재정 파탄낸다”는 구호를 외쳐왔다. 우봉식 의협 의료정책연구원 원장은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유인수요 가설’을 제시했다. 의료서비스 공급자가 늘어나면 의료 수요도 늘어나 의료비 지출이 커질 것이라는 논리다.
문석균 의료정책연구원 부원장은 “의사 수와 의료비의 상관관계는 이미 2007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연구 보고서에서 인구 1000명당 의사 1명 증가 시 의료비가 22% 증가하는 것으로 보고됐다”고 했다. 그는 유인수요 가설과 관련해 “보건의료시장에 참여하는 의사와 환자 간에 정보의 비대칭성이 존재해 의사는 의료서비스 이용을 유인, 목표소득을 달성하기 위해 의료서비스를 창출한다는 논리”라며 “의사 수 증가는 명백히 의료비 증가로 이어져 결국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박민수 복지부 차관은 지난 15·16일 브리핑에서 “유인수요 가설은 실증된 적이 없다”며 “의사가 늘면 환자가 지역 내에서 제때 의료를 이용할 수 있게 되어 의료적이고 사회적 비용이 모두 절감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건강보험 재정은 건전하게 운용되고 있다”며 “향후 5년간 10조원을 필수의료에 투입해도 적립금은 28조원을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④2000명 증원 “의학교육 질 저하 우려” vs “충분하다”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는 지난 19일 성명을 내고 “의대 입학정원 2000명 증원 재조정을 촉구한다”며 350명이 적정 증원 규모라고 밝혔다. 350명은 지난 2000년 의약분업 당시 의료계 요구로 감원된 인원이다.
협회는 “정부 원안대로 집행될 경우 수십 년간의 노력으로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렸던 우리나라의 의학교육 수준을 다시 후퇴시키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라며 했다. 지난해 말 정부의 수요조사 당시 2000명대 증원 수요를 각 대학에서 제출한 것과 관련해 협회는 “실제 교육 여건에 비추어 무리한 희망 증원 규모를 교육 당국에 제출하였던 점을 인정하고 이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한다”고도 했다.
박민수 차관은 20일 브리핑에서 “정부에서 실시한 40개 대학의 수요조사 결과 (2025학년도 최소 증원 수요) 2151명은 총장의 책임하에 학교 전체 사정을 감안해 제출된 것”이라며 “2000명 증원은 충분히 수용 가능한 규모”라고 말했다.
정부는 1980년대와 비교해 의대 정원은 현재 절반 수준으로 줄었으나 교수 수는 훨씬 늘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서울대 의대의 경우 1980년대 정원은 260명, 지금은 135명으로 줄어든 반면 현재 임상교수는 1985년의 3배 수준이라고 했다. 박 차관은 “정부는 2000명을 증원해도 현재 의학평가 기준을 준수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으며 의학교육 지원 정책도 병행할 예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