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지난해 11~12월 실시한 ‘산재보험제도 특정감사’ 최종 결과를 지난 20일 발표했다. “소위 산재 카르텔로 부당 보험급여가 누수되고 있다. 나이롱환자를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사라졌다” “전 정부의 고의적 방기로 조 단위 혈세가 줄줄 새고 있는 정황을 포착했다”며 떠들썩하게 시작한 감사였다. 그러나 감사 결과 근로복지공단·산재병원·산재환자가 유착한 ‘산재 카르텔’도, 조 단위 혈세가 줄줄 새는 정황도 확인되지 않았다. 애초에 허깨비를 그려놓고 시작한 감사였던 셈이다.
노동부는 이번 감사에서 2022~2023년 부정수급 486건(113억2500만원)을 적발했다고 했다. 지난해 산재 승인건수(14만4965건)의 0.3%, 보험급여 지출액(7조2849억원)의 0.15% 수준이다. 비위 행태도 사무장 노무법인, 브로커 개입 등 익히 알려진 것이다. 병이 없는데도 보험금을 타낸 ‘나이롱환자’ 사례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정부·여당은 산재급여 수급자 상당수가 나이롱환자이고, 산재보상 업무 종사자들이 비리 집단이라도 되는 양 몰아갔다.
배경은 쉬이 짐작된다. 노동부는 산재보험 제도개선TF에서 손질이 필요한 것 중 하나로 ‘추정의 원칙’을 꼽았다. 문재인 정부 때 도입된 ‘추정의 원칙’은 다빈도 근골격계 질병이나 직업성 암은 직종, 근무기간, 유효기간 충족 시 업무관련성이 높다고 추정해 일부 조사를 생략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보다 빨리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게 하기 위한 제도이다.
이번 감사에서 ‘추정의 원칙’과 관련한 부정 사례는 한 건도 없었다. 그런데도 노동부는 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부정수급과 아무 상관도 없는 ‘추정의 원칙’ 문제를 슬쩍 끼워넣었다. ‘추정의 원칙’ 축소·폐지는 재계의 요구다. 산재보험제도를 친기업적으로 뜯어고치기 위한 여론몰이용 감사였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고용보험을 놓고도 같은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 노동부는 고용보험 부정수급 사례를 기획조사해 부정수급자 218명(23억7000만원)을 적발하고 44억1000만원의 반환을 명령했다고 21일 밝혔다. 또 실업급여 부정수급 사례 등에 대해 상·하반기 2차례 특별점검을 하겠다고 했다. 정부·여당은 최저임금 80%인 실업급여 하한액의 삭감·폐지 등을 추진 중이다. “일부 부정수급 사례를 침소봉대해 고용보험 개악의 근거로 삼으려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