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취약한 ‘출산선택권’…여성들만의 싸움이 되어서는 안 된다

2024.03.20 21:18 입력 2024.03.20 21:21 수정
최정균 카이스트 교수

⑨ 철옹성 같은 4인 가족

지난해 어린이날 서울 능동 어린이대공원을 찾은 한 가족이 우의를 입고 동물원으로 향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지난해 어린이날 서울 능동 어린이대공원을 찾은 한 가족이 우의를 입고 동물원으로 향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전통적 가정상 강요하는 사회 압력이
여성들 출산과 양육을 당연한 희생으로 간주하게 만들고,
그에 대한 사회적 지지와 경제적 지원을 불필요한 것으로 치부

남성과 평등한 권리를 갖는 여성은 결코 진화에 의해서가 아니라
지성과 불굴의 의지, 용기로 얻어지는 것이며 싸워서 쟁취해야 하는 것

우리가 살고 있는 온전하지 않은 이 세계에 완벽한 균형이란 없다. 암컷과 수컷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오랜 자연선택의 역사는 힘이라는 그 균형의 추를 수컷에게로 기울여놓았다. 남성 중심의 사고에서 비롯된 진화생물학적 편견과 싸워온 페미니스트이자 저명한 인류학자 사라 블래퍼 허디는 자신의 책 <여성은 진화하지 않았다>에서 이렇게 말한다. “페미니스트들은 생물학이 인간의 비밀을 밝혀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몹시 싫어한다. 그 결과가 여성에게 불리할 것을 짐작하여 알기 때문이다.” 이어 허디는 인류 역사에 모권사회가 지배적인 시기가 있었다는 일부 페미니스트들의 믿음은 인류학과 고고학의 증거들로 뒷받침되지 않는 환상일 뿐이라는 냉정한 현실을 폭로한다. 여성 우월의 모권사회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발견되지 않았다.

힘의 불균형. 인간과 동물의 보편적인 짝짓기의 비극은 바로 거기에서 비롯된다. 이 갈등의 근본 원인은, 유전자의 관점에서 볼 때 암컷이나 수컷 한쪽에게 이익이 되는 전략이 상대의 이익과는 부합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다. 특히 태어난 자식이 생존하는 데 부모 중 어느 한쪽의 기여가 필수적인 경우, 결국 아비와 어미 중 누가 먼저 양육의 책임을 저버리고 더 많은 자손을 만들 기회를 찾아 다른 상대를 찾아나설지에 대한 싸움이 시작될 수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인간을 비롯한 많은 종의 경우 결국 수컷이 아예 떠나버리거나 혹은 최소한의 투자로 여러 살림을 꾸리는 것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말았다.

<총, 균, 쇠>의 저자로 유명한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실은 생리학을 전공한 진화생물학자다. 그는 번식과 양육을 둘러싼 줄다리기가 이렇게 수컷의 승리로 종결된 이유, 즉 암컷이 불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하여 설명한다. 첫째, 새끼가 태어날 때까지 수정란에 그동안 투자한 정도가 암컷이 월등히 높다는 점. 둘째, 암컷은 임신 및 수유 기간 동안 다른 수컷과 교미를 하더라도 임신이 되지 않으므로 새로운 짝을 통해 얻게 되는 이득이 없다는 점. 셋째, 암컷의 몸 안에 있는 새끼가 자신의 것인지 수컷으로서는 암컷과 동등한 수준의 확신을 가질 수 없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그의 책 <섹스의 진화>에서 다이아몬드는 도덕적 분노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인간 대신에 널리 연구된 알락딱새를 예로 들면서, 어떻게 수컷들이 교활한 방식으로 암컷을 속여가며 일부다처를 실현할 수 있는지를 자세히 묘사한다.

그러나 출산과 양육의 ‘책임’을 떠안은 만큼 암컷은 ‘권리’라는 무기로 그나마 대항할 수 있었다. 자연세계에서 암컷에게 주어진 권리는 바로 짝짓기 선택권이다. 지난 글 ‘유한계급이 된 호모 루덴스’에서 설명했듯이 수컷은 생존의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값비싼 신호’를 발달시켜 암컷에게 절박한 구애를 한다. 그리고 어느 수컷을 선택할 것인가는 암컷의 몫이다. 번식에 대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암컷이 수동적인 경우는 거의 없고 암컷의 선호도가 결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번식활동은 사실 암컷에 의해 좌지우지된다고 볼 수도 있다. 예일대학교 조류학과 교수 리처드 프럼은 그의 책 <아름다움의 진화>에서 수컷 새들의 세계에 넘쳐나는 아름다움은 바로 미적 감각을 활용한 암컷의 짝짓기 선택권에 의해 진화된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물론 늘 아름다움만 있는 것은 아니다. 42㎝의 거대한 페니스를 자랑하는 수컷 오리들은 이미 짝이 있는 다른 암컷과 강제 교미를 감행하고 때때로 윤간도 시도한다. 그러나 그런 오리조차도 어떻게든 암컷의 선택권을 높이는 쪽으로 진화해왔다. 시계 방향으로 꼬여 있는 암컷의 질 구조는 반시계 방향으로 꼬여 있는 수컷 페니스의 반대다. 수컷이 강제 삽입하더라도 수정이 될 만큼 깊이 진입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암컷이 편한 자세를 허용하지 않는다면 수컷의 정자는 난자 가까이 도달하기 힘들다. 실제로 다수 오리 종을 대상으로 한 친자확인 검사 결과, 강제 교미를 통해 탄생한 새끼는 2~5%에 불과했다. 암컷 오리가 하는 전체 교미 중 40%가 강제로 이뤄진다는 점을 고려할 때 원치 않는 임신 확률은 매우 낮은 것이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 사라 블래퍼 허디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 사라 블래퍼 허디

그러나 문제는 인간이다. 인간은 사회와 문화를 형성해가면서 남녀의 진화적 줄다리기에 인위적인 제도를 개입시키기 시작했다. 구조주의 인류학의 창시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에 의하면, 결혼은 남편과 아내 사이의 계약을 넘어 이들 주변의 사회적 관계를 통해 작동하는 남자들 간의 거래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여성을 상품화하고 그 상품의 주인인 다른 남성에게 값을 지불하여 여성을 사오기 시작함으로써, 남자들은 자존심 상하는(!) 구애 행위를, 당당한(!) 거래 행위로 바꾼 것이다. 이것은 다른 동물들과 다른 인간만의 특징이다. 지금도 현대사회의 결혼식을 보면 아버지가 딸을 다른 남자에게 내어주는 풍습이 남아있듯이, 대다수의 과거 인간 사회에서 남자들은 아내를 사기 위해 직접 돈을 지불하거나 노동을 했다. 게다가 여자가 임신을 못하여 자녀를 생산해주지 못하는 경우, 즉 그 거래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경우 환불을 요구하거나 여동생이라는 새 상품과의 교환을 요구하기까지 했다.

반대로 딸이 있는 집안에서는 상품성을 높이기 위해 딸의 평판과 자질에 큰 관심을 기울여야 했다. 특히 신부의 순결을 지키기 위해 베일을 사용하고 외부와 철저히 격리시키는 등 극도로 엄격한 윤리제도를 만들어 순종을 강요했다. 결혼과 함께 집을 떠나 남자의 고향으로 가야 했던 관습 역시 여성들이 가까운 도움에서 단절된 채 시댁식구의 감시 속에 극단적으로 제한된 자유 속에 살도록 만들었다. 여성의 정절을 지키게 하기 위한 남성들의 노력은 이런 차원에서 그치지 않았다. 남성의 할례와 달리 클리토리스의 제거는 성적인 쾌락을 효과적으로 감소시킬 수 있는 수단으로 사용되어왔다.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이 충격적인 관습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고대 이집트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집트 여성의 미라를 보면 당시 클리토리스 제거와 음순봉합이 모두 실시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보다 현대화된 혹은 문명화된 사회들에서는 최소한 여성의 짝짓기 선택권은 남성과 동등하게 확보되어 있지 않은가? 물론 그렇기는 하지만, 다시 한번 문제는 결혼 제도와 사회적 관습에 있다. 박해영 작가의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난 무리 지어 다니는 여자들보다 4인 가족이 더 꼴 보기 싫어. 그 철옹성.” 철옹성 같은 4인 가족. 이 사회에서 인정받는 가장 모범적인 혈연 가족의 형태를 표현하는 말이다.

문제는 이러한 전통적인 가정상을 강요하는 사회적 압력이 여성들의 출산과 양육을 마땅하고 당연한 희생으로 간주하게 만들고 따라서 그에 대한 사회적 지지와 경제적 지원을 불필요한 것으로 만든다는 점이다.

영국의 유력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23년 7월 기사에서 동아시아 국가들의 결혼 풍조에 대해 다룬 바 있다. 유교적 전통하에서 여전히 결혼은 지배적인 남성과 순종적인 여성의 결합으로 이해되고 있다며, 한국에서 기혼 여성을 집사람(home person), 남편을 바깥양반(man outside)이라고 칭하는 풍토를 꼬집기도 했다. 특히 심각한 문제는 이런 전통적 가치관이 직장 여성들에게 미치는 영향이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교육 수준을 자랑하는 한국의 여성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큰 남녀 간 임금 격차를 감내하고 있다. 고임금의 전문직 여성들조차, 남편이나 그의 가족 구성원들 혹은 문화적 억압으로 인해 사회활동에 제약을 받기도 한다.

주익현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원은 아내가 남편보다 더 많이 벌게 되는 시점부터 아내의 가사노동 시간이 오히려 증가하는 현상에 대해, 아내가 남편보다 소득 수준이 높다는 사실이 전통적 가치관을 벗어나는 일종의 일탈로 받아들여진다는 심리적 부담감 때문에 고소득 여성들이 더 많은 시간을 가사노동에 할애하고 있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이러한 유교 전통 국가들의 또 다른 중요한 문제는, 전통적인 혈연 가족 외에 다른 형태의 가정이나 그 안에서의 출산도 쉬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각국 정부의 시대착오적인 행보는 그것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저출산을 페미니즘 탓으로 돌리는 윤석열 정부는 비혼모를 포함하는 한부모 가정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려 했던 이전 정부의 노력을 중단시켜버렸고, 시진핑 통치하의 중국은 유교 문화의 부흥을 외치며 성소수자 인권운동가들을 잡아들이고 있으며, 일본의 자유민주당은 동성 간의 결혼을 반대하는 등 결혼제도 개혁에 제동을 걸고 있다.

결국 출산과 양육에 대한 ‘책임’의 대가로서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여성들의 싸움은 오랜 진화의 역사, 고대사회의 반인륜적인 관습을 거쳐, 일부 현대사회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한국과 동아시아 지역의 여성들은 짝짓기 선택권만큼은 확보한 듯 보이지만, 여전히 지지부진한 사회적 지지와 지원 속에 출산에 대한 선택권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직업을 유지하기 위해 출산이나 혹은 아예 결혼 자체를 미루거나 포기하고 있으며, 이것은 지난 글들에서 이야기한 과열된 경쟁과 교육열의 문제와 함께 인류 역사상 초유의 저출산 현상을 초래하고 있다.

생물학은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여성의 편이 아니다. 임신이 여성의 신체에 미치는 막대한 영향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기억력 감퇴와 인지기능의 문제가 뒤따른다는 보고도 많다. 국제학술지 ‘네이처 신경과학’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임신 중에 사회인지를 담당하는 뇌 부위의 크기가 줄어드는데 이러한 뇌 구조의 변화가 출산 2년 후까지 지속된다는 결과가 나타났다. 이는 뇌세포 연결망의 가지치기를 통해 어머니의 뇌가 아이의 양육에만 특화되도록 만드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즉 직업의 세계에서 볼 때, 출산을 거치는 여성들은 신체적으로뿐 아니라 인지기능과 사회성의 측면에서도 남성에 비해 더욱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생물학적 변화를 자연의 섭리라는 이름으로 군말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아니, 오히려 생물학적 취약성에 대항하여 함께 힘을 합쳐 싸우는 것이야말로 문명의 존재 목적이며 오늘날 우리가 자연이 아닌 문명사회에 살고 있는 이유가 아니던가? 그동안 여성들이 사회적 관습에 의해 빼앗겼던 짝짓기 선택권을 쟁취해낸 것도 자연이 부여한 권리를 되찾고자 함이 아니었다. 그저 그것이 부당하기 때문이었다. 허디는 이렇게 말한다. “남성과 평등한 권리를 갖는 여성은 결코 진화되지 않았다. 그것은 진화에 의해서가 아니라 지성과 불굴의 의지, 용기로 얻어지는 것이며 싸워서 쟁취해야 하는 것이다.” 제대로 된 문명사회라면 더 이상 이것이 여성들만의 싸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최정균 교수

[최정균의 유전자 천태만상]여전히 취약한 ‘출산선택권’…여성들만의 싸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카이스트 교수로 2009년부터 재직하며 인간유전체학을 연구하고 있다. 연구목표는 암을 비롯한 여러 질병의 유전학적 원인 규명과 진단 및 치료기술 개발이며, 진화론을 접목하고 인공지능(AI)을 활용하는 데 관심이 많다. 아산의학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선정 과학기술인상을 포함해 여러 학회의 학술상을 수상하였고, 과학기술한림원 선도과학자, 포스코사이언스펠로십에 선정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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