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 KBS 사장 취임에 맞춰 ‘방송 장악 시나리오’를 짠 비밀 문건이 뒤늦게 공개돼 파문이 일고 있다.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가 지난달 31일 방송한 KBS 대외비 문서를 보면, 낙하산 사장을 통한 공영방송 장악 실행계획서와 다를 바 없다. ‘위기는 곧 기회다’ 제목이 붙은 이 문건에는 ‘사장 제청 즉시 챙겨야 할 긴급 현안’으로 대국민 담화(사과) 준비, 우파 인사 통한 조직 장악, 임명동의제 무시한 국장 인사 등이 적시됐다. 그 계획대로, 박 사장은 취임 당일 부사장·본부장 등을 교체했고, 취임 이튿날 그동안의 KBS 보도를 “불공정·편파 방송이었다”며 대국민 사과를 했고, 올 1월 보도국장 등 주요 5대 국장은 임명동의제 없이 임명을 강행했다. 문건 내용이 상당수 시행된 것이다. 무엇보다 보도 공정성과 인사 중립성을 위해 노사가 합의한 임명동의제를 ‘독소조항’으로 보는 인식엔 등골이 서늘할 뿐이다.
윤석열 정부는 박 사장을 낙점하기 위해 파행과 속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그 이유가 공영방송을 손에 쥐고 흔들어 정권 입맛대로 좌지우지하겠다는 것이었음을 이 문건은 보여주고 있다. 이러니 KBS가 윤 대통령과의 신년 대담에서 김건희 여사가 받은 명품 가방을 “작은 파우치”라고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거 아닌가.
또 다른 공영방송 MBC도 정권의 집중 포화를 맞고 있다. 대통령실 황상무 수석은 ‘회칼 테러’ 발언을 서슴지 않았고, 방송통신위원회·선거방송심의위원회는 하루가 멀다 하고 MBC를 검열대 위에 세우고 있다. 보도전문 YTN도 급작스레 민영화를 추진하더니, 신임 사장에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기자들의 해고·중징계를 주도한 인사가 임명됐다. SBS엔 김건희특검에 ‘여사’ 호칭을 뺐다고 제재했다.
방송을 ‘입틀막’하려는 정권의 칼날이 1980년 전두환 신군부 시절을 방불케 한다. 박민 사장은 민주주의를 흔드는 대외비 문건의 실상을 국민 앞에 밝혀야 한다. 윤 대통령은 방송 장악의 헛된 꿈을 포기하고 공영방송 인사·보도의 독립성을 지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