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전 유보적 입장서 돌변, ‘반대’ 못박아
전문가 “기존 재정 스케쥴로는 감당 못할 것”
야당이 전국민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위한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추경은 경기 침체가 올 때 하는 것”이라며 추경 제안을 일축했다. 고금리·고물가가 장기화하고 환율 상승까지 이어져 내수 부진이 이어지고 있지만 현재의 재정 긴축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하지만 대내외 경제 여건이 당초 정부 전망치보다 악화한데다 상반기 미미한 경기 개선 효과를 감안하면 기존 대책으로는 역부족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총선에서 참패한 여당 내에서도 야당 제안에 “실현 가능성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와 추이가 주목된다.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 참석 등을 위해 미국을 방문중인 최 부총리는 18일(현지시간) 기자들과 만나 “추경은 경기 침체가 올 경우에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지금은 민생이나 사회적 약자를 중심으로 한 타깃 (목표)계층을 향해서 지원하는 것이 재정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앞서 더불어민주당은 경제 위기 대응을 위한 추경 편성을 제안했다. 민주당 총선 공약인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13조원) 지급을 비롯해 소상공인 대출 및 이자 부담 완화(1조원), 소상공인 전통시장 자금(4000억원) 지원을 위해서는 15조원 가량의 추경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최 부총리는 민생과 약자 복지를 강조하는 하면서도 추경 편성 요구에는 선을 그었다. 보편 지원보다는 선별 지원을 강조하는 모양새다.
최 부총리는 “올해 예산을 잡을 때 복지예산이나 민생예산에 어느 때보다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며 “그런데도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기금을 변경하거나 이·전용을 해서 확대할 것은 확대하고, 또 내년도 예산을 담을 때 더 고려하겠다”고 했다. 지난 3월 민주당의 추경 요구에 대해 “선거를 앞두고 여야 공약에 대해 말하는 건 적절치 않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던 것과 달리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한 것이다.
정부는 경기 대응을 위해 올해 1분기에만 재정 213조5000억원을 집행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7조4000억원 늘어난 규모로 연간 재정집행 계획(561조8000억)의 38.0%에 달한다. 주요 재정집행 내역을 보면 약자복지(노인·저소득층·청년·기타) 지원에 31조4000억원, 일자리 지원 7조원, 도로·철도 등 사회간접자본(SOC)사업에 8조9000억원을 투입했다.
재정집행 속도를 높였지만 고금리·고물가로 현실 체감 경기는 여전히 바닥을 밑돌고 있다. 상반기 재정 조기집행으로 하반기에는 ‘약발’이 떨어질 우려가 높다. 세수 부족이 이어지면서 정부 재정 여력도 불안한 양상이다.
하반기 전망도 좋지 않다. 높은 환율이 수입 물가를 끌어올려 내수 침체가 짙어질 가능성이 크다. 수입 물가가 오르면 국내 물가를 밀어 올리기 때문에 국내 소비도 위축된다. 여기에 중동 사태로 국제 유가마저 요동치면서 물가를 자극하고 있다.
최 부총리는 “민생의 어려움과 물가와 관련해서는 항상 무겁게 느끼고 있다”면서도 “근원 물가(에너지·식품 제외)의 경우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보면 우리는 안정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존에 하고 있는 (고물가) 대책은 최대한 더 지속을 하면서 확대할 것은 확대해 더 유연하게 해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고물가·고금리·고환율 ‘3고’ 위기를 벗어나려면 전환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진단한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1분기 SOC를 중심으로 한 재정집행은 경기 대응이 안 됐고 복지지원도 민생을 개선하기엔 역부족이었다”며 “세수진도율이 저조한 상황에서 하반기 경기 대응을 하려면 기존 재정 스케쥴로는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추경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간 추경 편성에 부정적이던 여당 내부에서도 전향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 겸 당 대표 지난 17일 “정부에선 민생회복 지원금 지급에 대해서 예산 재원 마련 대책이라든지 고민해야 한다. 아마 정부에서 실현 가능한 얘기인지 검토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당의 총선 참패에는 고물가 등 민생경제 어려움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많은 만큼 여당의 입장 변화에 따라 추경 논의가 본격화할 여지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