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세 미만 발병 ‘초로기 치매’
치매를 바라보는 인식은 점차 바뀌어 왔다. 과거에는 노인만 겪는 노화 현상의 하나로 생각했으나 근래 들어 비교적 젊은 사람들의 치매 발병 사례가 알려지면서 뇌에 발생하는 질환이라는 인식이 더욱 강해지고 있다. 정상적으로 생활하던 사람에게 기억력을 비롯해 여러 인지기능의 장애가 나타나 일상생활을 하기 힘들 정도로 심한 영향을 주는 상태인 치매는 더 이상 노인만의 병이 아니게 된 셈이다.
65세 미만 연령대에 발병하는 치매를 초로기(조발성) 치매라고 부른다. 중앙치매센터의 ‘대한민국 치매현황 2022’ 자료를 보면 2021년 기준 전체 치매환자 97만명 중 65세 미만의 치매 환자는 약 8만명으로 전체의 9%를 차지한다. 초로기 치매에 대해 현재까지 알려진 원인으로는 알츠하이머 치매, 혈관성 치매, 전두측두엽 치매, 알코올성 치매가 꼽히는데, 그중 알츠하이머 치매가 약 3분의 1가량을 차지한다. 또한 전두측두엽 치매와 같이 노년기 치매에서는 발병 빈도가 적은 치매가 초로기 치매에서는 높은 비율로 나타나는 특성도 보인다.
초로기 치매는 노인성 치매보다 진단이 어려운 편이다. 노인성 치매와는 다소 다른 증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초로기 치매에선 노인성 치매의 주요 증상인 기억력 저하보다는 성격변화, 이상행동, 판단력 또는 실행능력 저하, 언어장애 등 다양한 증상이 첫 증상으로 나타난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이 치매라 의심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으며 환자 자신도 젊다는 생각 때문에 진단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병이 상당히 진행된 뒤에야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강성훈 고려대 구로병원 신경과 교수는 “젊은 나이라도 중요한 사항을 잊거나 능숙하게 하던 일을 잘 하지 못하고 예전보다 감정기복이 심해지며 쉽게 화가 나는 등의 증상이 지속될 경우 신경과 전문의와의 진료를 통해 원인 질환을 감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성격 바뀌고 이상행동, 기억력 저하
젊은 치매, 노인성보다 진단 어렵고
뇌세포 손상 빨라 생존기간도 짧아
맨손체조 등 가벼운 운동 생활화
배우고 경험하는 뇌 자극 활동 중요
진단이 어려운 데는 영상의학 검사로도 감별이 쉽지 않은 특성도 작용한다. 초로기 치매 역시 기존 치매검사와 같이 문진, 인지기능검사, 뇌영상 검사 등을 바탕으로 하지만 영상을 통해 판별하기에는 뇌 위축이 노인성 치매보다 경미한 상태인 점이 문제다. 특히 초로기 치매의 흔한 원인인 알츠하이머 치매와 전두측두엽 치매의 감별이 어려운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 양전자단층촬영(PET-CT) 검사를 통해 진단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양전자단층촬영은 보통 암 전이를 확인하기 위해 쓰이지만 뇌의 형태나 구조적 이상을 확인해 치매 진단에 활용되기도 한다. 특히 초로기 치매에선 원인을 감별하기 위해 뇌의 각 부위마다 포도당을 얼마나 사용하고 있는지, 치매를 유발하는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얼마나 축적돼 있는지를 살펴보는 데 쓰인다. 알츠하이머병은 초기에는 양측 옆쪽으로 뇌세포의 활동이 떨어진 소견을 보인다. 전두측두엽 치매는 뇌 앞쪽으로 뇌 세포들의 활동이 떨어진 소견을 볼 수 있다. 말기에는 대부분의 치매에서 뇌 전반적으로 활동이 떨어진 소견을 관찰할 수 있다.
초로기 치매에선 일반적인 노인성 치매보다 뇌세포 손상이 빠르게 진행되어 더욱 위험하기 때문에 정확한 원인 파악이 중요하다. 환자들의 평균적인 생존기간도 짧은 편이다. 통상적인 노인성 알츠하이머 치매의 생존기간은 진단 후 평균 10년이지만 초로기 치매는 평균 6년에 불과하다. 이은주 세란병원 신경과 과장은 “초로기 치매 중 알츠하이머 치매를 감별할 때엔 가족성 여부를 구분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가족성 알츠하이머 치매는 비가족성보다 빠르게 진행되어 보다 어린 연령에 발병하며 기억력 저하가 두드러지고, 두통, 보행장애, 경련 증상이 더욱 빈번하게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치료 역시 알츠하이머 치매와 혈관성 치매, 전두측두엽 치매 등 원인 질환에 맞춰 약물을 사용한다. 가벼운 우울감이나 주변을 배회하는 증상,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등의 증상은 약물을 사용하는 대신 환자의 증상을 악화시키는 환경이나 대인관계 요소들을 통제하는 치료로도 반응을 나타낼 수 있다. 환자에게 익숙한 환경을 유지하면서 스트레스를 줄이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편안한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치료 여건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초로기 치매 예방법은 다른 치매와 특별히 다르지 않다. 최고의 치료법이기도 한 예방법은 생활습관 개선이 바탕이 돼야 한다. 우선 운동을 생활화하고 자주 걸으며 움직이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다. 운동은 뇌의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뇌신경을 보호하는 역할을 해 뇌 기능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준다. 다양한 스포츠 활동을 해도 치매 예방에 효과가 있지만 격렬한 운동이 부담스럽다면 걷기나 맨손체조 같은 단순한 운동을 규칙적으로 시행하기만 해도 예방에 도움이 된다.
이와 함께 전문가들은 적극적인 두뇌활동을 권장한다. 젊은 시절 공부를 많이 하거나 두뇌를 많이 사용한 경우엔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치매의 위험이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가능하다면 지속적으로 일을 하는 것도 좋다. 특히 많은 생각을 해야 하고 정확성이 필요한 일, 정해진 시간에 맞춰 끝내야 하는 집중력을 요구하는 일을 하는 경우 인지장애의 위험이 약 30% 낮아진다는 연구도 있다. 강성훈 교수는 “나이가 들어서도 활발한 두뇌활동을 할 경우 치매를 예방하는 데 효과적”이라며 “배움에는 정년이 없으므로 새로운 것을 배우고 경험하는 과정을 통해 뇌를 자극시켜 뇌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뇌 건강에 유익한 식생활을 유지하는 것도 예방과 치료에 도움이 된다. 뇌가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식습관은 제때에 맞춰 골고루 적당한 양을 먹는 것이다. 생선과 채소, 과일 등 항산화 물질이 충분히 들어 있고 뇌 건강에 좋은 음식을 매일 먹을 경우 치매 발생 확률이 낮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고혈압과 비만, 당뇨병 등의 기저질환이 있다면 치매 발병 위험을 더욱 높일 수 있으므로 적절한 식사와 운동은 물론 질환에 맞는 치료를 통해 꾸준히 관리할 필요가 있다.
초로기 치매 역시 초기에 발견해 꾸준히 치료를 받으면 증상이 악화되는 것을 최대한 막을 수 있다. 이은주 과장은 “치매의 가장 흔한 원인인 알츠하이머병도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면 인지기능의 저하를 더 늦출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치매는 조기 발견과 치료가 중요하며 이미 치매가 진행 중이어도 적절한 평가와 치료를 통해 호전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