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80은 관절염에 임플란트
2030은 아토피에 대상포진 등
같이 늙어가는 이야기에 공감
몸과 마음, 공부 나누는 길벗들
같은 듯 다르지만 삶은 똑같아
나는 고전평론가다. ‘고전의 지혜’를 현대인의 ‘삶의 현장’과 연결시켜 주는 전령사라는 뜻이다. 그럴싸해 보이지만 그냥 백수다. 또 사회적인 범주로는 60대 독거노인이다. 좀 처량해 보이지만 나름 ‘명랑한’ 일상을 누리고 있다. 우리 사회는 이미 1인 가구가 대세가 되었고, 그것도 전 연령에 걸쳐 있다고 한다. 그럼 이렇게 분화된 1인들은 세상과 어떻게 연결될까? 이것은 정치경제학을 넘어 인류학적 과제에 속한다. 이런 차원에서 일단 내 주변의 상황부터 추적, 관찰을 시도해 보았다.
나의 일상은 주로 남산 아래 필동에 있는 공부공동체(감이당&남산강학원)에서 이뤄진다. 감이당은 6080세대가, 남산강학원은 2030세대가 주를 이룬다. 세대 간 장벽이 두꺼울 법도 한데, 현장은 의외로 잘 ‘통’한다. 채널은 대략 세 가지다.
첫째, 신체 상태. 6080은 말한다. 나이 드니까 여기저기 안 아픈 데가 없어! 관절염에 임플란트, 갑상선 장애에 불면증까지. 2030은 응답한다. 저희도 그런데요. 아토피는 기본이고 골다공증에 이명, 대상포진까지. 아니, 그 팔팔한 나이에 왜? 소위 ‘MZ세대’는 디지털 세상에 태어나 몸을 쓸 기회가 거의 없었고 영양과잉에다 각종 MSG에 길들여져 있다. 면역계는 물론이고 근골격계가 심각하게 허약하다. 노년내과에선 이런 증상을 ‘가속노화’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지금 청년들은 겉은 ‘브링브링’하지만 속은 ‘골골하는’ 셈이다. 그에 비하면 6080은 단군 이래 가장 활기찬 노년에 속한다. 육체노동의 시대에 성장했고 가난해서 먹을 게 넉넉하지 않았다. 또 산전수전을 두루 겪다 보니 기본 뼈대가 튼실한 편이다. 노화가 시작될 즈음 디지털 문명을 만나 고단한 육체노동에서 벗어난 것도 큰 행운이다. 결국 청년은 가속노화, 중년은 자연노화! 결국 ‘같이 늙어가는’ 처지가 된 것. 자연히 서로 주고받을 이야기가 넘쳐난다.
둘째, 내면 풍경. 우리 시대 청년들은 인정욕망에 시달리느라 지칠 대로 지쳐 있다. 20세기에는 먹고살기가 어렵다 보니 도처에 공동체가 있었고, 게다가 함께 연대해야 할 시대적 미션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현장과 배치는 완전히 증발했다. 남은 건 오직 게임이다. 부동산, 주식, 코인은 말할 것도 없고 일상의 모든 것이 게임이다. 노래도 게임, 연애도 게임, 행복도, 몸매도 다 게임이다. 우리나라가 <오징어 게임>으로 세계를 뒤흔든 게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하지만 <오징어 게임>의 결말이 그렇듯 중도 탈락자건 최후의 승자건 결론은 처참하다 - 죽거나 나쁘거나! 하여, 청년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둘 중 하나다. 불나방처럼 게임에 뛰어들거나 아니면 은둔형 외톨이가 되거나. 청춘의 에로스를 발산하기도 전에 이미 영혼이 탈탈 털린 셈이다. 한편, 중년들도 ‘깊은 공허’에 빠져 있다. 그동안 죽도록 일하고 가족을 부양하고 시대적 미션까지 수행하느라 쉴 틈이 없었다. 그러다 갱년기가 되자 문득 일도 가족도 미션도 다 증발해 버렸다. 한데 100세 시대란다. 살아갈 날이 아직도 한참이다. 대체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하지? 이 막막함과 헛헛함이 다시 2030과 6080을 이어준다.
마지막, 감이당의 공부는 동의보감과 주역, 불경과 양자역학, 철학과 인류학 등이 주류를 이룬다. ‘몸에서 자연으로’, ‘마음에서 우주로’라는 비전을 추구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밟게 되는 코스다. 물론 치열한 모색과 고투의 여정이 있었다. 하지만 청년들은 이 코스에 ‘단도직입’한다. 고민이고 뭐고 없다. 자기가 누구인지, 어떻게 사는 게 좋은 삶인지 알 수만 있다면 뭐든 상관없다는 태도다. 요컨대, 중년들에겐 이 공부가 ‘생로병사’의 비전으로 이어지는 고도의 지성이지만 청년들에겐 ‘지금, 당장’을 버티게 해주는 생존의 전략이다. 아무튼 그래서 또 잘 ‘통’한다.
이렇게 해서 감이당의 2080은 세대 간 장벽을 넘어 ‘몸과 마음, 공부’를 함께 나누는 길벗이 되었다. 그 원천에 ‘가속노화’, ‘게임지옥’이 있다고 생각하면 좀 씁쓸하긴 하지만 그래서 또 기묘하다. 그 덕분에 이렇게 ‘세대공감’의 현장이 열렸으니 말이다.
나는 이 데이터가 널리 활용되기를 희망한다. 그리하여 2030이 ‘외딴 방’에서 나와 청춘의 파토스를 만끽할 수 있기를! 6080이 ‘가족·노동·화폐’라는 낡은 표상에서 탈주하여 생의 새로운 연대기를 창조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