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정책 기조 전환이 절실하다

2024.04.30 20:59 입력 2024.05.01 14:58 수정

서민들 물가부담이 크다. 소비자물가의 1년 전 동월 대비 상승률은 2022년 7월 6.3%에서 2024년 3월 3.1%로 떨어졌다. 그러나 그것은 통계 착시였다. 2022년 가파른 인플레이션의 기저효과를 감안해 3년 전 동월과 비교하면 물가상승률은 작년 초 10%에서 작년 10월 13%까지 꾸준히 올랐다. 올해 3월도 12%에 머물러 있다. 물가상승세는 아예 제대로 꺾인 적이 없는 셈이다. 물가가 울퉁불퉁한 길로 내려오는 중이라던 불과 두 달 전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말은 틀렸다.

이창용 총재는 4월12일에는 농산물 수입 확대를 주문했다. 그 처방도 틀렸다. 윤석열 정부는 집권 직후부터 이미 매달 농산물 수입을 확대해왔다. 그렇게 해서 물가가 잡힐 것이었으면 벌써 몇번은 잡히고도 남았다. 무관세나 저율 관세로 해외 농산물을 들여오면 독과점 도매상이 농가에 치르는 값만 떨어진다. 유통업체들이 물량을 확보하고도 가격상승을 노려 사재기에 나서는 마당에 소비자가격이 떨어질 리는 없다.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시장 도매상들이 지난해 사상 최대의 횡재 이익을 누리는 동안 농가의 태반은 생산비도 건지지 못해 밭을 갈아엎었다. 물가를 잡아야지 왜 농민을 잡나.

치솟는 물가에 노동자들의 삶도 고단하다. 고용노동부 사업체노동력조사 결과는 평균 실질임금이 윤석열 정부 집권 전에는 상승했는데 집권 후 작년 말까지 7개 분기 연속적으로전년 동기보다 하락한 것으로 확인된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결과에서는 소득 5분위별 가구당 실질소득이 2019년부터 2021년까지 2년 사이에는 가난한 1분위가 부유한 5분위보다 증가율이 더 컸는데, 윤석열 정부 기간이 포함된 2021년부터 2023년까지 2년 사이에는 반대로 1분위보다 5분위의 실질소득 증가율이 더 컸다.

양극화의 증거는 더 있다. 가계동향조사 소득 10분위별 가구당 가계수지를 비교하면 2020년 1분기부터 2022년 1분기까지 부유한 10분위와 가난한 1분위의 가계수지 차이는 월평균 492만원이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 기간인 2022년 2분기부터 2023년 말까지 그 차이는 월평균 518만원으로 벌어졌다.

민생의 어려움은 일자리가 제한된 현실과도 연결된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농림어업, 보건복지, 공공행정 분야를 제외하면 2022년에는 일자리가 약 50만개 늘었는데 작년은 17만개 증가에 그쳤다. 제조업에서는 일자리가 절대적으로 줄었다. 공식실업자 수에 잠재구직자 등 불완전고용 인구를 더하면 그 규모가 2021년 초 500만명에서 이후 계속 줄었으나 윤석열 정부 기간에 300만명 수준에서 감소세가 멈췄다.

2022년 3분기부터 작년 2분기까지는 수출 감소가, 그리고 작년 3분기부터 최근까지는 내수 부족이 경제회복의 발목을 잡았다. 기간을 달리하며 가시화된 두 현상 모두 해외수요와 민간부채에 의존해온 한국경제의 오랜 구조적 요인의 효과였지만 또한 윤석열 정부 경제정책 실패의 귀결이기도 했다. 그러니 ‘무늬만 가치동맹’의 꼭두각시를 자처하며 미국의 일방적인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에 별 대책 없이 끌려다니는 편향적인 대외정책도 문제고, 무능한 통화정책도 그리고 부자감세로 파탄이 난 재정정책도 문제다.

그렇다면 현시점에서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은 당장 무엇을 할 것인가. 국제통화기금(IMF)의 최근 세계경제전망은 ‘산출 갭’(경제가 장기 성장 추세로부터 괴리된 정도)을 기준으로 한국경제가 2022년만 빼고 몇년째 불황이 이어지는 것으로 보고한다. 불황일 때 금리를 올리면 경제 내 누적된 부실을 이참에 정리할 수 있을 듯해도 자칫 파산 위험 확대에 따라오는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 그럴 때 제일 고통받는 계층은 기층 민중이다. 더욱이 한국은행에서도 4월12일 인정했지 않나. 공급 측 원인에 기인한 물가상승은 금리 인상으로는 통제 못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한편 일각에서는 현 상황을 두고 국가채무 폭증을 우려하며 재정을 풀면 당장 경제위기라도 닥칠 것처럼 경계한다. 그러나 국채이자가 국민소득의 1%에 그쳐 경제학자 래리 서머스가 대안적 재정준칙으로 제안한 경곗값 2%에도 채 못 미치는데 국가채무가 과도하다는 주장은 설득력 없다. 필자의 시산에 따르면 물가 자극 없이 2022년 수준의 경제활동을 회복하려면 올해 추가 재정지출이 약 20조원 필요한 것으로 나타난다. 총선 민의를 존중해 그간의 부자감세 조치들을 원점으로 되돌리고 과감한 추경 편성으로 민생을 위무하는 재정 역할을 복원해야 한다. 경제정책의 기조 전환이 절실하다.

나원준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

나원준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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