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기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가 세균에도 중복감염돼 폐렴·균혈증 같은 질환이 발병하는 과정을 규명한 연구결과가 나왔다. 중복감염을 예방하면 균혈증 발병에 따른 사망률을 최대 55%까지 낮추는 효과가 나타났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의생명과학부 유지환·정연욱 교수, 문성민 연구원 연구팀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호흡기관의 표면세포에서 비정상적으로 증가하는 특정 수용체가 체내 중복감염을 유발하는 기전을 규명했다고 17일 밝혔다. 이 연구는 국제학술지 ‘네이쳐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실렸다.
코·목·폐 등의 호흡기관에서 가장 표면에 있는 ‘호흡기 상피세포’는 외부 자극이나 유해물질로부터 인체를 보호하는 장벽 기능을 한다. 이 세포가 바이러스 등에 감염되면 본연의 방어 기능이 저하되면서 또 다른 병원체에 감염되는 중복감염이 일어나기 쉽다. 대표적으로 황색포도상구균은 호흡기관에 붙어 기생하다가 호흡기 바이러스에 감염돼 면역력이 떨어진 환자나 영유아, 노인에게 폐렴·균혈증 등의 중복감염을 일으킨다.
연구진은 중복감염이 일어나는 구체적인 기전을 밝혀내기 위해 실험용 생쥐(마우스)를 두 그룹으로 나눠 연구를 진행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만 감염된 그룹인 A군과, 바이러스 감염에 더해 호흡기 상피세포에 황색포도상구균을 부착시킨 B군을 대상으로 염증 정도와 생존율을 비교했다.
그 결과, B군의 염증 정도가 더 심할 뿐 아니라 생존율도 낮았다. 특히 B군의 호흡기 상피세포에선 ‘CD47’이란 세포 수용체의 발현이 비정상적으로 증가해 장벽기능을 담당하는 단백질을 감소시켜 면역기능을 떨어뜨린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황색포도상구균이 상피세포에 들러붙는 부착률은 높아져 세균이 세포 내로 더 많이 침입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혈액에 세균이 침투하는 균혈증이 발생해 B군의 생존율이 급격히 떨어진 것이다. 반면 CD47 수용체를 억제시키자 염증 반응은 최대 45% 줄었고, 균혈증에 따른 사망률은 최대 55% 감소했다.
그간 중복감염을 치료하기 위한 항생제는 계속 개발돼 왔지만 내성을 보이는 세균도 계속 증가해 근본적인 치료법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를 통해 면역력이 떨어진 환자들의 중복감염으로 인한 사망률을 낮추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유지환 교수는 “호흡기 바이러스 감염에 더해 중복감염이 일어나는 기전을 확인했다”며 “이번 연구 결과를 기반으로 면역력이 약한 영유아, 노인들에서 특정 세포 수용체를 조기에 억제하면 세균 중복감염으로 인한 2차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