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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진상규명조사위 잘 마무리하려면

광주시, 6월 8차 보상 심의 절차 시작 성폭력 피해자 26명 처음 포함 진술 인정받아도 보상은 미지수

‘정신적 피해’ 기준도 마련 안돼 “별도의 가이드라인 만들어야”

광주광역시가 6월부터 5·18 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절차를 시작한다. 성폭력 피해자들은 5·18민주화운동 보상 심의 대상에 처음 포함됐다. 그러나 보상 판정이 ‘신체 장해 정도’로 구분되는 데다 ‘정신적 피해’에 대한 기준도 따로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에 정작 피해를 인정받을 수 있는 피해자가 적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여성단체와 광주광역시의회는 성폭력 ‘피해자 중심적 접근’을 토대로 한 별도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고 정신적 트라우마에 대한 상담·치료를 연계한 체계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5·18 성폭력 피해자 간담회가 열린 지난달 28일 전남대학교 김남주홀에 참가자들이 가져온 물품이 놓여 있다.  정효진 기자

5·18 성폭력 피해자 간담회가 열린 지난달 28일 전남대학교 김남주홀에 참가자들이 가져온 물품이 놓여 있다. 정효진 기자

광주시는 “5·18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8차 보상 절차를 6월부터 본격화할 예정”이라고 23일 밝혔다.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 검토되는 것은 34년 만에 처음이다. 지난해 6월 개정된 5·18 보상법은 성폭력 피해자를 5·18민주화운동 관련자로 규정했다. 이번 8차 보상 심사 대상자 중 성폭력 피해자는 26명으로 이들은 지난해 7~12월 광주시에 보상을 신청했다.

광주시는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이하 조사위) 조사 과정에서 ‘진상규명’이 결정된 14명에 대해선 사실 조사를 서류로 대체하고 이외의 피해자인 12명(여성 9명·남성 3명)은 직접 대면해 사실 조사를 할 계획이다. 성폭력 사실조사에는 5·18보상지원팀 사실조사반 4명(여성 2명·남성 2명)이 투입된다. 이는 전체 조사를 위해 배정된 8명 중 절반에 해당하는 인원이다. 광주시 5·18보상지원팀 관계자는 “성폭력 피해 조사가 처음이고 예민한 사안인 만큼 시작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가장 많은 인원을 투입하게 됐다”고 말했다.

사실 조사는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2개 조로 운영한다. 여성 조사관 2명이 여성 성폭력 피해자 9명을, 남성 조사관 2명이 성고문 피해자 1명과 구금 내 성폭력 피해자 2명 등 남성 3명을 조사한다. 광주시는 성폭력 피해 조사 경험이 없다. 지난 2월부터 성폭력 피해를 조사했던 조사위 관계자들을 만나 4차례 교육을 받았고 조사위 성폭력 피해 조사 기준을 준용하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사실 조사 대상 피해자 중 7명은 광주가 아닌 다른 지역에 거주하고 있어 조사반은 피해자들의 신상 정보가 노출되지 않도록 광주시청 외부에 별도의 장소를 마련하기도 했다. 피해자 모두 고령인 점을 감안해 거주 지역이나 원하는 장소에서도 조사를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사실 조사에서 피해자 진술을 온전히 인정한 후 심사를 하더라도 보상을 받을지는 미지수라는 점이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4월 광주시에 ‘기존 장해 등급에 맞춰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보상 기준을 판정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장해 등급은 신체 장해 정도와 노동력 상실률에 따라 1급부터 14급으로 나뉜다. 신체 일부가 없어 아예 일하지 못하는 경우 1급, 손가락 일부에 장해가 있는 경우 14급에 해당한다. 차경희 광주여성단체연합 젠더폭력특별대책위원장은 “부상자 등 기존 보상 판정 기준과 같이 몸에 남은 상처로 성폭력 피해를 판단하겠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며 “직접 증거나 객관적 자료를 성폭력 피해자에게 요구한다는 것은 피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3월 25일 오후 광주 서구 5·18 기념문화센터에서 5·18 기념재단이 공동 주관한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 보고서 평가·기자간담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3월 25일 오후 광주 서구 5·18 기념문화센터에서 5·18 기념재단이 공동 주관한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 보고서 평가·기자간담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44년 전 발생한 성폭력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신체적 장해가 남아있을 가능성은 낮다. 당시 진료를 받았더라도 진료기록부의 보존 기간이 10년에 불과한 점을 보면 직접 증거를 제출하기도 어렵다. ‘정신적 피해’에 대한 기준도 마련돼 있지 않다. 시 관계자는 “정신적 피해는 10여명의 의사들이 조사 자료를 통해 따로 판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다은 광주시의회 5·18특별위원회 위원장은 “44년 전 상처를 혼자서 짊어지다 겨우 용기를 낸 피해자에게 기존 보상 절차는 너무 가혹하다”며 “별개의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절차를 간소화하는 것이 피해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라고 말했다.

한편 보상을 ‘금전적 문제’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김명권 광주트라우마센터 센터장은 “성폭력 피해자 치유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이해·공감·수용과 공동체의 위로와 지지”라며 “보상은 피해자에 대한 국가 폭력의 책임을 인정하는 최소한의 장치”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고 무력감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기 위해선 적절한 보상과 상담·치료 시스템이 동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행안부는 성폭력 관련 별도의 보상 절차를 마련하는 것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7월 출범하는 국립국가폭력트라우마치유센터에서 상담 프로그램을 개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엄수빈 행안부 사회통합지원과 팀장은 “7월 국립국가폭력트라우마치유센터가 출범하고 나서 성폭력 피해자 수요에 맞춰 프로그램을 새로 개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고귀한 기자 go@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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