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는 평화적 생존권을 인정해야

헌법은 개인과 개인의 믿음으로 만든 약속이다. 그 속엔 권리와 의무에 기반해 평등과 자유, 행복과 평화를 향한 공동의 바람이 깃들어 있다. 이 때문에 헌법은 모든 하위법에 우선한다. 그것이 충돌할 때 헌법재판소(헌재)는 위헌법률심사를 하게 된다. 시민의 대리자인 재판관은 헌법을 지키는 파수꾼으로서 권력자들이 그 약속을 잘 이행하는지도 살펴본다.

지난 3월28일 헌재는 성주와 김천 주민, 원불교 교도를 비롯해 총 2550명의 시민들이 2017년에 청구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배치승인 위헌헌법소원에 대해 주민들의 청구를 각하했다. 평화적 생존권, 건강권, 환경권, 종교의 자유 침해를 부정했다. 마치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과 같다. 과연 현실은 그럴까. X-밴드 레이더 배치 후, 바로 앞 1㎞ 이내의 마을인 김천 노곡리 주민 100여명 가운데 현재까지 암 환자가 12명이나 발생하여 7명이 사망했다. 재판관들은 현장에 와서 그곳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나 했을까.

사드배치 이후 주변 마을이 지옥으로 변해가는 현실을 헌재는 모르는 것인가. 행정부의 행위가 헌법적 가치와 배치된다면 ‘그렇다’고 하는 게 법의 정의(正義)다. 국가 폭력인 제주4·3사건, 여순사건, 5·18민주화운동은 사필귀정으로 귀결되었다. 사드배치는 모든 절차가 불법이다. 주민들의 고통이 극에 달한 후 국가 잘못이라고 판결하면 끝인가. 법관들에게 상상력을 요구하지 않는다. 민주공화국 일원인 백성의 요구를 헌법의 취지에 맞게 판단해 달라는 것이다.

사드가 미국의 대중국 미사일 방어망의 핵심임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기회만을 노리던 미국은 2017년 권력을 사유화한 박근혜 정부의 결정으로 전격적으로 배치했다. 200㎞의 사정거리로 인구밀집지역인 수도권을 막지 못하는 것은 물론 40~150㎞의 요격고도는 한반도에서는 무의미하다.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로 얼마든지 공격할 수 있는데 쓸데없이 하늘 높이 쏘아 올릴 필요가 있는가. 방어용은 핑계일 뿐, 1800㎞를 탐지하는 레이더가 핵심이다. 중국이 한한령(限韓令)으로 한국에 가한 막대한 피해를 미국은 보상하거나 사과라도 했던가. 사드는 동아시아의 게임 체인저로 군비확장의 주범이다. 유사시 성주와 김천은 북한이나 중국의 최고 목표물이 된다. 주민은 물론 전 국민의 안보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일임에도 정보공개는커녕, 딸랑 종이 한 장으로 결정되고 말았다. 적어도 국회 동의는 물론 주민의 의견을 물었어야 했다.

헌재는 사드배치를 계기로 비대칭적인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위헌성을 지적했어야 했다. 베트남, 아프가니스탄,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이 북한을 선제공격하게 되면, 한국은 자동으로 전쟁에 개입, 헌법 제5조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는 조항을 위반하게 된다. 헌법 전문에는 ‘평화적 통일의 사명’과 ‘항구적인 세계평화’에 이바지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따라서 전쟁무기를 한반도에 도입함으로써 긴장을 높이는 것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헌법의 평화주의, 유엔의 세계인권선언, 산티아고 평화권 선언, 세계인들의 점증하는 평화적 생존권에 대한 요구에 비춰 사드배치는 부당하다’고 판결했어야 한다.

미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의 하위법인 주둔군 지위협정으로 주한미군의 주둔비용 일부를 요구하고 있다. 휴전 이후 줄곧 한반도는 변함없는데 모법을 위반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천문학적인 사드비용을 요구했다. 재선이 되면 주한미군 유지비 전체를 요구할 태세다. 한국이 여러 형태로 치르고 있는 비용은 이미 총액을 넘어섰다. 전시작전권을 가진 미군은 군사주권마저 침해하고 있다. 미국은 대놓고 한국에 중국 방어를 요구한다. 사드배치는 한국의 헌법을 무시하는 그러한 미국의 오만한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헌재가 미국의 재판소가 아닌 이상 사드배치로 고통받는 주민들을 위해 헌법에 명시된 기본적 인권에 의거, 평화적 생존권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헌법을 초월하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폐지하거나 개정하라고 판결해야 한다.

원익선 교무 원광대 평화연구소

원익선 교무 원광대 평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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