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전단과 오물 풍선, 우리가 잊고 있는 것들

2024.06.11 14:21 입력 2024.06.11 20:43 수정

윤석열 정부는 지금까지 탈북민 단체에 전단 살포(사진 왼쪽) 자제 요청은커녕 ‘표현의 자유’만을 강조하며 전단 살포를 방임 혹은 방조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심지어 연이은 대북전단 살포에 맞서 북한이 다시 오물 풍선(오른쪽 위)을 날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대북 확성기 가동으로 나아갔다. /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는 지금까지 탈북민 단체에 전단 살포(사진 왼쪽) 자제 요청은커녕 ‘표현의 자유’만을 강조하며 전단 살포를 방임 혹은 방조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심지어 연이은 대북전단 살포에 맞서 북한이 다시 오물 풍선(오른쪽 위)을 날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대북 확성기 가동으로 나아갔다. / 연합뉴스

북한의 오물 풍선으로 나라가 어지럽고 남북 간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 열흘간 북한 오물 풍선 경보를 알리는 휴대전화의 재난 안전문자가 세 번이나 울렸다. 탈북민 단체가 북한으로 전단을 날려 보내자 북한이 오물 풍선으로 맞섰고, 정부는 다시 이에 맞서 ‘9·19 군사합의서’의 효력을 정지한 데 이어 대북 확성기 방송을 가동했다. 그러자 북한은 “의심할 바 없이 새로운 우리의 대응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며 강도를 높인 추가 대응을 경고하고 나섰다. 남북이 상대에 대한 위협수단을 높여가며 출구가 보이지 않는 위험한 치킨게임 양상이다.

북한의 오물 풍선 살포는 문명 시대를 조롱하는 비상식적이며 개탄스러운 일로서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문제는 우리가 일방적으로 북한에 중단을 요구하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남한이 해야 할 몫도 있다. 오늘의 사태를 초래한 원인을 냉철하게 짚어보면, 위기는 남북이 상대방 지역에 대한 전단 살포를 금지한 ‘남북합의의 위반’에서 출발했다.

역사적으로 남과 북은 상대방 지역에 대한 전단 살포 금지에 4차례나 합의하였다. 최초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72년 11월 남북조절위원회 공동위원장 제2차 공동발표문에서 “쌍방은 서로 비방 중상을 하지 않기로 한 남북공동성명의 조항에 따라” “대남·대북방송, 상대방 지역에 대한 전단 살포를 그만두기로 하였다”라는 합의였다. 두 번째 합의는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92년 9월에 체결한 남북기본합의서 <‘제1장 남북화해’의 이행과 준수를 위한 부속합의서> 제8조였으며, 세 번째는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 6월 남북 장성급 회담에서 합의한 <서해 해상에서 우발적 충돌방지와 군사분계선 지역에서의 선전 활동 중지 및 선전수단 제거에 관한 합의서>에 담겼다. 네 번째 합의는 2018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합의한 <4·27 판문점 선언>에 담겼다. 이처럼 전단 살포 중단은 남북 간 우발적 충돌방지와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해 역대 정부가 추진한 긴 역사를 가진 정책이자 남북합의였다.

전단 살포가 남북 간 쟁점으로 떠오른 것은 2004년 무렵에 탈북민 단체가 대북전단을 날리면서부터였다. 이때부터 북한의 항의도 시작됐다. 특히 북한은 김정은 집권 이후 일부 전단에 그와 부인 리설주에 대한 포르노에 가까운 비방 등이 실리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강력하게 재발 방지를 요구해왔다. 역대 정부는 대체로 남북합의 준수를 위해 탈북민 단체에 대해 전단 살포 중단을 설득하고 때때로 이를 제지하였다. 그러나 남북관계가 악화하자 ‘표현의 자유’를 구실로 탈북민 단체의 전단 살포 행위를 방임한 정부도 있었다. 2014년 10월, 우리는 바로 그럴 때 어떤 위험한 사태가 발생하는지 경험하였다. 당시 경기 연천에서 북한군이 탈북민 단체가 날린 대북 전단 풍선을 향해 고사총을 발사해, 접경지 주민들이 대피하고 우리 군이 대응 사격을 하면서 일촉즉발의 위기가 조성되었다.

탈북민의 대북전단 살포로 인해 접경지 주민의 안전이 위협받고, 남북관계의 불안정성이 증대하자 문재인 정부는 2020년에 남북관계발전법을 개정하여 “국민의 생명·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심각한 위험을 발생시켜서는 안 된다”며 대북전단의 살포 금지를 법제화하였다. 그런데 2023년 9월 헌법재판소는 이 조항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다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물론 헌법재판소는 대북전단 살포 금지가 무조건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전단 등 살포로 국민의 생명·신체에 위해나 심각한 위험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면, 행위자에게 경고하고, 위해 방지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 살포를 직접 제지’할 수 있게 하여 정부가 “현행 ‘경찰관 직무집행법’ 등”을 활용하여 적절한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즉, 당국의 판단에 따라 접경지 주민의 안전과 국민 안녕을 위해 대북전단 살포를 제지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지금까지 탈북민 단체에 전단 살포 자제 요청은커녕 ‘표현의 자유’만을 강조하며 전단 살포를 방임 혹은 방조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심지어 연이은 대북전단 살포에 맞서 북한이 다시 오물 풍선을 날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대북 확성기 가동으로 나아갔다. 북한에 대해 ‘압도적 힘’만을 강조하며 강 대 강을 추구하는 윤석열 정부 인사들은 ‘북한이 남한의 어떤 무기보다 무서워하는 것이 대북 확성기’라는 믿음을 가지고 이 카드를 꺼낸 것 같은데, 오판이라고 본다. 정부가 대북 확성기 재개를 시사한 날 북한 국방성이 대북전단 살포 재개 시 다시 오물 풍선을 날리겠다며 잠정중단을 밝히자, 많은 언론이 <확성기 카드 꺼내자 北 “오물 풍선 중단”>과 같은 제목을 달았다. 마치 남쪽이 대북 확성기라는 북한군과 주민에 심각한 동요를 유발하는 북한의 치명적 약점을 건드렸기 때문에, 북한이 굴복했다는 식의 이 기사는 불과 며칠 되지 않아 대북전단 살포에 맞서 북한이 다시 오물 풍선을 날리면서 엉터리임이 드러났다. 정부와 언론은 대북 확성기가 우리의 압도적 우위의 무기라고 믿지만, 북한이 그 효과를 반감시킬 정도의 맞대응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결국, 이번 대북전단 살포와 오물 풍선 맞대응으로 빚어진 남북대치 상황에서 우리가 강 대 강으로 북한을 굴복시킬 수 있는 길은 없다. 군비경쟁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경제력에서 북한을 압도하지만,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해도 우리를 못 꺾듯이 우리도 군비경쟁에서 북한을 꺾을 수 없다. 남북은 이미 상대방에게 재앙적 타격을 주기에 충분한 군사능력을 갖추었기에, 거기에 미 항공모함을 덧붙이고 더 강력한 신무기를 만든다고 해서 상대가 굴복하지 않는다. ‘압도적인 힘’ 운운하며 갈등과 대결로 일관한 윤석열 정부의 지난 2년여의 대북정책의 결과가 이미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한편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가 몇 가지 잊고 있는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째, 대북전단 살포로 인한 남북갈등에 직면하여 정부나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우선적인 목표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접경지 주민을 비롯한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인가? 아니면 이 가치를 희생하더라도 대북전단을 살포하는 일부 국민의 표현의 자유 보장인가? 위기가 고조된 현 상황에서 양립이 어려운 이 두 가치 사이에서 우리의 선택은 분명하다. 대통령의 기본 임무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 보장이며 한반도 평화를 실현하는 것이다. 그런 노력의 바탕 위에서 대북전단 살포의 자유도 북한 주민의 인권신장도 논할 수 있지, 그 역(逆)은 없다.

둘째, 우리가 어떤 대상을 절대 악으로 규정하면 그 대상에 대해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은 선한 것으로 인식하기 쉽다는 점이다. 북한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그렇다.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북한 불신과 혐오, 그리고 정부 대북조치에 대한 평가가 실종된 언론의 받아쓰기 보도 등으로 인해 대북정책을 마치 십자군 전쟁처럼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상대와의 관계에서 우리가 범한 잘못은 보지 않는다. 정부가 성공할 수 없는 대북 강경책으로 일관하고 망나니가 칼을 휘두르듯이 내달려도 사회적 비난에서 비켜설 수 있는 것이 바로 이런 토양 때문일 것이다. 사실 이성의 끈만 놓는다면 북한의 도발에 강 대 강 일변도로 대처해 나가기 쉽고 그 순간에는 그만큼 편한 정책도 없다.

그러나 사태를 수습하고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과관계를 따져가며 잘잘못을 가리는 게 기본이다. 이런 맥락에서 탈북민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로 인해 남한이 남북합의를 위반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도 이러한 합의 위반 사실을 합리화하지는 못한다. 바로 이 사실을 전제로 남북갈등을 풀어가야 하며, 그러려면 우리가 지금이라도 합의 이행을 위한 노력을 보여야 한다.

지금과 같이 남북갈등이 상호 상승작용을 일으킨다면 종국에는 물리적 충돌을 포함하여 어떤 불행한 사태가 발생할지 모른다. 남북 쌍방의 무절제한 감정적 대응 자체가 이미 충돌의 위험성을 높이고, 국민을 불안하게 하며 한국 경제의 회복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남북은 전쟁으로 이어질지도 모를 불씨를 만드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된다. 어떤 전쟁도 좋은 전쟁은 없다. 한반도에서 전쟁은 승패를 떠나 6·25 이후 각고의 노력으로 쌓아온 우리 경제와 민주주의를 하루아침에 무너뜨리고 한민족을 다시 퇴락의 길로 이끌 것이다.

남북은 이제 멈춰야 한다. 이 위기가 남북합의 위반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그 멈춤의 첫걸음은 탈북민 단체가 대북전단 살포를 중단하는 것이며, 이와 동시에 북한도 우리 정부도 오물 풍선, 대북 확성기 가동 등 상대방에 대한 조치를 중단해야 한다. 대북전단을 날리는 탈북민도 대한민국 국민이다. 이번 사태로 국민이 느끼는 위기감을 공유한다면 스스로 멈추어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자신의 소임에 맞게 공식적이건, 비공식적이건 상관없이 이들을 만나 설득하고 추가 행동을 제지해야 한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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