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살 유대인 소녀 성폭행 사건에 프랑스 ‘충격’···속 타는 마크롱?

2024.06.20 14:27 입력 2024.06.20 17:44 수정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프랑스에서 발생한 12살 유대인 소녀 집단 성폭행 사건이 사회 전체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조기 총선 결정으로 비판을 받아 온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최근 여러 악재와 맞닥뜨리며 처지가 더욱 곤란해졌다.

19일(현지시간) AFP통신 등 프랑스 매체들은 전날 10대 소년 세 명이 집단 성폭행과 반유대주의 모욕, 살해위협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고 전했다.

이들은 지난 15일 파리 외곽의 한 공원에서 12세 유대인 소녀를 집단으로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다. 세 사람은 피해자를 창고에 가두고 ‘더러운 유대인’이라는 욕설을 내뱉으며 수 차례 폭행과 성폭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지난 17일 피의자 세 명을 붙잡아 조사한 뒤 두 명을 구금했다. 다른 한 명은 강간 혐의가 적용되지 않아 일단 풀려난 상태다.

사회 전체로 퍼진 분노···정치권도 규탄

프랑스 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다.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10대 초반의 청소년이라는 점, 가자지구 전쟁이 발발한 뒤 반유대주의 행위가 잇따른 탓에 시민들의 우려가 쌓여왔다는 점 등이 분노를 키웠다. 프랑스는 미국과 이스라엘에 이어 세계에서 유대인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다.

이날 프랑스 파리와 리옹에서는 수백 명이 모여 이번 사건을 “반유대주의 범죄”라고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유대인이라서 당했다” “당신의 여동생일 수도 있었다”고 적힌 팻말을 들었다.

19일(현지시간) 파리 시청 광장 앞에 12세 유대인 소녀에 대한 집단 성폭행 사건을 “반유대주의적 범죄”라고 규탄하는 시위대가 모여 있다. AFP연합뉴스

19일(현지시간) 파리 시청 광장 앞에 12세 유대인 소녀에 대한 집단 성폭행 사건을 “반유대주의적 범죄”라고 규탄하는 시위대가 모여 있다. AFP연합뉴스

갈등은 총선을 열흘가량 앞둔 정치권에도 번졌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극우 국민연합(RN)은 이번 사건 책임이 좌파 진영에 있다고 공격했다. RN 소속 마린 르펜 의원은 “극좌 정당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을 도구 삼아 유대인을 향한 낙인을 키웠다”고 주장했다. 급진좌파 정당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는 이스라엘의 군사작전을 가장 앞장서서 규탄하면서도 반유대주의 범죄에 있어서는 모호한 입장을 취해 비판받았는데, 이 점을 노려 공세를 편 것이다. 이를 의식한 LFI도 이번 사건에 대해 “반유대주의적인 인종차별”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마크롱 대통령은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그는 이날 열린 각료회의에서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혐오 감정이 학교에 침투하지 않도록 반유대주의와 인종차별을 다루는 토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로이터통신은 “총선을 앞두고 벌어진 사건으로 프랑스 사회의 긴장이 커지고 있다”면서 이를 의식한 마크롱 대통령이 재빠르게 대응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총선 열흘 남았는데 악재 연달아···안 풀리는 마크롱

이번 사건으로 마크롱 대통령이 더욱 궁지에 몰렸다는 평가도 나온다. 마크롱 대통령은 최근 유럽의회 선거에서 RN에 크게 패하자 조기 총선을 치르기로 했다. 그러나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도 집권 르네상스당의 지지율은 RN과 좌파연합에 크게 밀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마크롱 대통령은 최근 여러 악재를 줄줄이 맞닥뜨렸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이날 프랑스의 재정적자가 과도하다며 재정 건전성을 높여야 한다고 경고했다. EU 회원국들은 재정적자를 국내총생산(GDP)의 3% 수준으로 유지하는 목표를 설정했는데, 프랑스의 지난해 연간 적자는 5.5%에 달했다. 총선을 앞두고 이 같은 경고가 나오면서 르네상스당이 다른 정당들로부터 ‘재정을 과도하게 지출하고도 경제 상황을 개선하지 못했다’고 공격받을 수 있다고 AP통신은 짚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전날 참석한 지역 행사에서 좌파 진영의 성소수자 관련 공약을 거칠게 비난했다가 성소수자 혐오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올리비에 포르 사회당 대표는 “극우에 맞선다는 명분으로 재선까지 된 사람이 어떻게 극우의 수사를 계속 반복할 수 있느냐”며 “이것이 바로 비판받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파비앙 루셀 공산당 대표도 마크롱 대통령이 조급함을 드러내고 있다며 “그가 입을 열 때마다 그의 정당은 표를 잃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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