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잇 밥맛이야, 라고 할 때 누구나 쉽게 떠올릴 얼굴도 몇몇 있겠지만 사실 밥맛이 쉬운 맛은 아니다. 그렇게 만만하게 대접할 맛은 더더구나 아니다. 쌀이 간직했던 맛, 물이 찰지게 만든 맛, 빈 들판의 정기가 곤두서는 맛. 백반집에 가서 꽤 맛있는 국과 반찬이 나와도 밥이 별로면 그 식당에 다신 안 가게 된다.
훤칠한 나무를 키우기 위해 산이 우람하게 있듯, 또 그만큼의 용도로 텅 빈 들판이 있고, 거기에서 벼와 보리를 비롯한 각종 작물이 자란다. 가축화와 작물화. 외양간에 소를 가두고 논에서 벼를 거두지 않았다면 인류는 식량을 찾아 지금도 거친 들판을 헤매고 다녀야 하지 않았을까.
나무나 풀만큼이나 정말 고마운 벼과/사초과의 식물들. 어느 해 강릉 해변 사구 주변으로 벼과/사초과를 공부하러 갔다. 꽃들이 뜸한 시기에 공중에서 바닥으로 눈높이를 대폭 낮춘 것이다. 이름만 들어도 입술을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게 하는 그 간지러운 풀들. 사실 벼과/사초과는 종류도 많고 생김새도 비슷해서 동정이 무척 어렵다. 논두렁이나 거친 들판에 가면 시시하고 하찮아서 오히려 진짜 다정하게 보이는 한해살이풀들이 빼곡히 다종다양하게 있다.
그날 전문가 선생님한테 배운 바는 다음과 같았다. 사초과는 줄기가 삼각형이 많습니다. 속이 꽉 차 있습니다. 당연히 당겨도 분리되지 않는 이른바 폐쇄형이고요. 벼과는 대부분 줄기가 둥글고, 속이 텅 비었습니다. 줄기를 당기면 쑥쑥 빠집니다. 이른바 개방형입니다. 이럴 수가! 이 작은 식물들의 세계가 이런 정교한 매듭으로 마무리되다니! 그 차이를 실물과 함께 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런 곡절도 모르고 여태껏 숟가락을 놀렸던가.
이래서 밥맛의 깊이를 좋아하는 것이다. 벼의 텅 빈 줄기가 길어 올린 맛. 이 무심하고 덤덤함, 짱짱한 알곡의 밍밍함을 어찌 사랑하지 않으랴. 맨밥은 아무 맛도 아닌 물맛이 그대로 슴슴하게 밴 맛. 그렇게 맛 아닌 맛이기에 매일 먹고도 질리지 않을 수 있는 것. 최소한 이 사실을 안 이후 나에게 밥맛은 조금은 특별하다. 밥심의 높이, 세상의 깊이가 한 숟가락에 다 들어 있다. 나에게 밥의 맛에 대한 애착은 여여할 것이니, 그때부터 지금까지 또 제삿밥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