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학생운동권
트라우마가 ‘광주’라면
이대남 트라우마는
‘유죄 추정’이다
또 인터넷 통해 사상 퍼져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
‘삼일한’은 일베에선
수시로 등장하지만
펨코선 볼 수 없다
이들의 반페미니즘은
전통적 여성혐오보다
무임승차자에 대한
혐오에 가깝다
펨코가 진보로 진화할
가능성도 희박하고
펙트체크도 없이 비판하지만
그들끼리 학습과 토론도 '일상화'
"쓰레기"라고만 치부해선 안돼
지난 총선의 지지율을 살펴보면 유난히 ‘튀는’ 집단이 보인다. 50대 이하 연령층에서 여당이 완패했는데, 단 하나의 예외가 존재한다. 20대 이하 남성, 이른바 ‘이대남’이다. 이대남의 지역구 지지율을 보면 국민의힘이 더불어민주당을 앞섰다(47.9% 대 46.4%). 개혁신당, 녹색정의당, 새로운미래를 합산해 보수 대 진보를 비교해봐도 보수가 우세했다(49.4% 대 47.7%). 양대 정당의 위성정당 및 조국혁신당을 포함한 비례대표 지지율 역시 보수가 우세했다(48.2% 대 47.7%). 이 데이터의 출처는 지상파3사 공동 출구조사인데, 이번 출구조사에서 보수정당 지지가 과소 집계되었음을 감안하면 보수정당의 실제 득표율은 이보다 좀 더 높았을 것이다.
사실 20대뿐만 아니라 30대 남성에서도 보수 우위가 기본이다. 총선 직전인 3월 갤럽 여론조사의 정당 지지율을 보면 20대는 물론이요 30대 남성에서도 국민의힘이 민주당보다 우세했고, 보수정당 지지율 합계가 진보정당 지지율 합계보다 높았다. 30대 남성이 자신을 ‘보수’로 보는 비율은 ‘진보’로 보는 비율을 상당히 앞섰으며(34% 대 20%), 총선 이후 6월 조사에서도 여전했다(34% 대 21%). 다만 단순 지지정당이 아닌 실제 총선 투표 의향, 대통령 직무수행 지지율, 현 정부 ‘지원’이냐 ‘견제’냐를 묻는 질문에는 여당에 불리한 답변이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이 좀 더 멀쩡한 대통령이어서 심판 심리가 작동하지 않았다면 30대 남성층에서도 보수정당 득표율이 높았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른바 ‘이대남 현상’에 대해서는 숱한 연구와 토론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 원인으로 교육과 취업 등에서 벌어져온 과잉경쟁과 능력주의를 지적해왔다. 하지만 이것들만으로는 왜 하필 남성만 보수화되었는지가 설명되지 않는다. 유의할 점은 이대남이 진보에서 멀어지기 시작한 시점이 2016~2018년이라는 사실이다(JTBC 2024년 2월10일 ‘20대 남녀 이념 차 “한국이 가장 최악”…FT 분석 사실인지 따져보니’).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고 보수정당이 대선 및 지방선거에서 연달아 패배한, 말하자면 보수정치권이 완전히 망한 게 아닌가 싶었던 시기다. 왜 하필 이때 이대남은 보수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을까? 이것은 일반적인 정치문법이나 사회경제적 지위 분석으로는 해석되지 않는다.
이대남 보수화의 핵심 계기는 이 시기에 본격화된 젠더 갈등이다. 나는 3년 전 칼럼에서 “페미니즘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지적했다. “남성이 가해자로 지목되면 ‘유죄 추정’ 원칙이 적용된다는 공포가 시발점이었다. 곰탕집, 홍대 스튜디오, 이수역 주점, 박진성 시인 사건 등이 남초 커뮤니티에 실시간 중계되면서 핵인싸에서 찐따까지 대동단결이 이루어졌다. 2018년 남성 누드모델 불법촬영 사건이 분수령이었다. 가해자가 여성이고 피해자가 남성인데도 페미니스트들은 편파수사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고 여성가족부 장관은 이에 호응하는 성명을 냈다.”(2021년 7월8일자 ‘이대남은 왜 시장주의자가 됐을까’)
‘여혐’ 한순간에 바뀌기 어려워
1980년대 학생운동권의 트라우마가 ‘5·18 광주’라면, 최근 이대남의 트라우마는 ‘유죄 추정’이다. 그리고 1980년대 학생운동권의 사상이 학회와 정치조직에서 폐쇄적 학습을 통해 퍼졌다면, 최근 이대남의 사상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개방적 학습을 통해 퍼진다. 그리고 이 같은 경향은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 많은 연구자, 교사, 학부모들이 10대 남성의 보수화를 증언한다. 경제학자 우석훈은 2년 전 <슬기로운 좌파생활>을 펴내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혐은 중학교 때부터 몇년에 걸쳐 다듬어진 ‘문화적 취향’이기 때문에 한순간에 바뀌기 어렵다. 10대~20대 남성의 극우화는 최소 20년 이상 계속될 것이다.”(2022년 1월12일자 문화일보 인터뷰)
진보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그리 전망이 밝지 않다. 진보 사회운동의 사상적 전통에는 법률적 평등을 부차화하는 흐름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시작은 카를 마르크스인데, 노동자와 자본가가 법적으로 평등한 주체로서 근로계약을 맺지만 실상 이것은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에 따른 불평등을 은폐하고 있다는 것이다. 법률적 평등을 ‘형식적’이라고 여겨 부차화하고,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를 ‘실질적’이라고 여겨 중시한 것이다.
이것이 사회주의가 몰락한 이후에도 마르크스가 여전히 위대한 사상가로 꼽히는 이유다. 예를 들어 마르크스보다 한 세기 뒤에 <정의론>을 펴낸 존 롤스는 ‘형식적 자유’와 ‘실질적 자유’를 구분하고 후자를 강조한다. 실질적으로 기회가 균등하기 위해서는 물질적 수단이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롤스는 그 형식적 자유, 즉 ‘권리’에도 여러 종류가 있으며 그들 사이에 우열관계가 있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마르크스의 주장을 부연해보자면 자본주의란 자치권보다 소유권이 우위에 있는 체제, 즉 노동자들이 직장을 접수하겠다고 나서면 경찰과 군대가 출동하는 체제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기본적 속성이고, 이로 인한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발전된 대표적 방법이 분배(케인스)와 혁신(슘페터)이다.
‘법률적 평등’을 부차화하는 현상은 현대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사뭇 다른 철학적 기반 위에서 다시 나타난다. 이른바 3세대 페미니즘의 대표주자인 주디스 버틀러는 젠더가 생물학적 성별이라는 ‘본질’ 또는 ‘본성’의 발현이라는 전제를 근본적으로 뒤엎는다. 가부장제 또는 이성애는 매일매일의 실천에 의해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것이다. 젠더 또는 정체성이 자연적으로 주어지는 것임을 부정하고 강제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라는 인식에 도달함으로써, 페미니즘은 ‘여성’을 해방시키는 운동이라기보다 사실상 무한정의 젠더를 인정하는 운동으로 전환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특정 젠더를 부과하는 언행을 거부하는 운동은 당연히 기존의 법률과 문화를 가로지른다. 젠더평등 화장실 도입이 추진되고, 제인 오스틴의 작품이 거부되며, 이성애적 일부일처제를 벗어난 가족관계가 시도된다.
유시민 작가는 지난해 9월 노무현재단 유튜브 채널을 통해 일베, 펨코, 디시 등 혐오와 날조가 난무하는 이대남 커뮤니티들을 싸잡아 비난한 바 있다. 예를 들어 전두환을 ‘전땅크’라고 부르며 영웅시하는 행태를 지적했다. 그런데 이러한 인식은 일베와 펨코 사이의 차이를 과소평가한 것이다. 일베는 전땅크를 찬양하지만 펨코는 전땅크를 비난한다. 영화 <서울의 봄>에 대한 펨코의 비평문들을 보면 펨코는 상식적인 자유주의의 기준을 훌쩍 넘어선다. ‘여자는 삼일에 한번씩 패야 한다’는 혐오발언(이른바 ‘삼일한’)은 일베에는 수시로 등장하고 펨코보다 평균연령이 높은 엠엘비파크에서도 가끔 보이지만 펨코에서는 볼 수 없다. 이들의 반페미니즘은 전통적 여성혐오라기보다 무임승차자에 대한 혐오에 가깝다(김선영, ‘온라인 커뮤니티 에펨코리아로 살펴본 이대남 현상’, 2023). 최근 펨코에서 동성애 혐오의 비율이 낮아지고 있어 주목된다. 동성애 혐오 댓글의 3분의 1 정도의 빈도로 이를 비판하는 댓글이 올라오고 있다. 굳이 페미니즘 이론을 원용하지 않더라도, ‘행복추구권’이라는 자유주의적 기본 권리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하는 것이리라. 리얼돌을 수입하고 즐길 권리가 중요한 만큼, 누구와 연애를 해야 행복한지를 결정하는 권리도 중요하니까.
펨코·일베 차이 과소평가해선 안 돼
펨코가 진보 쪽으로 진화할 가능성은 희박할 것이다. 예를 들어 팩트체크를 무엇보다 중시하면서도 문재인 전 대통령의 ‘중국몽’ 연설의 원문을 팩트체크하지 않는다. 하지만 유시민 작가처럼 “쓰레기”라든가 “안 놀아주는 게 답”이라고 치부해선 안 된다. 한국에서 접속수 2위에 해당하는 초대형 커뮤니티이고(1위는 디시), 일베와 확실히 차별화되어 있으며, 대규모의 학습과 토론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최근 동탄의 한 헬스클럽에서 한 남성이 성추행범으로 몰렸다가, 여성이 허위신고했음을 자백하면서 궁지에서 벗어난 사건이 있었다. 이 과정은 펨코에 실시간으로 중계되었는데, 과거 유사한 사건들에서 그러했듯이 대표적 진보 커뮤니티인 클리앙이나 딴지일보에서도 상당한 동조가 나타났다. 2018년 비동의 간음죄를 깊이 고찰하고 이의 도입을 반대한 바 있는 조국 대표의 발언을 내심 기대했다. 하지만 결국 이번에도 ‘유죄 추정’ 문제를 비판하고 나선 정치인들은 모두 국민의힘 소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