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는 이데올로기이다.” 프랑스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가 한 말이다.
날씨는 우리를 지배한다. 폭염이 시작되는 시기쯤 가슴 아픈 뉴스가 전해질 때가 많다. 폭염 속에서 일하다가 사망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불볕더위 속에서 목숨을 잃을 줄도 모르고 일했던 사람들은 성실한 가장이 많다. 한편, 어느 가정에서는 하루 종일 에어컨을 켜놓고 지내면서 “저 아저씨는 진짜 더워서 죽은 거야?”라고 묻는 아이에게 부모가 “저렇게 더운 곳에서 일하지 않으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한다. 폭염은 계층 간 삶의 격차를 그대로 보여주는 자연재해이자 사회재해이다.
폭염재해의 피해자는 주로 노동자와 노인, 병약자들이다. 폭염재해는 그 사회가 약자를 보호하고 있는지, 인권 상태는 어떤지를 보여주는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다. 이미 많은 나라가 폭염을 기후재해의 하나로 포함시켰다. 우리나라도 온열 사망자가 급격히 증가했던 2018년 국가재해의 범주에 폭염을 포함시켰다. 이전까지 폭염이 심각한 자연재해로 여겨지지 않았던 이유는 태풍이나 홍수처럼 집중적인 재난 장면이 사람들에게 각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폭염은 무서운 재해다. 쪽방촌에서 낡은 선풍기에 의존하며 지내는 허약한 중장년 1인 가구와 만성질환 노인들이 더위 속에서 죽고, 인적 드문 농촌의 밭 한복판에서 농부들이 쓰러져 사망에 이른다. 그래서 폭염은 조용한 기후살인이라고도 불리며, 실제로 홍수나 태풍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다. 통계청 집계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9년까지 폭염 사망자 수는 총 493명으로 태풍과 호우에 의한 인명 피해를 합친 것보다 3.6배가량 많다. 유럽 연합의 통계청인 ‘유로스탯(Eurostat)’은 유럽 16개 국가에서 2022년 5월30일부터 9월4일까지 6만2000명 정도가 열질환으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폭염은 신체 질환이 있는 사람들에게도 독소 같은 역할을 한다. 2022년 와이즈라는 빅데이터 연구팀이 서울시 건강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연구한 결과, 빈혈·치매·심장 및 신장 질환·고혈압·당뇨 등의 질환은 폭염 영향을 크게 받고 사망 위험까지 겪을 수 있다. 기온에 대한 인지와 체감이 낮은 치매 노인의 경우 매우 위험하고, 특히 야외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가장 위태롭다. 2023년 근로복지공단의 산업재해경위서에는 최근 5년간 온열질환으로 산업재해를 인정받은 노동자가 117명이라고 보고되었으나, 노동단체들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산업별로는 건설업, 제조업, 배달업 등에서 온열질환이 많은 것으로 보고되었다. 준공일자에 쫓기며 무리하게 일하는 건설 관련 노동자들이 폭염 사망자들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 노동자들의 주검을 맞이했던 응급실 의료진은 이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대단한 의료시술이 아니라 물, 그늘, 휴식이었다고 말한다. 생명보다 돈을 중시하는 문화가 또 다른 폭염 살인의 협력자였다.
폭염이 위험한 재해인 또 다른 이유는 폭염 속에서 성숙한 정신 상태를 유지할 수 없다는 점이다. 폭염, 높은 습도, 높은 불쾌지수의 상태에서는 살인과 폭력 같은 범죄 행위도 증가한다. 교통사고도 더 빈발한다. 충동조절이 어려워지고, 공격적으로 변한다. 그래서 대형 사고가 나기 쉽다. 폭염으로 인해 열대야를 겪고 수면이 부족하면 더욱 그럴 수 있다.
최고 체감온도가 33도 이상인 상태가 2일 이상 지속되는 폭염주의보는 일종의 대피령이어야 하며 건물 밖에서의 일은 중단되어야 한다. 폭염재해에서 시민사회가 안정을 이루려면 물, 그늘, 휴식을 아낌없이 제공해야 한다. 온도 지능을 높이도록 돕고, 온도 격차를 줄이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과연 그럴 채비가 되어 있는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