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안개에 휩싸인 공항대교에서 대규모 차량 추돌사고가 일어난다. 불길이 치솟고 비명이 메아리친다. 군이 비밀리에 실험하던 전투견들까지 풀려난 상황에서 헬기가 추락해 다리가 끊어진다. 국가안보실 행정관 차정원(이선균)과 렉카 기사 조박(주지훈)이 힘을 합쳐 탈출을 시도한다.
오는 12일 개봉하는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에서 주지훈은 고(故) 이선균과 공동 주연을 맡았다. 주지훈은 10일 기자와 만나 “누가 봐도 명확한 ‘팝콘 무비’이고, 다이렉트하게 통쾌한 장면들이 매력”이라며 “이 작품에 필요한 배우였다는 말을 듣고 싶다”고 말했다.
주지훈이 연기한 조박은 경박하고 능청스럽다. 위기 상황에서도 ‘까불’이 기본인 캐릭터로, 관객에게 웃음을 준다. 이기적인 성격이지만 나중에는 몸을 던져 사람들을 구한다. “이런 캐릭터를 좋아해요. 관객이 숨을 쉴 수 있게끔 하는 캐릭터잖아요. 내면을 자세히 그려야만 리얼리티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주지훈은 ‘어린 시절 동네 형들’을 떠올리며 조박 캐릭터를 구축했다. 노랗게 ‘브릿지’ 염색한 장발도 그의 아이디어였다. 주지훈은 “1990년대에는 동네에 가스 배달하는 형들이 많았다”며 “사회에 불만이 많은 그 느낌을 살렸다”고 말했다. “선입견으로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겠지만, 창작하는 입장에선 선입견을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진 않아요. 선입견을 잘 활용하면 관객의 보편적인 감정에 다가가는 거니까요.”
액션으로 유명한 주지훈의 ‘몸고생’은 여전했다. 188㎝ 몸을 택시 트렁크 안에 구겨 넣었다. 마치 ‘차력쇼’를 하듯이 위스키로 불길을 뿜어내는 장면도 컴퓨터그래픽(CG) 없이 직접 연기했다. “주변에선 당연히 위험하다고, CG로 가능하다고, 하지 말라고 말렸어요. 하지만 연기자 입장에선 쭉 연기하고 싶은 욕심이 있죠. 그런데 너무 힘을 줬는지 위스키가 침샘으로 역류해 일주일은 엄청 아팠어요.”
<탈출>은 이선균이 지난해 12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 처음 공개된 유작이다. 지난해 5월 칸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초청돼 주지훈·이선균이 함께 레드카펫을 밟았다. 주지훈은 이선균을 ‘유쾌한 형’이자 ‘디테일한 배우’로 기억했다. “좋은 배우, 좋은 선배였어요. 저는 ‘그냥 한번 해볼까’ 하는 스타일인데, 형은 물음표가 사라질 때까지 리허설을 굉장히 디테일하게 마치고 연기하는 사람이었어요. 웃고 떠들면서 스트레스를 날리는 방법은 저랑 비슷했던 것 같아요. 슬픔을 견디고 말고 할 것도 없어요. 일어난 일이고, 시간은 흐르고, 우리는 살아가는 것이니까….”
<탈출>은 제작비 185억원의 대작이지만 재난 영화의 클리셰(관습)에서 굳이 벗어날 의지가 없어 보인다. 주지훈은 “예상 가능하다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배우들의 열연이 전형적 캐릭터에 갇혀 아쉽다. 정치권 비판부터 신파적 가족애까지 한국 영화의 낡은 공식들을 다양하게 펼친다. 당선이 확실시되는 대선주자가 현직 국가안보실장이란 설정 등도 현실성이 부족하다. 다만 1300평(약 4300㎡) 세트장에서 펼쳐지는 폭발·붕괴·총격 장면의 박진감, 화려한 시각특수효과(VFX)가 재난 영화로서 만족스러운 볼거리를 준다.
주지훈은 올해 12월 방영 예정인 tvN 드라마 <사랑은 외나무다리에서>에서 로맨틱 코미디 연기를 보여줄 예정이다. “액션 영화를 많이 찍다 보니 요즘 육체적으로 좀 ‘부대낀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정말 일상적인 드라마라서 왜 이렇게 마음이 편한지…. 피·땀·눈물 없이 편안하게, ‘깨발랄’하게 찍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