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회관에서 아지매(할머니)들과 ‘몸살림운동’을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그런데 가끔 마음을 짠하게 하는 말씀이 있다. “아이고, 치매 들기 전에 얼릉 죽어야지.” “그래그래, 아프지 말고 오늘밤에라도 집에서 잠결에 고마 죽으모 얼매나 좋겠노.” “아니, 그게 사람 마음대로 되는 일이가.” 그런 말씀을 들을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고작 이것뿐이다. “요즘 도시고 농촌이고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게 암이 아니라 치매래요. 그러니까 방에 혼자 있지 말고 산책도 하고 마을회관에 와서 저랑 같이 몸살림운동도 해요.”
그럴 때마다 내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이란 ‘친구’와 같이 산다. 그런데도 나는 그 친구를 잘 알지 못한다. 오랫동안 함께 어울려 가까이 지내는 사람을 친구라 하는데, 태어날 때부터 내 곁에 있던 그 친구를 잘 알지 못하다니! 그러니 어찌 내가 한심하지 않겠는가.
내 나이 올해 66세다. 오늘밤에 죽는다고 해도 그리 아쉬울 것 없는 나이다. 건강한 몸으로 10년 더 살면 좋겠지만, 그게 사람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 생각도 욕심이다. 그래서 하루하루 삶을 정리하고 있다. 여기저기 수북이 쌓인 책과 잘 쓰지 않으면서 정이 들어 버리지도 못하고 갖고 있는 물건을 뒤적거리다 보면 온갖 생각이 다 든다.
아내한테 말했다. “하이고, 사람 사는 데 이렇게 많은 물건이 필요하다니요. 죽고 나모 다 그만인 것을. 나 죽고 나서 우리 자식들이 유품 정리하려면 며칠 걸리겠구만요.” 아내가 말했다. “여보, 요즘은 그런 걱정 안 해도 된대요. 어디 전화해서 돈만 주면 유품을 몽땅 싣고 가서 버린대요. 그러니 자식들 걱정하지 말고, 하나밖에 없는 마누라 걱정이나 해요.”
잘 죽으려면 하루하루 잘 살면 된다는 것쯤은 나도 안다. 그렇다면 잘 사는 법이 따로 있는 것일까? 나이 들수록 배워야 할 게 참 많다. 이런 걱정을 하고 있는데, 때마침 <그림책으로 배우는 삶과 죽음>이란 책을 내고 품위 있고 존엄하게 생을 마감하는 ‘웰다잉’ 강연을 다니시는 임경희 선생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가까운 이웃 마을 ‘토기장이의 집’에서 7월1일부터 9월10일까지(10회) 월요일마다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강연을 한단다. 임경희 선생이 경기도 수원에서 합천 산골까지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그 먼 길을 오신다니! 그것도 열 번이나!
산골 농부들은 하나같이 하늘이 주신 선물이라며 서둘러 신청을 했다. 아내와 나도 신청을 했다. 32세 청년 농부 서와와 28세 수연이도 신청을 했다. 죽음이란 아이고 어른이고 가리지 않고 누구한테나 찾아오는 것이라 어릴 때부터 배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웰다잉 첫 수업과 두 번째 수업을 들으면서 죽음이란 친구와 조금 친하게 되었다. 여태 살아오면서 꺼내기조차 쉽지 않고 언제나 낯설기만 하던 친구였다. 그 친구가 내 곁에서 같이 밥을 먹고 같이 들녘에서 땀 흘려 일하고 같이 잠을 자고 있다는 것을 왜 미처 몰랐을까? 웰다잉 수업을 듣고부터 그 친구 이름을 자주 부른다. 부르다 보니 정이 든다. 그 이름만 불러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보잘것없고 허물 많은 내 삶을 빛나게 하는 고마운 친구다. 세 번째 수업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