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죽은 할머니의 옷가지를 버렸다, 불 질러 버렸다. 마당 귀퉁이에서. 장롱에서 꺼내 온 스웨터. 할머니의 새 옷. 가장 아끼던 피부. 오그라든다. 솟구친다. 연기가 넘친다. 독하다. 마스크도 없이 아버지는 할머니를 한번 더 태운다. 나는 그 옆에서 한번씩 지붕 위로 솟구치는 불씨를 바라본다. 포항은 바람이 많은 도시. 철이 많은 도시. 굴뚝이 많은 도시. 비가 없는 도시. 죽음 앞에서 불 앞에서 나는 심부름을 잘하는 아이. 한나절 동안 아무 말 않고 아버지는 할머니를 버렸다, 불 질러 버렸다. 죽음이 이렇게 가벼운 것이잖아. 해 지는 쪽에서 한번 더 불탄다. 생긴 대로 살라는 말, 생긴 대로 먹으라는 말, 그것이 할머니의 마지막 말. 나는 운동화를 꺾어 신고 풀뱀처럼 울었다. 나에게서 아버지와 똑같은 냄새가 났다. 그을음 같기도 하고 할머니 방 안에 날리던 용각산 가루 같기도 했다. 할머니는 아버지와 나를 버렸다, 불 질러 버렸다. 죽지 못해 살았던 작은 방에서. 이소연(1983~)
“아버지”로 시작해서 “버렸다”로 끝나는 한 문장 안에 그을린 가족의 서사가 순식간에 지나간다. 장례식이 끝나고 집 마당에서 아버지는 할머니의 살갗 같은 옷을 태운다. 연기는 맵고 가슴까지 따끔거린다. 아버지는 “할머니를 한번 더 태”우고, 시인은 하늘로 올라가는 “불씨”를 바라본다.
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포항은 “바람”과 “철”과 “굴뚝”이 많은 도시. 아버지는 “한나절 동안 아무 말” 없이 할머니를 버린다. 시인은 “해 지는 쪽에서 한번 더 불”타는 것들을 본다. 아버지는 할머니를 버리려고 했지만, 결국 “죽지 못해 살았던 작은 방에서” 할머니가 아버지를 먼저 버렸던 것. 불을 “질러” 버린 것은 아버지가 아니라 할머니였던 것. 이제 할머니의 마지막 유품은 검은 재가 되었다. 생의 끝인 죽음은 이렇게나 “가벼운 것”이다. “생긴 대로 살”고, “생긴 대로 먹으라”는 것은 할머니의 마지막 말. 이 단순하고 명징한 말을 얻기까지 할머니는 얼마나 많은 그을음을 가슴에 안고 살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