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불법파견’ 노동자 승소한 1심 뒤집어
같은 사건 심리한 다른 재판부와도 판단 달라
노동계 “이 후보자가 담당하게 될 노동사건 걱정”
이숙연 대법관 후보자가 서울고법 노동전문 재판부 근무 당시 ‘현대자동차 사내 하청업체 노동자 불법파견’ 사건 재판에서 노동자 측의 손을 들어준 1심을 뒤집고 불법파견을 인정하지 않는 판결을 한 전력 등이 다시 조명되고 있다. 동일한 사건을 놓고 다른 노동전문 재판부에선 이 후보자와 달리 정반대 판결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법조계와 노동계에선 이 후보자가 대법원에 산적해있는 노동 관련 사건을 제대로 판단할지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17일 경향신문 취재결과 이 후보자가 재판장이었던 서울고법 민사15부는 2022년 1월28일 현대차 울산공장 1·2차 사내 하청업체 노동자 32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근로에 관한 소송’ 항소심에서 노동자 손을 들어준 원심을 뒤집고 원고 일부패소로 판결했다. 서울고법은 민사1부, 15부, 38부 등 3곳이 노동전문 재판부다. 이 후보자는 민사15부에서 2021년 2월9일부터 이듬해 2월20일까지 근무했다.
울산공장 사내 하청업체 노동자 200여명은 자동차 생산공정에서 생산관리, 포장 업무 등을 담당했다. 사측은 컨베이어벨트를 기준으로 컨베이어벨트 라인에서 근무하면 ‘직접 생산공정’, 라인 밖에서 부품을 투입하는 업무 등은 ‘간접 생산공정’으로 구분했다.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현대차로부터 실질적인 지휘·명령을 받는 ‘불법파견’ 관계에 있다”며 현대차 소속 노동자임을 확인해달라는 소송을 2016년 냈다.
법원은 소송을 한 인원이 많아 사건을 2개로 나눴고 1심은 서울중앙지법 민사41부가 모두 맡았다. 1심 재판부는 2020년 2월6일 “현대차가 수행에 필요한 지시를 하는 등 지휘·명령권을 보유·행사했다”며 두 사건 모두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하지만 항소심에서는 서울고법 민사1부와 민사15부가 각각 사건을 나눠 맡았다. 두 재판부는 2차 하청업체 노동자에 대해선 현대차의 실질 지배·개입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으나 1차 하청업체의 직·간접 생산공정 노동자에 관한 판단은 엇갈렸다.
민사1부 재판부는 2022년 2월16일 1차 하청업체 간접 생산공정에 대해 “정규직 근로자의 결원이 발생하면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가 대체근로를 하는 등 현대차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돼 있었다”며 “업무 수행 전반에 관해 (현대차가) 직·간접적인 지시·감독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업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기술개발, 업무지원 등을 처리할 인적·물적 조직을 갖추고 있지 않는 등 독자성, 전문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보고 1차 하청업체 노동자 11명 모두 승소로 판결했다.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그러나 이 후보자가 있던 민사15부 재판부는 같은 사건을 심리하고 “제출된 증거로 볼 때 현대차로부터 상당한 지휘·명령을 받았다고 볼 수 없다”며 원고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현대차 소속 근로자들이 1차 하청업체 간접 생산공정 노동자들과 같은 장소에서 같은 부품에 관해 직접 공동작업을 했는지 증명할 직·간접적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해당 사건에 대한 대법원 선고는 조만간 나올 예정이다.
정기호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는 “1차 하청업체 노동자에 대해선 원청회사의 지휘·명령을 인정하는 판결들이 계속되고 있는데, 유독 이 사건에서 다른 판단이 나온 건 의아하다”고 말했다. 유홍선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전 지회장은 “이 후보자가 노동사건에 잘못된 시선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며 “노동전문 재판부에 있었는데도 이런 판결을 했다는 점을 보면 앞으로 담당하게 될 수 있는 노동관련 사건에 대한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노동전문 재판부’에서 1년 넘게 근무한 이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 자료를 내면서 자신이 내세울 만한 판결들을 꼽았는데 노동사건은 전무했다.
이 후보자 측은 “후보자는 적극적으로 파견근로관계를 인정하는 판결을 선고한 바 있다”며 “그 외 재판장 또는 주심으로 관여한 다수의 사건에서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판결을 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