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23일 베이징에서 ‘통합’ 선언
갈등의 골 워낙 깊어 “통합 유지 쉽지 않다”
중국, 미국 대체하는 외교적 노력 과시
하마스와 파타를 포함해 팔레스타인 14개 정파가 지난 23일 화해와 통합을 선언한 ‘베이징 선언’을 두고 회의적 전망이 지배적이다. 중국의 중재와 가자지구 전쟁 참상을 계기로 화해는 했지만 팔레스타인 정파 간 분열의 골이 깊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의 외교적 위상은 강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24일 중국 매체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14개 정파는 베이징에서 사흘간 회담한 끝에 전날 하마스·이스라엘 전쟁 종식 후에도 팔레스타인이 계속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협정에 서명했다. 서명에는 팔레스타인 각 정파들이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로 나뉜 거버넌스를 통합하고 총선을 준비하기 위해 협력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모든 팔레스타인 인민의 유일한 합법적 대표임을 확인했다”며 “가자지구 전쟁 이후의 통치와 임시정부 수립에 관한 합의가 이뤄졌다”고 회담의 의미를 설명했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중국은 가자지구 전쟁 종식과 가자·서안지구를 모두 통치하는 팔레스타인 통합 자치 정부 수립, 팔레스타인 통합 정부의 유엔 가입 승인으로 이어지는 ‘두 국가 해법’ 계획을 갖고 있다. 팔레스타인 내부 통합부터 이끌어낸 베이징 선언은 첫 단추인 셈이다.
하마스 고위 간부인 무사 아부 마르주크는 선언 이후 기자회견에서 “오늘 우리는 국가적 통합을 위한 협정에 서명하며, 국가적 통합으로 이 여정을 완수하겠다”고 말했다.
베이징 선언은 전후 가자지구 통치권을 두고 대립해 온 하마스와 파타의 화해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화해가 유지될 것인지를 두고는 회의적 시선이 다분하다. 두 정파 간 역사적 갈등의 골이 워낙 깊기 때문이다.
중국이 팔레스타인 유일한 합법 정부라고 선언한 PLO는 1964년 팔레스타인 독립을 목표로 창설한 조직이다. 반시오니즘, 반제국주의, 아랍 민족주의, 사회주의, 마오주의 등의 영향을 받았으며 무장단체로 출발했다. 1993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를 보장하기로 한 오슬로 협정을 맺은 뒤 PLO는 무장단체에서 ‘자치정부’격으로 격상됐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가 출범했다. 하마스는 오슬로 협정을 인정하지 않으며 PA에도 참여하지 않고 있다.
PA를 이끄는 파타는 하마스의 이슬람 근본주의·무장투쟁 노선을 인정하지 않으며 하마스는 파타가 외세와 협력하고 있다고 비난해 왔다. 2017년 이집트의 중재로 하마스와 파타가 화해한 적 있으나 하마스의 파타 공격으로 무산됐다.
가자지구 전쟁 중에도 적대의 골은 깊어졌다. 하마스는 지난 3월 말 이집트 구호단체와 함께 가자지구에 진입한 자치정부 관리들을 체포했다. 하마스는 파타가 가자지구 내 분열을 꾀한다고 비난했으며, 파타 역시 하마스가 이란이라는 또 다른 외세를 끌어들여 전쟁을 장기화한다고 비난했다. 중국은 팔레스타인 내부 긴장이 고조되던 지난 4월 팔레스타인 정파 간 중재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팔레스타인 민족 이니셔티브의 무스타파 바르구티 사무총장은 이번 선언을 두고 CNN에 “최근 몇 년 동안 이뤄진 협정 가운데 가장 진전된 것”이라며 “가자지구 전쟁이 계기가 됐다”고 평했다.
하지만 브뤼셀에 본부를 둔 국제위기그룹의 팔레스타인 전문가 타하니 무스타파는 대부분의 팔레스타인인들은 베이징 선언 소식을 “신중함과 무관심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CNN에 말했다. 그는 “과거 팔레스타인 정파 간 화해의 장애물로 입증된 주요 문제가 (선언에서) 전혀 다뤄지지 않았다”며 PA 내 파타의 권력 독점을 어떻게 포기시킬 수 있을 것인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도이체벨레와 로이터통신도 베이징 회담이 실질적인 성과를 거뒀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평했다. 반면 가디언은 전문가를 인용해 “당장 선거가 열리지 않겠지만 회담은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아부다비에 있는 연구 및 자문 회사인 트렌드의 선임 연구원인 니컬러스 라이얼은 가디언에 “중국이 중재에 나선 것은 위기 자체와는 관련이 적고 중국을 미국에 대응하는 대안적인 세계적 리더로 내세우려는 노력과 더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미국 등 서방국가보다 역사적 짐이 덜한 중동에서 중재자 역할을 부각해 왔다.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간 화해도 중국의 중재로 이뤄졌다. 이는 중동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약화되는 것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로 꼽힌다.
중국사회과학원 서아시아·아프리카연구소의 연구원 탕지차오는 신화통신에 “중국과 미국의 중동 정책은 다르다”며 “중국은 항상 양자관계에서 평화와 안정을 증진하려 노력했으며 팔레스타인 문제에서도 지속 가능하고 공정한 해결책을 제시해 왔다”고 말했다.
향후 중국이 주선한 평화 노력을 미국이 깼다는 그림이 만들어질 수 있다. 매슈 밀러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베이징 선언을 검토해 보지는 못했지만 “갈등 종식 후 테러 조직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없을 것”이라며 하마스의 가자지구 통치 참여는 불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팔레스타인 인권변호사이자 PA 수반 마흐무드 아바스의 고문이었던 다이애나 부투는 아바스가 권력을 포기 못 할 것이라며 “이스라엘과 미국의 힘을 빌려 하마스를 몰아내는 방식으로 협정을 깰 가능성이 있다”고 워싱턴포스트에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