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죽음에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파존 A 나비 지음|이문영 옮김
사람의집|320쪽|1만6800원
응급실 의사가 등장하는 TV프로그램을 상상해본다. 사고 환자의 극적인 사망 순간 혹은 기이한 일로 실려온 환자에 대해 들려줄 수도 있다. 이것이 응급실 풍경에 대한 대중적 이미지이기도 하다. 아주 극적이거나, 혹은 기이하거나.
하지만 <나는 어떤 죽음에도 익숙해지지 않는다>를 쓴 미국 응급실 의사 파존 A 나비는 ‘응급실에서 본 가장 극적인 장면’을 묻는 질문에, 두 번만 더 찍으면 샌드위치를 무료로 먹을 수 있는 쿠폰, 할 일 목록, 새로 바른 매니큐어 등을 꼽는다. 죽은 자들도 불과 몇시간 전까지 같은 인간이었다는 걸 알려주는 평범한 삶의 온기들이다.
그리고 그는 말한다. “우리는 응급실에서 독특한 문제를 보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문제들이 독특하게 드러나는 것을 본다”고. 응급실에서 특이한 일이 많이 일어나는 건 맞지만, 그건 응급실이 특이한 곳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세상이 원래 특이하기 때문이다. 죽음도 누구나 겪는 일이지만, 응급실에선 단지 그것이 드러난다. 응급실의 문제는 곧 세상의 문제다.
세상사는 대체로 ‘코드 블랙’(대형사고)이나 ‘코드 블루’(심정지)처럼 딱 떨어지지 않는다. 세상사의 비효율성, 애매함은 고스란히 응급실에서도 일어난다. 찌그러진 꽃다발을 들고 보드카에 만취한 채 정기적으로 실려오는 노숙인, 사전연명치료서에 ‘거부’를 써두었기에 심장 치료를 할 수 없어 죽기만 기다려야 하는 활기찬 치매 노인, 아무런 이상이 없어서 돌려보내려 하자 ‘그곳(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며 울부짖는, 주 7일 일하며 아이들을 키우는 싱글맘… 이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실은 이런 ‘코드 그레이’(원제 Code Gray)의 지대가 대체로 그를 고민하게 만드는 ‘사건’들이다.
저자는 책에서 환자를 ‘인간’으로 보지 못하게 하는 의료 시스템의 문제를 반복적으로 짚는다.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란 질문에 결국 저자는 명확한 답을 내리진 못한다.
하지만 이 고민의 과정, 불합리한 시스템 사이에서도 어떻게든 틈새를 내려는 개인의 고뇌가 결국 무언가를 바꿔내는 힘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세상사가 그렇듯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