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메달의 책임

2024.08.01 20:49 입력 2024.08.01 20:52 수정

진행 중인 파리 올림픽이 ‘그린워싱’ 시비에 빠졌다고 한다. 역대 어느 대회보다 야심차게 친환경 올림픽을 표방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비판들이다. 파리 올림픽 조직위원회가 이번 대회를 기후위기 시대에 요구되는 저탄소 행사로 만들기 위해 취한 핵심적 조치는 경기장의 95%를 새로 짓는 대신 기존 시설을 활용하거나 임시 시설로 치르도록 한 것이다. 신규 건물도 대부분 대회가 끝나고 계속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선수촌에 골판지 침대를 놓고 채식 식단을 확대한 것, 일회용품을 제한하고 숙소와 버스에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은 것은 선수와 시민들만 고생시킨다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기후위기 인식 제고 효과는 있을 것이다. 조직위는 여러 수단들을 통해 탄소 배출량을 과거 올림픽 평균의 절반 수준으로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린워싱 논란이 이는 것은 우선 스포츠 행사를 비롯해 현대의 대다수 대형 이벤트가 기본적으로 막대한 에너지와 자원 투입을 요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올림픽 시설의 건설과 운용에서 탄소 배출을 최소화한다 하더라도 건설 자재를 프랑스 바깥에서 제조해 나르고 선수단이 이동하는 데에서 발생하는 간접 배출량이 엄청난 게 당연하다. 게다가 코카콜라 같은 온실가스 다배출 다국적기업들이 파리 대회를 후원한다는 점은 그린워싱에 대한 의혹을 더한다. 돌이켜보면 파리협정이 만들어진 2015년의 21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의 후원사들도 에어프랑스나 미쉐린 같은 기후악당 기업들이어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자신의 임기 내내 기후위기를 진심으로 대하며 파리의 도시구조와 관행을 크게 바꿔온 안 이달고 시장으로서는 이런 상황이 다소간 억울할 것 같다. 파리 올림픽에서 이런 논란이 벌어지는 것 자체가 기후위기에 대해 커진 관심을 반영할 뿐 아니라, 향후 모든 국제행사는 기후변화 완화와 적응을 가장 큰 관심으로 삼아야 한다는 일종의 벤치마킹 효과를 낳을 것이다.

다른 한편, 파리의 그린워싱 수모를 조롱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한국의 금메달 행진에 열광하는 우리는 어떤가? 최근 몇번의 올림픽 금메달 순위를 보면 대체로 미국과 중국이 1·2위를 다투고 그다음으로 유럽연합 국가들, 일본과 한국, 그리고 러시아와 호주 등 에너지 강국들이 자리한다. 이는 세계 온실가스 배출 순위와 거의 일치한다. 한국이 거둔 10위권 전후의 성적 역시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 순위와 다르지 않다. 간단히 말해 각국의 선수들이 금메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선수들의 피땀만이 아니라 막대한 화석연료와 핵발전이 만든 에너지와 세계화된 제조업, 농식품 산업이 필요했다. 경기장에서 뛰는 선수들과 배달음식을 시켜두고 선수들을 응원하는 우리들 모두 이런 ‘제국적 생활양식’의 톱니바퀴를 벗어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모든 것을 쏟아부은 선수들의 눈물은 격려받아야 마땅하고 우정과 평화를 표방하는 올림픽 정신은 더욱 고무되어야 한다. 그러나 화려한 중계 화면 뒤 보이지 않는 많은 것들이 기후위기를 만들고 그것 자체가 기후위기다. 한국 선수들의 금메달의 무게 역시 한국 정부와 기업들이 져야 할 책임의 무게다.

김현우 탈성장과 대안 연구소 소장

김현우 탈성장과 대안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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