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달, 뜨거운 여름보다 더 뜨겁게 달아오른 곳이 있다. 바로 1400만 개인 투자자들이 모인 온라인 게시판이다. 이유는 약속이나 한 듯 비슷한 시기에 나온 세 대기업 그룹 내 거래 때문이다.
한화는 세 형제의 개인회사인 한화에너지가 지주회사인 (주)한화의 주식을 공개매수했다. 두산은 복잡한 분할합병·주식교환 등을 거쳐 그룹의 캐시카우이자 자회사 에너빌리티의 자회사였던 밥캣을 다른 자회사 로보틱스의 100% 자회사, 궁극적으로는 지주회사인 (주)두산의 자회사로 편입하려고 한다. SK는 배터리 회사 SK온을 자회사로 두고 있는 상장사인 SK이노베이션과 비상장사인 SK E&S를 합병하려고 한다.
이러한 계열 내 지분비율 변경안에 관해 투자자들이 문제를 제기하는 공통적인 이유가 있다. 바로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사이의 이해충돌이다. 복잡한 이익과 손해를 계산해보기 전에 더 쉽게 눈에 띄는 문제점이 있다. 회사에서 설명하는 내용과 여론이 생각하는 거래 목적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냥 ‘다 그런 거지’라며 넘기기에는 회사의 설명과 주주들 인식의 괴리가 너무 크다.
한화는 공개매수 목적으로 ‘책임경영 강화’를 들었다. 하지만 여론은 대부분 세 형제의 개인회사인 한화에너지가 지분율을 높여 현재의 지주회사인 (주)한화를 지배하는 구조를 만들어 세대 간 승계를 달성하려는 목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두산과 SK도 마찬가지다. 두 그룹 모두 ‘장기적 성장’ ‘경영 합리화’ ‘기업가치 제고’ 또는 ‘본원적 경쟁력 강화’ 같은 일반론적인 목적을 공시·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여론은 두산의 분할합병과 주식교환 등은 그룹 내 캐시카우인 밥캣에 대한 실질적 지배력 강화 및 배당 증대를, SK의 합병은 배터리 회사인 SK온에 대한 지원을 목적으로 한다고 보고 있다. 시장 또한 그런 취지라는 것을 전제로 움직이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런 거래에 대한 회사의 설명은 솔직하지도 투명하지도 않다. 애매하고 추상적인 말로 가득 차 있으니 신뢰도 생기기 어렵다. 차라리 ‘당장은 손해일 수 있겠지만 로봇 사업 제대로 해보겠다, 도와달라’ 또는 ‘배터리 사업 조금만 더 도와주면 이렇게 잘할 수 있다’며 주주들에게 설득력 있는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계획을 제시했다면 어땠을까?
금융감독원은 두산의 분할합병 등 거래에 대해 ‘증권신고서에 부족함이 있다면 횟수 제한을 두지 않고 정정 요구를 하겠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증권신고서는 사실을 솔직하게 그대로만 쓰면 문제없는 문서다. 금감원은 거래의 실질적 내용에 관여할 수 없다. 주어진 정보에 따라 판단은 주주들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보가 정확하지 않거나 구체성이 없다면 당연히 감독당국이 관여할 수 있고 그게 임무다. 이런 ‘투명성’은 일반 대중에게 돈을 받아 사업하는 회사의 기본적인 거버넌스 요소다.
회사를 상장한다는 것은 남의 돈, 그것도 사업에 관해 잘 모르는 일반 대중의 돈을 받아서 사업하겠다는 뜻이다. 상장으로 받는 대중의 자금은 ‘쉬운 돈’이 아니다. 가장 어렵고 무거운 돈이다. 일반주주 한 명 한 명의 돈은 은행이나 기관투자자보다 훨씬 적지만 각 개인의 과거와 미래, 가계의 안정과 행복이 달려 있는 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회사를 상장해 기업을 공개했다면, 그에 맞는 투명한 의사결정과 주주에 대한 정보 제공을 위한 구조를 반드시 구축해야 한다.
최근 두산 등 거래 투명성에 대한 금감원의 엄격한 요구가 한 단계 발전한 자본시장의 실무를 해나가는 데,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는 데 초석이 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