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무너뜨리는 검찰독재…다시 한번 크게 일어설 때”

2024.09.24 06:00 입력 2024.09.24 06:03 수정

정의구현사제단 50돌 미사

<b>머리 희끗해진 그날의 사제들</b> 23일 서울 중구 명동대성당에서 열린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창립 50주년 감사 미사에서 사제단이 입장하고 있다(오른쪽 사진). 감사 미사에서 함세웅 신부가 강론을 하고 있다(왼쪽 위). 문규현 신부가 미사를 주례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color@kyunghyang.com

머리 희끗해진 그날의 사제들 23일 서울 중구 명동대성당에서 열린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창립 50주년 감사 미사에서 사제단이 입장하고 있다(오른쪽 사진). 감사 미사에서 함세웅 신부가 강론을 하고 있다(왼쪽 위). 문규현 신부가 미사를 주례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color@kyunghyang.com

주례 문규현·강론 함세웅 신부
“오늘날 명동성당 책임감 상실”

박종철 고문치사 진실 들춰낸
안유·전병용씨에 감사패 증정

1974년 원주교구장인 지학순 주교가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됐다는 혐의로 구속되자 전국의 사제 300여명이 들고일어나 ‘제1시국선언’을 발표했다. 독재에 저항하는 민주화운동에 앞장서온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태동이다.

50년이 지난 후 사제단은 ‘제1시국선언’ 속 요구사항을 다시 들고 나섰다. “우리가 제1시국선언문에서 천명했던 ‘유신헌법 철폐와 민주헌정 회복, 국민 생존권과 기본권 존중, 서민대중을 위한 경제정책 확립’은 지금 짓다 만 밥처럼 이도 저도 아니게 돼버렸습니다. 다시 한번 민주의 이름으로 크게 일어설 때가 왔습니다.”

사제단은 한국 민주화운동의 굵직한 흐름과 함께해왔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알리는 데 앞장서다 많은 사제들이 옥고를 치렀고,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조작을 폭로해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 1970~1980년대에는 군부독재 타도와 민주화운동, 1980년대 말에는 통일운동에 함께해왔다. 2007년 삼성 비자금 의혹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와 함께하면서 삼성 비자금에 대한 대대적 수사를 촉발하기도 했다.

올해가 창립 50주년인 사제단이 23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기념미사를 열었다. 50년 전 명동성당에 모였던 사제들처럼, 김인국 사제단 대표를 필두로 흰옷을 입은 사제 85명이 십자가를 들고 예배당에 입장하며 미사가 시작됐다. 당시 갓 서른을 넘긴 젊은 신부들은 머리가 희끗희끗해졌다.

미사의 주례는 ‘길바닥 신부’ 문규현 신부가, 강론은 민주화운동의 원로 함세웅 신부가 맡았다. 함세웅 신부는 “지난 50년 사제단의 행동은 부족했지만 끊임없이 골고다 언덕 예수님의 길을 따르려고 노력했다”며 “명동성당은 (민주화운동 시기) 사제, 신자, 민중의 것이었다. 오늘날 명동성당은 그 책임감을 상실했다”고 말했다.

사제단은 미사와 함께 발표한 성명에서 “밤낮 대한민국을 무너뜨리는 데 일로매진하는 검찰독재의 등장은 민주화 이후 우리가 무엇을 고쳐서 무엇을 창조해나갈 것인지, 그리하여 어떤 나라를 이룩할 것인지 그 목표와 의지가 흐릿해지면서 벌어진 변칙 사태”라며 “당장은 악이 승리하는 듯 보여도 오래가지 못한다. 악인들은 풀과 같고 의인들은 나무와 같다. 불의의 기세에 놀라지도 눌리지도 말자”고 밝혔다.

이날 미사에선 박종철 고문치사 조작의 진실을 알렸던 ‘민주교도관’ 안유, 전병용씨에게 감사패를 증정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이용훈 주교가 축복메시지를 전하고 박노해 시인의 축시가 낭독됐다.

사제단은 지난달 19~23일엔 사제 42명이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을 순례했다. 사제단은 “손에 닿을 듯 가까운 북녘의 산하를 눈으로 어루만지면서 생나무 절반이 찢겨나간 이 현실을 우리가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묻고 또 물었다”며 “저만 알아 저만 살려는 각자위심, 각자도생은 그 누구에게도 안전한 미래가 아니다. 더 늦기 전에 우리 사이의 불신과 미움을 포용과 이해로 바꾸자”고 말했다. 오는 11월18일에는 명동성당에서 창립 50주년 심포지엄을 여는 등 기념행사를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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