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의원 ‘남발’…과다 복용 땐 심장이상·불면증 유발
작년 2억2500만건으로 증가세…청소년 처방도 부쩍
환자 A씨는 지난 1년간 병원 한 곳에서 24차례에 걸쳐 마약류 식욕억제제 6037개를 처방받았다. 환자 B씨는 8개 의료기관에서 54차례에 걸쳐 식욕억제제 5346개를 받았다. 환자 C씨는 6개월 동안 4차례 다니며 2540개를 처방받았다. 진료 한 번당 약을 평균 635개 받은 셈이다.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23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국내에서 처방된 식욕억제제는 2억2505만8760개, 처방 환자는 112만6585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 평균 환자 3086명에게 61만6599개의 식욕억제제가 처방된 꼴이다.
올해도 증가세는 꺾이지 않고 있다. 올해 상반기 처방된 식욕억제제는 1억964만6871개로 처방 환자는 83만5287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에 비해 일 평균 처방량(60만2455개)은 소폭 줄었지만 처방 환자는 48%(1503명) 늘었다.
지난해 전체 식욕억제제 처방의 97%는 의원에서 이뤄졌다. 특히 개인 의원 처방이 두드러졌다. 지난해 식욕억제제 처방량 상위 의사 30명을 분석해보니 이들 모두 의원급에서 근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30명이 지난 1년간 처방한 식욕억제제는 6700만개, 처방 환자는 27만4000명이 넘는다. 지난해 전체 식욕억제제 처방량의 30.5%, 전체 처방 환자 수의 25.2%에 달하는 규모다. 연간 처방량의 3분의 1 정도를 의사 30명이 처방한 것이다.
마약류 식욕억제제는 펜터민, 펜디메트라진, 디에틸프로피온, 마진돌, 펜터민·토피라메이트 등 성분을 담은 의약품으로 국내 총 76품목이 이에 해당한다. 식약처 ‘의료용 마약류 식욕억제제 안전 사용 기준’(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마약류 식욕억제제는 4주 이내의 단기처방이 기본으로 1일 권장 투여량은 1~3정이다. 의사 판단에 따라 추가 처방은 가능하지만 부작용 위험을 고려해 총 처방 기간은 3개월을 넘기지 않도록 했다. 또 마약류 의약품 특성상 청소년과 어린이에게는 사용하지 않을 것을 권고하고 있다.
식약처 가이드라인에도 불구하고 청소년 처방을 비롯한 과다 처방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의사가 가이드라인을 어긴다 해도 제재할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5년간(2020~2024년 6월) 식욕억제제를 처방받은 청소년은 모두 4만860명(총 378만2000여개)에 달한다.
식욕억제제 과다 복용으로 인한 부작용도 늘고 있다. 마약류로 지정 관리 중인 식욕억제제를 과다 복용할 경우 불면증·환청뿐 아니라 심장이상·정신분열 등 치명적인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2020년부터 올해 6월까지 식욕억제제로 인한 부작용 보고 건수는 1383건으로 2020년 190건에서 2023년 342건으로 늘었다. 올 들어 6월까지 보고된 부작용 건수는 215건이다.
김윤 의원은 “식약처가 올해 6월부터 시행하고 있는 마약류 투약내역 확인 제도는 펜타닐에 대한 투약 여부만 확인할 수 있어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