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대장이 늘 함께할게. 또 올게”
26일 오후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 장병 4묘역 고 채 모 상병 묘비 위에 팔각 전역모가 놓여졌다. 해병대 1292기인 채 상병은 지난해 7월 수해 실종자 수색 중 먼저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이날 동기들과 함께 전역했어야 한다. 그러나 지난해 수중 수색 중 숨진 그는 이날 현충원 묘지에 잠든 채 전역일을 맞았다.
묘비 위 전역모는 지난해 순직 당시 채 상병의 소속 부대인 해병대 1사단 포병7대대 대대장이었던 이용민 중령이 묘지를 찾아 전달한 것이다. 이 중령은 이날 홀로 국화 한다발과 전역모를 손에 들고 대전현충원을 찾아 채 상병 묘지를 참배했다.
해병대 1292기 장병들의 전역일이었던 이날 채 상병이 근무했던 경북 포항과 대전현충원에서는 ‘해병대 예비역 연대(예비역 연대)’ 주관으로 그를 추모하는 행사가 열렸다. 묘비 앞에는 미소를 띈 그의 사진과 이름이 적힌 전역복, 동기들의 추모 메시지가 담긴 엽서 4장 등이 놓여졌다. 예비역 연대를 통해 전달된 엽서에는 그와 함께 전역하지 못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전하며 안식을 기원하는 동기들의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이날 전역하자마자 예비역 연대 회원들과 함께 직접 채 상병 묘지를 찾은 장병도 있었다. 그는 “지난해 사고가 나기 전 저희 부대도 수색 지원을 위해 짐을 싸고 있었고, 채 상병이 아니라 제가 그 자리에 있었을 수도 있었다”며 “함께 전역하지 못한 것이 안타깝고 모두가 (채 상병 사건에) 계속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당초 이날 일부 전역 장병들이 함께 묘소를 참배할 계획이었지만 해병대 측의 사전 외부 접촉 자제 당부 등으로 일부 전역 장병들은 그냥 발길을 돌린 것으로 전해졌다. 전역 장병들은 자정까지 현역 신분이 유지된다.
예비역 연대는 현충원 참배에 앞서 이날 오전 전역 장병들이 귀가하는 포항시외버스터미널과 포항역 앞에서 채 상병에게 추모 메시지를 전할 수 있도록 ‘동기(채 상병)에게 쓰는 편지’ 행사를 열었다. 하지만 대부분 장병들은 부담스러운 듯한 표정으로 행사 부스를 피해가기도 했다. 한 전역 장병은 “위병소를 나오기 전 간부로부터 외부 접촉을 자제하라는 언질이 있었다”고 말했다.
정원철 예비역 연대 회장은 “채 해병이 무사히 군생활을 마쳤으면 동기들과 함께 기쁘게 전역을 맞았을 날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어 마음이 아프다”며 “대한민국 해병대가 어쩌다 오늘 같은 날 동기의 죽음도 제대로 추모할 수 없게 하는 지경에 이르렀는지 모르겠다”며 울분을 토했다. 이어 “지난해 연말이면 끝날 거란 생각으로 안타까운 채 해병 순직의 진상 규명 활동을 시작했는데 1주기가 지나고 전역일이 되도록 수사기관은 아무것도 밝혀내지 못했다”며 “누가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고 비겁하게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는지 국민들은 알고 있으며, 그를 사지로 몰아넣은 이들은 처벌 받고 수사 외압을 가한 윤석열 정권은 반드시 죗값을 치를 것”이라고 말했다.
동기들의 전역일을 하루 앞둔 지난 25일에는 채 상병 어머니가 대한민국 순직 국군장병 유족회 홈페이지 게시판을 통해 아들에게 보내는 공개 편지를 띄우기도 했다. 그는 “1292기수 1012명 중 아들만 엄마 품으로 돌아올 수 없는 아들이 되어 목이 메인다”며 “1년이 훌쩍 지났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현실이 너무 속상하고, 책임자를 밝혀달라는 이의 신청도 감감 무소식이라 답답하기만 하다”는 심경을 전했다. 그러면서 “안전장비 준비가 안돼 있으면 투입 지시를 하지 말았어야지 왜 구명조끼 미착용 상태로 투입을 지시했는지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며 “힘도 없고 내세울 것 없는 엄마지만 아들 희생의 진실이 밝혀지는 걸 꼭 지켜봐달라”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