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K파트너스·영풍과 회사 지배력을 놓고 분쟁중인 고려아연이 4일부터 최대 2조66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에 들어간다. 자기자본 1조5000억원을 투입하고 모자란 금액은 차입해 MBK·영풍의 공개매수를 무산시킨다는 게 고려아연의 계획이다. 고려아연은 회사의 미래를 위한 결단이란 입장이지만, 막대한 회사 자금을 현 경영진의 지배력 방어에 사용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논란도 제기된다. MBK·영풍과 고려아연 모두 비전 경쟁보다 ‘쩐의 전쟁’에만 집중해 주식 공개매수 결과와 관련없이 고려아연의 미래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고려아연은 자사주 매입 방식으로 주당 83만원에 공개매수에 나선다고 지난 2일 공시했다. 주식 공개매수란 회사 지배력 확보를 목표로 불특정 주주를 대상으로 기간을 정해 정해진 가격으로 주식을 사는 것을 말한다. 공개매수 지분은 최대 15.5%로 총 공개매수 대금은 2조6635억원에 달한다. 고려아연의 재무적투자자로 지분 공개매수에 나서기로 한 사모펀드 베인캐피탈 보유지분을 합하면 최대 18%, 대금은 약 3조931억원까지 높아진다. 이는 앞서 공개매수가를 주당 75만원까지 상향한 MBK·영풍의 공개매수 규모(지분 14.61%, 대금 2조2682억원)를 크게 상회하는 것이다.
고려아연은 주주환원과 적대적 인수합병에 맞서 기업가치를 제고하기 위해 공개매수에 나섰다는 입장이다. 공개매수를 통해 확보한 자사주는 전량 소각할 계획이다.
앞서 고려아연이 공개매수를 위해 메리츠증권으로부터 발행하는 1조원 규모의 사모사채를 비롯한 총 2조7000억원의 단기 차입금을 사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지만, 고려아연은 자기자본 1조5000억원을 공개매수 대금으로 사용한다는 입장이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3일 “회사 돈 1조5000억원을 쓰고 부족하면 (차입금을) 당겨서 쓴다는 것”이라며 “(사모사채는) 필요하면 발행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적절성이다. 자사주 매입은 합법적인 지배력 방어 수단이지만, 여기에 회사 자금을 쓰는 것은 현 경영진인 최윤범 회장의 사익을 위해 사유화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주주의 자금을 받아 운영하는 주식회사에서 ‘대리인’인 경영진을 위해 회사 자금을 사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는 “개인이 회삿돈을 이용해 자사주를 매입·소각하는 것은 자기 지배력을 지키는 것인 만큼 좋지 않은 방향”이라며 “최 회장 일가가 자기 돈을 가지고 주식을 매입해 경쟁하는 것이 바른 방법”이라고 말했다.
주식 공개매수에 순자산(약 8조7900억원)의 17%에 달하는 막대한 자기자본을 투입해 재무 부담이 가중되고 결과적으로 투자 여력이 줄어들 여지도 있다. 주주환원 효과도 불분명하다. 통상 자사주 매입·소각은 저평가된 주식의 가치를 높이는데 사용되는데, 공개매수 국면의 경우 주가가 일시적으로 급등하는 만큼 주식을 비싸게 사서 소각해 주주환원 효과도 반감된다.
이에 대해 고려아연 관계자는 “회장을 주주들이 지지해주는 것은 추진 방향이 국가 전략 산업이나 글로벌 환경에 잘 맞다고 보기 때문”이라며 “(공개매수는) 회장을 보호하거나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고 밝혔다. 최 회장도 지난 2일 기자회견에서 “(공개매수는) 단기적으로 금융 부담이 수반되는 어려운 결정이지만, 중장기적으로 기업가치를 보존하고 모든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제고하는 유일한 해법”이라고 했다.
당장 고려아연과 MBK·영풍 모두 막대한 자금을 공개매수에 투입하면서 지분 경쟁에 승리하더라도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 교수는 “돈보다는 양측 모두 자신들이 경영하면 기업이 얼마나 나아질 수 있는지 비전을 갖고 경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