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계량기 보급 직격탄…전기 검침원들이 떠난다

2024.10.07 06:00 입력 2024.10.11 17:24 수정

단가는 낮아지고 노동환경 악화…올 3~5일에 한 명꼴 퇴사

한국전력공사 자회사 한전MCS 소속 전기 검침원 권영신씨(56)가 지난 2일 경기 연천군에서 검침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박채연 기자

한국전력공사 자회사 한전MCS 소속 전기 검침원 권영신씨(56)가 지난 2일 경기 연천군에서 검침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박채연 기자

경기 연천군에서 17년째 전기 검침원으로 일하는 권영신씨(56)는 오토바이에 ‘뱀 막대기’와 제초제를 늘 싣고 다닌다. 계량기를 열었을 때 말벌집이나 뱀을 마주치는 일이 적지 않아서다. 지난 2일 기자가 동행한 권씨의 오토바이는 마을회관·보건소와 산속 농지 등 전기가 있는 거의 모든 곳을 향했다.

산길에 들어선 오토바이는 이내 차량이 접근할 수 없는 길에 닿았다. 권씨는 울퉁불퉁한 돌길을 앞장서 걸었다. 권씨는 산속 농지 옆 전봇대의 계량기를 들여다봤다. “이런 곳에 ‘지능형 전력계량시스템(AMI)’을 달아줘야 하는데, 얘기해도 안 달아줘요. 설치가 번거롭고 비용이 드니 그렇겠죠.”

검침 후 권씨가 버는 돈은 건당 평균 1200원. 권씨 등 총 6명이 서울의 1.2배에 달하는 연천군 일대의 검침을 담당하고 있다. 이들은 하루 평균 250곳의 검침을 마쳐야 한다.

한국전력공사 자회사 한전MCS 소속 전기 검침원들이 2010년부터 시작된 AMI의 보급으로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올해 4월 기준 AMI 보급률은 전국 78% 수준에 달하는데, 나머지 22%의 취약한 지역을 검침원들이 맡고 있는 것이다. 전체적인 일감은 크게 줄어든 반면 검침원에게 배정된 할당량은 유지돼 이들이 맡아야 할 구역이 더욱 넓어진 것이다.

임순규 한국노총 공공노련 한전MCS노동조합 위원장은 “검침원들은 이륜차로 하루 평균 150~200㎞를 다닌다. 인력이 적은 곳에선 300㎞까지 이동한다”고 말했다. 전기 검침원들은 오토바이, 소형차 등의 주유비·유지관리비도 부담해야 한다. 권씨는 “주유비·수리비로 한 달에 40만~50만원 나간다”고 했다. 넓은 지역의 검침 일정을 맞추기 위해 휴일 근무도 다반사고, 교통사고가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검침원들은 AMI 보급이라는 산업전환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방치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본다. 자동화를 막을 수 없다면 검침원들이 맡을 새로운 업무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퇴사자도 속출하고 있다. 임 위원장은 “올해 3~5일에 한 명씩 회사를 그만두고 있다”며 “지난 1일자 인사이동으론 벌써 정규직 3명이 퇴사했다”고 했다. 회사가 인력이 부족한 지역으로 발령을 내면 본래 생활권에서 크게 멀어지는 노동자들이 퇴사를 택하면서 ‘퇴사 도미노’가 이어지는 것이다.

한전MCS는 "업무 환경변화에 따라 업무량을 하향 조정해 왔으며, 사망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며 "한전의 AMI 구축 완료 계획을 고려해 계약 사항에 대한 의견을 한전에 제출한 상황"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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