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100’을 선언한 기업 36곳의 지난해 전력사용량이 서울 전체 전력사용량의 1.4배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RE100은 2050년까지 사용전력을 모두 재생에너지로 조달하는 프로젝트다. 반도체 산업 육성 전략으로 전력 수요가 더 늘어나는데 재생에너지 조달을 늘리기 위해 정부가 시급히 재생에너지 발전 인프라를 조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실이 9일 한국전력 자료를 분석한 결과, ‘RE100’ 참여를 선언한 국내 36개 기업의 지난해 전력사용량은 5만6936기가와트시(GWh)였다. 서울 전체 전력사용량(3만9128GWh) 보다 1.45배 많다. 이들 기업이 올해초부터 지난 7월까지 쓴 전력량은 3만2588GWh으로 지난해 전체 전력사용량 대비 57% 수준이다. 이 추세대로라면 올해도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의 전력소비량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분야 기업들의 전력 사용량이 특히 많았다. 전력사용량 1위인 삼성전자는 지난해 전년대비 8.5% 늘어난 2만3579GWh 전력을 썼다. 삼성전자 한 곳의 전력사용량이 부산(2만1555GWh)·전북(2만1443GWh)보다 많았다. SK하이닉스는 8008GWh를 사용해 2위를 기록했다. 이어 삼성디스플레이(5550GWh), 현대자동차(2275GWh), LG전자(1849Gwh) 순이었다.
향후 정부의 반도체 육성 전략으로 전력 수요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향후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입주할 용인 반도체클러스터의 연간 전력사용량은 5만7600GWh(16GW)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수도권 전체 전력 수요의 40% 수준이다.
문제는 RE100 기업들의 재생에너지 비중이 주요국 중 ‘최하위’ 수준이라는 점이다. 글로벌시장분석업체 블룸버그뉴에너지파이낸스(BNEF)가 올해 발간한 ‘기업에너지시장 현황’에 따르면 국내 RE100 기업의 재생에너지 전력 조달 비중 8%로 36개국 중 32위였다. 독일(52%)·영국(41%)은 물론, 중국(28%)·일본(21%)·호주(24%)·미국(19%)보다 낮다. 한국보다 비중이 낮은 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0%), 아랍에미리트(2%), 싱가포르(4%) 정도다.
기업들이 재생에너지를 조달하기에는 비용 부담이 큰 상황이다. 한국에너지공단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은 2022년 기준 9.2%다. 세계 평균인 30% 수준에 크게 못 미친다. 자연스레 생산단가도 올라가게 된다. 2020년 BNEF 조사에 따르면 태양광 재생에너지 생산단가는 중국 42원, 미국 48원인데 비해 한국은 116원으로 두배 이상 비쌌다. 화력발전 생산단가는 48.4~71.4원으로 재생에너지보다 저렴했다.
이런 탓에 2022년 기준 삼성전자 국내사업장의 재생에너지 사용 비중 3% 수준으로 알려졌다. 해외 포함 전체 사업장의 재생에너지 사용비중(16.3%)보다 크게 낮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현재 정부도, 기업도 2030년부터 2050년까지 반도체클러스터 전력을 어떻게 공급하겠다는 계획이 없다”면서 “높은 단가가 문제라면 TSMC처럼 특정 전력기업과 20년 장기 구매 계약을 맺는 등 재생에너지 단가를 낮추는 방법도 검토할 수 있다”라고 했다.
정부의 재생에너지 전략 부재는 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차 의원은 “재생에너지를 활용한 전력망 구축이 적시에 이뤄지지 않으면 최근 우리기업의 국내 이탈은 더욱 가속화될 수 밖에 없다”며 “윤석열 정부는 원전만을 강조할 게 아니라 재생에너지 투자에도 적극나서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