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막을 내린 TV드라마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에서 주인공 고정우는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살인의 범인으로 지목돼 전과자가 됐다. 분노와 억울, 모욕과 오해로 뒤덮였던 그의 삶이 평화를 찾은 것은 진실을 밝히고자 노력한 사람들 덕분이었다. 범죄를 저지르고 은폐에 공모한 이들이 드러나면서 ‘내가 죽이지 않았다’는 고정우의 믿음은 사실로 바뀌었다.
홍성헌은 그러지 못했다. 옆동네 동생이자, 학교 후배였던 양회동이 지난해 5월1일 정부의 건설노조 탄압에 항의하며 몸에 불을 붙이는 순간 ‘옆에서 말리지 않았다’는 누명을 썼다. 조선일보는 ‘기획된 분신’이라는 취지로 보도했고, 전 국토부장관 원희룡은 이 기사를 편들었다. “동료의 죽음을 투쟁의 동력으로 이용하려 했던 것은 아닌지.” 원희룡이 했던 말이다. 경찰 조사 끝에 홍성헌은 자살방조 혐의를 벗었지만 ‘목적을 위해 목숨을 도구로 삼은 자’라는 오명은 남았고 삶은 만신창이가 됐다.
이 사태의 실마리를 제공한 자가 있었다. 춘천지검 강릉지청의 폐쇄회로(CC)TV 영상을 유출한 자다. 유족은 양회동 분신 영상을 유출한 것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라며 ‘성명불상자’를 고소했다.
경찰은 “수사 중”이라는 말로 18개월을 보냈다. 가끔 “시간이 걸린다” “충실히 하겠다”는 말을 덧댔다. 관련 공무원 38명을 조사했다고 한다. 지난 2월 서울경찰청장에 취임한(현 경찰청장) 조지호는 “조금만 기다려달라. 저도 관심을 갖고 있다”고 했다. 지난 8월 취임한 서울청장 김봉식은 “충분히 오래됐다는 것 공감한다”고 했다. 그 사이 서울청장, 광역수사단장이 2번씩 바뀌었다. 여전히 홍성헌은 누가 무슨 의도로 CCTV를 유출했는지 알지 못한다.
다른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사건이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직원인 탁동삼·지경규·김준희는 민원인 이름 등 개인정보를 수집·누설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류희목·박우귀 등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특이한 이름의 민원인들이 이들의 눈에 띄었다. 이들은 조직 수장인 방심위원장 류희림의 가족·지인이 집단적으로 넣은 민원을 류희림이 심의하는 건 이해충돌이라고 판단해 내부고발을 했다. 류희림은 되레 개인정보 누설이라며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은 지난 1월 신고 접수 18일 만에 첫 압수수색을 벌인 데 이어 이달까지 총 3차례 압수수색을 했다. 탁동삼 등은 결국 ‘우리가 제보했다’고 신분을 드러냈다.
지난 11일 국회의 경찰청 국정감사에서 조지호는 “결과를 지켜보시라”고 했다. 류희림의 이해충돌 수사와 탁동삼 등의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수사를 편파적으로 하지 않겠다는 장담이었다. 조지호가 장담한 그 결과를 양회동의 유족과 홍성헌 역시 기다리고 있다. 춘천지검 CCTV 영상과 류희림 가족의 개인정보 유출 관련 수사는 모두 서울청 광역수사단 반부패수사대가 맡고 있다. 고정우의 누명을 벗긴 경찰 노상철이 속했던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