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내년 상반기까지 부정경쟁방지법 등 개정 추진
영업비밀 ‘취득’뿐 아니라 ‘누설’도 처벌
분쟁시 영업비밀 입증책임 가해자에게 전환
정부가 반도체·디스플레이·이차전지 등 첨단기술 불법 유출을 막기 위해 영업비밀 유출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법 개정에 나선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7일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의 ‘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기술유출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기재부는 내년 상반기까지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부정경쟁방지법)과 발명진흥법 개정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개정안에는 이직 알선 브로커(헤드헌터)들의 기술유출 목적의 이직 알선행위에 대해서도 민·형사적 구제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길 예정이다. 또 해킹·랜섬웨어 등 전자적 침입에 의한 영업비밀 침해행위를 침해 유형으로 명시하기로 했다.
한국 기업을 자회사로 둔 외국기업의 영업비밀 ‘해외 재유출’에 대한 처벌 규정도 보완한다. 현재는 한국 자회사가 외국 모회사에 불법 취득한 타 회사의 영업비밀을 누출해도 처벌 규정이 없었다. 현행법은 불법 취득한 영업비밀의 취득·사용에 대한 처벌 규정만 있기 때문이다. 개정안은 누설도 처벌하도록 보완한다.
기술 유출 문제로 분쟁이 생기면 영업비밀을 사용하지 않았음을 침해자가 입증하도록 입증책임 전환을 추진한다. 현재는 영업비밀을 침해당한 피해자 측이 입증해야 한다. 또 영업비밀 유출에 대한 신고포상금제를 추진한다.
수사기관의 기술유출 수사 효율성도 도모한다. 정보·수사기관이 첩보·수사 단계에서 기술범죄 성립 여부 확인을 요청하면 특허청이 기술 유사성 판단 결과를 제공하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한다.
중소기업의 지식재산권 보호를 지원하는 ‘공익변리사센터’를 ‘산업재산법률구조센터’(가칭)로 확대 개편해 중소기업 대상 기술 탈취 대응 지원책을 확대하기로 했다.
정부가 기술 유출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글로벌 첨단기술 유출 전쟁에서 뒤처질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국가정보원은 최근 5년(2020년~올해 8월)간 적발된 해외 기술유출 시도만 97건이고 유출시 피해액은 23조원대 규모로 추산했다고 밝혔다. 대검찰청의 기술유출범죄 처리건수는 2021년 230건에서 지난해 379건으로 늘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22년 정보통신기술(ICT), 소재·나노, 우주·항공 등 11대 분야에서 한국의 기술수준이 처음으로 중국에 추월당했다는 평가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주요국에서도 국가안보 관점에서 기술이전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중국 등 ‘우려 국가’가 인공지능(AI)·반도체 등 첨단기술에 투자하면 재무부에 신고할 것을 의무화했다. 중국은 2019년 영업비밀 고의침해에 대한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와 몰수제도를 도입했다. 일본은 가해자가 영업비밀을 사용하지 않았음을 입증하도록 입증책임을 전환했다.
최 부총리는 “첨단기술의 불법적 유출을 방지해 우리 기업의 글로벌 산업경쟁력을 높이고 기술 주도권을 강화하겠다”며 “고도화되는 수법에 대한 처벌 규정을 신설해 영업비밀 유출과 부정경쟁 행위 처벌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