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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교육감 선거를 없애자는 말도 나옵니다. 범법 행위가 포착됐다고 해서 선거를 없애자는 건 반민주적 주장에 가깝습니다. 한국만 교육감을 직접 선거로 뽑는다는 사실도 직선제 폐지의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토양에 맞는다면 제도를 잘 키워보는 것도 방법 아닐까요? 오늘은 교육감 직선제를 두고 점선면을 그려보겠습니다.
빨간 교육감? 파란 교육감?
· 지난 10월 15일 서울시 교육감 보궐선거에서 정근식 후보가 조전혁·윤호상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습니다.
· 언론은 대체로 이 선거 결과를 ‘진보교육감 승리’라고 평가했어요. 선거 전엔 정 후보는 야권을, 조 후보는 여권을 대표하는 것으로 분류되며 ‘진보·보수 1 대 1 빅매치’란 말도 나왔습니다.
· 정·조 후보는 선거 벽보·현수막에도 각각 파란색(더불어민주당 상징색)과 빨간색(국민의힘 상징색)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또 정 후보는 ‘민주진보 단일후보’라고, 조 후보는 ‘중도보수 단일후보’라고 강조했어요.
· 하지만 교육감 선거는 정당과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은 교육감 후보가 되기 전 1년 동안 정당 당원이었던 적이 없어야 한다고 규정하거든요.
· 겉보기에 국민의힘 대 민주당의 선거 같은데, 실제로는 정당이 개입하지 않는다는 알쏭달쏭한 선거. 대체 왜 이렇게 된 걸까요?
‘다트판 투표지’가 등장한 이유
교육감 직선제, 즉 시민이 직접 투표해 교육감을 선출하는 제도는 2006년 도입됐습니다. 그전까지 교육감은 대통령이 임명했거나, 학교운영위원·교원단체 추천자 등만 참여하는 간접선거로 뽑았어요. 교육적 전문성이 아닌 대통령과의 친분이나 학연·지연에 휘둘린다는 비판이 계속 제기된 끝에 교육감 직선제가 탄생했습니다.
다만,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며 정당이 교육감 후보를 추천(공천)하는 걸 금지하고, 교육감 후보는 당적을 일정 기간 보유하지 않은 사람으로 한정했습니다.
한계는 금방 나타났습니다. 2007년 충북·울산·경남·제주 등 4개 지역 교육감 선거에서 일제히 기호 2번 후보가 당선했습니다. 기호는 후보 이름의 가나다순이었죠. 모든 지역에서 기호 2번 후보가 교육감에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한 유권자들이 많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해 교육감 선거와 함께 치른 대통령 선거에서 기호 2번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압도적으로 이긴 점을 고려하면 다소 찜찜한 결과였어요.
선거제를 보완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국회에선 교육감 후보 이름을 둥글게 써넣은 다트판 모양의 방사형 투표용지를 검토하기도 했어요. 2010년 선거에선 기호를 없애고 이름만 쓰되 그 순서를 추첨으로 결정했습니다. 그러자 이름을 가장 앞에 올린 후보가 유리하다는 반론이 제기됐고, 실제 의심할만한 사례도 나왔습니다. 2012년 서울시 교육감 재선거에선 이름을 첫 번째에 올린 후보가 선거일을 불과 1주일 앞두고 사퇴했는데, 개표 결과 무효표가 무려 14%에 달했어요. 이름이 가장 앞에 있는 후보가 사퇴한 줄도 모르고 찍었을 가능성이 거론됐습니다.
2014년부터는 선거구마다 이름 배치 순서를 다르게 하는 방식을 도입했습니다. 가령 서울 은평구 갑 선거구에선 김○○·이△△·박◇◇ 순서로 적고, 이웃한 은평구 을 선거구에선 박◇◇·김○○·이△△ 순서로 적습니다.
선거제를 고쳐가며 특정 기호 혹은 이름 순서에 따라 당락이 갈리는 ‘로또 선거’는 어느 정도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법에 담긴 ‘정치적 중립’이란 취지가 달성됐는지는 의문스럽습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선 서울시장 등 전국 17개 광역단체장 중 14개를 민주당 후보가 차지했고, 교육감 자리 또한 14개를 민주당 혹은 진보 성향 후보가 가져갔어요. 이 중 12명은 두 번째 혹은 세 번째 당선이었습니다. 교육감 선거도 결코 정치적 바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 현직 교육감에게 유리하다는 ‘재선 불패의 법칙’ 등을 확인한 선거였어요.
교육감 선거에서 “검찰정권 심판”?
정치적 중립에 대한 강조가 무색하게 교육감 선거도 그냥 선거입니다. ‘정당’이 아니라 좀 더 큰 범주인 ‘진영’으로 후보를 나눌 뿐이죠. 진보·보수 양 진영에선 일반 선거와 똑같이 표 계산기를 두드려 후보 단일화를 추진합니다. 선거는 때때로 오로지 승리(당선)를 향한 경쟁을 벌이며 매우 혼탁한 양상을 띠기도 합니다. 교육감 선거도 마찬가지예요.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은 2010년 선거에서 당선됐지만, 알고 보니 선거 도중 사퇴한 후보에게 돈을 건넨 사실이 드러나 수감 생활까지 했습니다. 곽 전 교육감 전임인 공정택 전 교육감도, 후임인 문용린 전 교육감도 모두 법원에서 선거법을 위반했다는 판단을 받았어요. 최근에도 하윤수 부산시 교육감이 2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는 등 교육감 선거도 일반 선거 만만찮게 ‘선거 후유증’에 시달립니다.
곽 전 교육감은 중도 사퇴하긴 했지만, 원래 이번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했었습니다. 그는 출마 선언문에서 “우리 교육을 검찰 권력으로부터 지키는 선거”, “윤석열 정권에 대한 삼중탄핵으로 가는 중간 심판” 등을 이야기했어요. 교육감 선거와 정치 선거 사이의 거리감을 거의 느낄 수 없는 말입니다.
홍인기 교육정책비평가는 지난 10월 2일 쓴 칼럼에서 이번 선거 투표 기준으로 ‘초중고 교육정책 전문성 여부’를 첫 번째로 꼽았어요. 너무 당연한 얘기를 이렇게 굳이 해야 할 정도로 교육감 선거는 각 후보의 교육정책 전문성보다 그가 속한 진영에 더 많이 휘둘리고 있습니다.
그냥 대놓고 정치하면 어떨까요?
“교육감은 ‘정치의 꽃’ 그 자체인 선거를 치름에도 ‘정치인’으로선 탈색된 존재나 마찬가지다.” 김서영 경향신문 기자는 2022년 교육감 선거를 앞두고 유권자 관심이 저조한 현실을 지적하며 이렇게 썼습니다.
어쩌면 교육감 선거의 진짜 문제는 정치의 개입이 아니라 비개입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정당 공천을 거치지 않았기에 정당이 홍보·지원에 나서지 않으면서 시민은 후보에 대해 더욱 알 수 없게 되고, 정당의 기초 검증조차 거치지 않은 후보들이 난립하게 됩니다. ‘민주진보’니 ‘중도보수’니 하며 후보 단일화에 몰두하는 양상은 역설적으로 ‘탈정치’를 지향할 때 더 극심해질 수도 있어요.
그래서 각 후보가 속한 진영을 그냥 공식화하자는 대안도 거론됩니다. 윤석열 대통령도 제안한 적 있는 ‘시장·도지사-교육감 러닝메이트’ 제도예요. 시장·도지사 후보와 교육감 후보가 한 팀을 이뤄 출마해 유권자의 선택을 묻자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선거 후 한 지역의 단체장과 교육감이 같은 철학을 공유하며 더 수월하게 정책을 집행할 수 있게 됩니다. 다만, 유권자가 아무래도 시장·도지사 후보에 중점을 두고 투표하게 되는 문제는 있습니다. 교육감 직선제를 사실상 폐지하는 셈이죠.
하지만 교육감을 사실상 비선출직으로 만드는 게 과연 맞는지도 따져봐야 합니다. 교육 역시 치안·세금·병역과 같은 하나의 행정 영역이라고 본다면 유독 교육감만 직접 선거로 뽑을 근거가 부족한 건 사실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제도예요. 다만, 교육감 직선제는 높은 교육열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특유의 풍토를 반영한 제도이기도 합니다. 교육감의 존재감과 인지도를 높인 것을 성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교육감의 독자적 영향력이 커진 이후 학생인권조례·혁신학교 등 굵직한 변화가 생겼다는 점이 이런 시각을 뒷받침합니다.
정치를 하면서 정치를 하지 않는 척하는 교육감 선거. 어쩌면 교육감을 정치적으로 탈색하는 게 아니라, 더욱 진하게 덧칠해 완전한 정치인으로서 대우하는 게 뜻밖의 해법이 될 수도 있습니다.
현행 교육감 선거의 폐해를 비판하긴 쉽지만, 직선제를 정말 폐지해도 될지 어떤 대안을 취해야 할지 의견이 분분합니다. 혼란스럽지만 당분간은 직선제 유지가 불가피한 게 현실인 듯합니다. 그렇다면 돌아봐야 할 지점들이 있습니다.
투표 못하는 학생, 출마 못하는 교사
교육에 관한 최고 의사결정자를 뽑는 선거이지만, 정작 실제 교육 현장에 있는 교사와 학생은 이 선거에 목소리를 낼 수 없습니다. 현직 교사는 피선거권이 없고, 정책에 대한 의견도 표시하면 안 됩니다. 투표권은 만 18세부터 주어지므로 고3 일부를 빼고는 투표할 수가 없습니다. 교육감 선거가 관심을 받지 못한다고 개탄하기 전에 교육의 주체들이 선거에 참여하지 못하는 현실부터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요?
경향신문은 2018년 교육감 선거를 앞두고 서울 휘봉고 학생들이 참여한 ‘모의선거 프로젝트’ 현장을 찾은 적이 있습니다. 학생들이 실제 교육감 후보를 두고 가상의 투표를 해보는 프로젝트였어요.
투표 전 후보들의 공약에 관해 토론할 때 두발 제한이나 야자 강요 문제를 언급하는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당시 혁신학교로 운영 중인 휘봉고엔 두발 제한·야자 강요가 없었는데도요. 자신이 직접 겪는 문제뿐만 아니라 전체 학생, 전체 공동체의 문제를 고민할 줄 아는 지성이야말로 유권자 시민에게 가장 요구되는 자질 아닐까요? 이러한 모의선거를 휘봉고를 비롯해 전국 17개 학교가 실시했는데, 일부 언론은 이를 두고 ‘교육 현장의 정치화’라며 부정적인 시각을 담아 보도했습니다. 이것을 과연 ‘나쁜 정치화’라고 볼 수 있을까요?
2022년 고교생에 선거권을 부여하는 법안을 낸 강민정 당시 민주당 의원은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면서 ‘정치화’ 우려에 대해 되레 “정치적이지 않은 게 있는가”라고 되물었습니다. 그러면서 “오히려 교육을 통해 정치적으로 유능한 시민을 길러내야 한다. 고등학교까지 졸업하고도 현실 문제에 무감각한 성인으로, 사회구성원으로 첫발을 내딛는다면 그야말로 12년 동안 받은 교육이 무색해지고 만다”고 했습니다. 독자님은 동의하시나요?
교육재정 ‘세계 1등’에 주어진 기회
교육감 선거에 진짜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 제도가 교육감에게 막강한 권한을 부여한 것에 비해 유권자의 관심을 한참 부족하다는 점일 거예요. 올해 경기도 예산은 36조원인데, 경기도교육청 예산은 21조원입니다. 여러 행정 분야 중 교육 행정이 전체 예산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겁니다. 교육감은 이 예산을 어디에 얼마나 쓸지 결정할 수 있습니다.
교육청 예산이 이렇게 많은 건 중앙정부가 보조하기 때문이에요. 정부가 거둔 소득세·법인세 등 세금의 일정 비율(20.79%)을 지방교육청에 이전하고 있습니다. 일정한 비율로 매년 들어오는 예산이 있는데, 저출생으로 학생 수가 줄면서 우리나라 학생 1인당 쓰는 공교육비는 세계 평균을 훌쩍 뛰어넘은 지 오래입니다. 이미 세계 최고 수준에 달했을 것이라고 보기도 해요.
하지만 늘어난 예산만큼 공교육의 질도 나아졌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쓰는데도 우리의 초·중·고 교육은 왜 이럴까’, ‘대체 교육당국은 그 많은 돈으로 무엇을 했을까’라고 질문이 나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공교육은 많은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교육 현장에선 수백억원씩 들여 모든 신입생에게 노트북이나 태블릿PC를 지급하는 걸 볼 수 있어요. 교육감 후보들은 ‘입학지원금’ ‘졸업준비금’ 같은 현금성 공약을 경쟁하듯 내놓습니다.
교육에 투자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다면 교육재정이 풍부하다는 점 자체는 문제라고 할 수 없습니다. 중요한 건 이 재정을 관리하는 교육감이 그에 걸맞은 철학과 자질을 갖췄는지 판단하는 일입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재정이 있다면 학생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을 누려야 마땅하지 않을까요?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교육감을 검증하고 판단할 기회, 직선제가 있습니다. 4년마다 찾아오는 기회를 진지하게 대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교육감 선거엔 정말 제대로 된 정치가 필요합니다.
◆ 교육감 선거는 얼핏 거대 양당 구도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교육감 후보의 당적 보유를 금지하는 등 철저하게 ‘비정치적 선거’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 교육감 직선제를 여러 차례 개선한 결과 더 중립적인 선거가 됐는지 의문이 들 뿐만 아니라, 외관상 정치적 중립을 유지하는 게 반드시 옳은지에 대해서도 생각할 여지가 있습니다.
◆ ‘교육의 주체’인 학생은 투표권이 없고 교사는 출마 자격이 없습니다. 교육의 질을 담보하기 위해서라도 교육감 선거에 대한 관심을 높일 방안을 고민해야 합니다. 교육감 선거에 필요한 건 제대로 된 정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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