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 앨버트 O 허시먼은 저서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Exit, Voice, and Loyalty)에서 기업·정당·범죄조직에서 국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조직과 개인의 선택에 관한 역동성을 연구했다. 허시먼은 조직에 불만을 느낀 사람들이 취할 수 있는 행동 양식을 이탈, 항의, 충성이라는 3가지로 분류했다. ‘이탈’은 쉽게 말해 손절,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것이다. ‘항의’는 목청 높여 불만을 제기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것이다. ‘충성’은 묵묵하게 조직을 지지하고 내부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를 말한다.
‘대통령 배우자의 도이치모터스 시세조종 가담 의혹 사건 수사 결과’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지만 검찰이 김건희 여사를 불기소하리라는 건 예견됐다. 윤석열 정권 출범 이후 전 정권에 대해선 ‘공격축구’, 현 정권에 대해선 ‘수비축구’로 일관해온 검찰이다. 검찰이 경로의존성에서 벗어나리란 조짐은 없었다. 이미 검찰은 김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의혹에 면죄부를 줬다. ‘현직 대통령 부인이 수백만원짜리 선물을 받았는데도 처벌할 수 없단 말이냐’는 지탄을 감수했다. 검찰총장 출신 윤 대통령이 검사 후배들을 정부 요직에 포진시키고, 검찰 지휘부와 핵심 포스트 역시 ‘친윤 검사’로 채운 의도가 충실히 이행됐다.
서울중앙지검이 지난 17일 내놓은 수사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을 비롯한 주가조작 주동 인물들이 김 여사에게 시세조종 사실에 대해 말한 적이 없다고 진술했다. 그들은 김 여사는 몰랐을 것이라고 진술했다. 김 여사도 전혀 몰랐다고 진술했다. 이런 진술들을 반박할 증거를 찾을 수 없다. 따라서 김 여사를 재판에 부칠 수 없다.’
이 사건은 2019년 7월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 후보자였을 당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현 여당에 의해 의혹이 처음 제기됐다. 시간이 꽤 흐른 사건이었으나 윤 대통령이 정치에 뛰어들면서 정치권과 언론의 관심이 집중됐고, 검찰이 2020년 4월 고발을 받아 수사에 나서면서 사건의 맥락이나 사실관계가 상당히 밝혀졌다. 권 전 회장 등 주가조작 세력 9명이 기소돼 항소심까지 유죄 판결을 받는 등 단죄도 이뤄졌다.
이 때문에 김 여사에게 면죄부를 준 검찰의 듬성듬성한 수사 결과에 의문이 쏟아졌다. 검찰이 브리핑하고 질문에 답하는 데 걸린 시간은 무려 4시간이었다. 사건이 복잡하기도 했지만 수사 결과가 신통치 않다는 방증이었다. 참고로 검찰이 지난 7월 대통령실이 지정한 장소로 ‘불려가’ 김 여사의 얼굴을 보고 조사를 한 시간은 대략 6시간 반이었다.
브리핑에선 김 여사가 주가조작 세력의 지시에 따라 통정매매를 했다는 강한 의심이 드는 사례, 어떨 땐 주식거래를 일임했다고 설명했다가 어떨 땐 자신이 직접 거래 주문을 넣었다는 김 여사 해명의 모순, 김 여사와 김 여사 모친이 이 주식거래로 거둬들였다는 23억원에 달하는 이득 등 풀리지 않은 의문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진땀을 빼던 수사팀은 급기야 일부 질문에 “해석하기가 어렵다”거나 “솔직히 모르겠다”고 실토했다.
꼼수도 부렸다. 검찰은 수사 초기 김 여사에 대해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됐다고 설명했고 언론은 이를 주요하게 보도했다. 알고 보니 검찰이 청구한 영장은 주가조작 사건이 아니라 김 여사가 운영한 코바나컨텐츠 후원 의혹에 관한 것이었다. 검찰은 평소 언론 보도에서 사실관계에 잘못이 있으면 기자에게 항의하거나 반박자료를 내는데 이 부분은 눈감고 지나갔다. 김 여사에 대한 서면조사 2번, 대면조사 1번에 그쳤지만 나름 최선을 다한 것처럼 보이려는 꼼수였다.
앞에서 말한 허시먼의 통찰은 윤석열 정권과 검찰의 관계를 고찰하는 데에도 유용하게 적용된다. 역대 검찰도 정권에 대한 충성과 항의, 이탈을 선택하면서 개인의 영달과 조직의 보전을 이룩해왔다. 검찰은 김 여사 사건을 연거푸 불기소하면서 윤 대통령에게 충성한다는 ‘굳은 결심’이 아직 흔들리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그렇지만 윤 대통령 지지율이 역대급으로 바닥을 기는 상황에서 검찰이 언제까지 윤 정권에 충성할 것인가. 김대남 파동, 명태균 파동 등 음습한 기운을 풍기는 사건이 연달아 터지고 있다. 언제 충성했냐는 듯 검찰에서 윤 정권에 대한 이탈과 항의가 나오는 건 시간문제다. 그날을 위해 오늘을 충실히 기록하고 또렷이 기억해야 한다. 주어진 책무와 국민을 배신하고 정권의 치부를 덮는 수문장 노릇을 한 이들에게 소환장을 던지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