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지난 17일 MBC가 방송통신위원회를 상대로 낸 과징금 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하면서 적지 않은 후폭풍이 예상된다. 법원 판결의 핵심 요지는 ‘2인 체제’로 운영된 방통위 행정 절차가 위법하다는 것이었다. 위원장과 부위원장 등 2인만 참여해 안건을 심의·의결한 것은 절차상 하자가 있다고 봤다. 방통위는 1년2개월째 2인 체제로 운영되면서 여러 안건을 심의·의결했다. 이에 반발해 제기된 소송이 법원에서 여러 건 진행 중인데 MBC 사건 담당 재판부의 판단이 다른 재판에서도 관철될 경우 방통위 처분·결정이 줄줄이 뒤집힐 수 있다.
판결문 “형식적인 절차 존중하기 어려워”
서울행정법원이 MBC 승소 판결을 하면서 내놓은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는 방통위가 ‘합의제 행정기관’이라는 점을 중요하게 봤다. 방통위법이 ‘상임위원 5인’으로 구성된다고 명시한 방통위가 위원장과 부위원장 등 2인으로만 운영됐다면 ‘합의’가 이뤄졌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외형상 법에서 정한 절차적 테두리 안에서 (의사결정이) 이뤄진 것처럼 보일지라도, 사실상 그 절차가 형식적으로 이뤄졌다면 그 판단에 대한 존중의 기초가 유지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위원들 간 합치가 이뤄지지 않으면 다수결을 따르게 되는데, 다수결 논의를 하려면 구성원들의 동등한 참여가 전제돼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구성원들이 동등하게 의사결정에 참여해야 심의·의결에도 정당한 근거가 생길 수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방통위는 2인 체제에서 의견이 갈리면 과반수 찬성이 있을 수 없고 오로지 일치된 의견으로만 의사결정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합의제 기능이 정상적으로 이뤄졌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방통위법상 최소 3인 이상 구성원의 존재는 의사결정에 필수 전제요건으로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2인 체제’ 위법성, 그간 제기된 소송은?
방통위가 2인 체제로 운영된 건 지난해 8월부터다. 방통위법상 위원회는 상임위원 5인의 합의제로 운영된다. 2인은 대통령이 지명하고 나머지 3인은 국회가 추천해 임명한다. 하지만 방통위는 이동관 전 방통위원장이 부임한 2023년 8월부터 ‘2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대통령이 임명한 2인만 있고 국회 추천 몫 위원 3인은 없기 때문이다.
이 기간에 이동관·김홍일 전 방통위원장이 중심이 돼 심의·의결한 정권비판 보도 관련 제재는 모두 44건이다. 일부 언론사는 이 중 11건에 대해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2인 체제’ 방통위 처분이 위법하다는 주장이었다. 11건 모두 본안 소송 전 효력을 정지해 달라고 낸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졌다.
지난 17일 선고된 MBC 과징금 제재조치 처분 취분소송은 11건 중에서도 처음으로 나온 본안소송 판결이다. 이 때문에 이번 판결이 다른 10건의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10건 중 5건은 MBC·KBS·JTBC·YTN 등에서 보도한 뉴스타파의 ‘김만배·신학림 인터뷰’ 인용 관련 보도다. 나머지는 ‘대통령 전용기 탑승 배제’ ‘대장동 사건 봐주기 수사 의혹’ 보도 등에 관한 제재였다. 이 밖에 권태선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해임취소 본안소송 등도 현재 진행 중이다. YTN 민영화 결정 본안소송은 다음달 29일 변론이 열린다.
방통위 2인 체제는 이·김 전 위원장에 이어 이진숙 현 방통위원장 체제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이 위원장은 취임 첫날인 지난 7월31일 자신과 부위원장 2명만 참석한 회의에서 KBS·MBC 이사 선임에 관한 안건을 심의·의결했다. KBS는 방통위 2인 체제에서 선임된 이사들이 참가한 이사회에서 박민 사장 후임 사장 선임 절차를 밟고 있다. 법원이 방통위 2인 체제에서 진행된 KBS 이사 선임이 위법하다고 판단할 경우 이들이 참여해 진행된 KBS 사장 선임에 대해서도 위법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2인 체제’ 이진숙 탄핵심판에도 영향 미칠까
야당은 방통위 2인 체제 운영의 위법성을 지적하면서 8월2일 이진숙 위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국회에서 통과시켰고,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심판 심리가 진행 중이다. 이 위원장 측은 그간 외형상 법적 절차를 지켰다는 논리를 펼쳤다. 하지만 행정법원이 합의제 행정기관 운영을 어긴 절차적 위법성을 명확히 지적한 만큼, 이 위원장의 탄핵심판에도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이 위원장의 출석 의무가 있는 헌재 첫 변론은 다음달 12일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