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무원, 엘무원, 현무원, 슼무원….
일자리를 연구하며 최근 1~2년 사이 부쩍 자주 들은 말이다. 재벌 대기업 이름과 ‘공무원’의 합성어로, 거기서 하는 일이 공무원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의미다. 10여년 전부터 유행한 ‘월급루팡’과 비슷해 보이지만 쓰임이 약간 다르다. 월급루팡은 주로 연봉은 많지만 하는 일은 없어 보이는 관리자들을 지칭한다. 그에 비해 ‘○무원’은 그 기업 직원들이 실망과 자조를 담아 스스로를 부르는 말이다.
여기서 엿볼 수 있는 것은, ‘대기업 정규직’이 꿈의 일자리인 것은 단지 연봉이 높고 워라밸이 좋아서, ‘네임밸류’가 있어서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중요하고 혁신적인 일을 하는 기업의 일원이 되어서 나도 의미 있는 역할을 하고 싶은 마음, 그 과정에서 함께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들도 존재한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 보니 내부에 혁신은 보이지 않고, 비효율적 의사결정에 대부분의 시간을 써야 하고, 그랬는데도 결국은 윗사람 말 한마디로 모든 게 결정되는 경험을 하다 보면 ‘그냥 공무원처럼 일하고 워라밸이나 챙기자’고 자조하게 되는 것이다. 요 며칠 사이에는 ‘삼무원’ 단어가 언론에 집중적으로 등장했다. 잠정 실적 발표 뒤 삼성전자 위기론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와중에서다. 특히 전영현 부회장이 실적 저조에 대해 사과하면서 “조직문화와 일하는 방법을 들여다보고 고칠 것은 고치겠다”고 한 말은 조직 내부에 대한 문제의식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점을 드러냈다.
이런 현실이 비단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은 국가 간 경제 불평등에 미치는 제도의 영향을 연구한 학자들에게 돌아갔는데, 그중 다론 아제모을루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와 제임스 로빈슨 시카고대 교수는 2012년 공저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남북한의 경제 발전 차이를 중요한 예시로 들었다. 남한은 포괄적 경제 제도를 채택함으로써 개인과 기업이 자유롭게 시장에 참여하게 하고 노력한 만큼 보상받도록 보호했으나, 북한은 착취적 경제 제도를 통해 소수 엘리트가 대부분 자원을 통제했고 그 결과 혁신과 성장이 일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한국인이 자랑스러워할 내용이다. 다만 이들이 한국의 다음 단계 성장을 저해하는 문제로 재벌 대기업의 지배적 영향을 지적했다는 점은 기억해야 한다.
이 문제의식은 기업 간 경쟁 상황에도 적용되지만, 대기업 내부에 대입해 보면 신기할 정도로 딱 들어맞는다. 특히 ‘착취적 제도’ 이론이 그렇다. 소수 권력자들이 조직을 통제하고, 실무자들의 역량 발휘와 참여는 제한적이며, 보상은 조직 위계에 따라 돌아갈 뿐 동기부여가 되지 못하는 대기업들의 상태가 북한과 꼭 닮아 있는 것이다.
다만 문제가 명쾌하다고 해법도 그런 것은 아니다. 북한 정권이 스스로를 혁신할 수 없듯이 대기업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아제모을루 등은 그래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등 국가 제도가 시장 참여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한 것인데, 한국 상황에서는 그쪽도 바라기 어렵다. 소수 권력자들끼리의 인맥 통치가 제도를 흔드는 중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삼무원’들이 자조적으로 비유한 대상이 바로 ‘공무원’ 아닌가. 생각보다 더 많은 의미를 담은 비유였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