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총재의 지역비례 선발제는 범주의 혼동은 있어도, 제안은 긍정적 계기가 될 수 있다
그에 비해 국가교육위원회가 내놓은 수능 이원화, 내신 지필평가를 외부기관에 맡기는 방안 등은 암담하다
이래저래 국가교육위원회는 대입제도를 또 한바탕 휘저어놓을 태세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최근 한국 교육의 미래를 놓고 오가는 소식을 보고 있자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국가교육위원회는 대입제도를 또 한번 한바탕 휘저어놓을 태세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난데없이 지역 비례 선발제를 들고나왔다. 진보교육계는 대학서열 해소를 외치지만 ‘해소’의 의미가 정확히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그 상태에 이를 수 있는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 도입을 추진하는 정부와 이를 반대하는 세력 사이에 정면충돌이 예고되고 있다.
이창용 총재가 제시한 지역 비례 선발제란 다음과 같다. 전국 고교생 가운데 경북지역 학생수 비율은 약 5%이다. 그러면 예를 들어 서울대 경영학과 입학정원 160명 가운데 5%에 해당하는 8명은 경북지역 지원자 중에 선발하는 것이다. 현존하는 지역균형선발처럼 수시의 일부 전형에 국한해 이렇게 하자는 것이 아니라, ‘SKY’로 대표되는 주요 명문대에서 수시든 정시든 할 것 없이 입학정원의 대부분을 지역별 학생수에 비례해 선발하자는 것이다.
지역 비례 선발의 취지에 공감한다. 나에게 이 제도에 대한 입장을 양단간에 밝히라고 요구한다면 오랫동안 고민해야만 할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이 총재가 뭔가 정곡을 놓치고 있다. 그는 ‘경쟁의 강도’는 내버려두고 ‘경쟁의 결과’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지역 비례’ 논의 더 확대되길 기대
‘경쟁의 결과’란 무엇인가? 바로 차등적 지위 배분이다. 명문대나 의대의 자리가 어떻게 해야 지방 학생에게 유리하게 배분될까? 어떻게 해야 특목고생이나 고소득층에게 불리하게 배분될까? 2018년 대입 공론화 과정에서도 정시파와 학종파가 이걸 주제로 치열하게 논쟁했다. 물론 중요한 문제다. 가뜩이나 수도권 집중이 극심한 나라에서, 더욱이 교육을 통한 금수저의 대물림이 심해지는 와중에, 이를 보정하려는 노력은 의미가 있다. 교육을 계급 재생산의 주요한 계기로 보는 사회학자나 경제학자들의 단골 연구주제이기도 하다. 이창용 총재도 2003년 ‘입시제도의 변화: 누가 서울대학교에 들어오는가’라는 논문을 낸 적이 있다.
‘경쟁의 강도’란 무엇인가? 경쟁에 들이는 시간과 노력, 사교육비 등을 말한다. ‘경쟁의 결과’가 개천에서 용이 얼마나 나느냐의 문제라면, ‘경쟁의 강도’는 용이 되려는 과정에서 얼마나 큰 스트레스를 느끼고 비용을 지불하느냐는 문제다. 둘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교육경쟁이 완화되면 계층이동이 활발해질까? 그러란 법은 없다. 예를 들어 한국과 독일을 비교해보면 한국이 독일보다 대입경쟁이 훨씬 심하지만 세대 간 계층이동(소득구간 이동)은 독일이 한국에 뒤진다.
이창용 총재의 방안에는 ‘경쟁의 강도’를 줄이기 위한 구조개혁이 빠져 있다. 기존의 대학 시스템을 하나도 건드리지 않는다. 지역 비례 선발제를 통해 ‘경쟁의 결과’만 바꾸자고 한다. 이렇게 되면 경쟁의 단위가 작아진다. 전국 단위 경쟁이 아니라 시도 단위 경쟁으로 분절화된다. 이창용 총재는 심지어 “대치동 학원들이 전국으로 분산”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사실 이와 비교할 만한 방안이 20년 전에 나온 적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인 2004년 정부는 2008학년도 대입 개편안을 내놓으면서 정시전형을 내신성적 위주로 선발하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아직 수시전형이 정원의 3분의 1에 불과해 정시전형의 향배가 중요할 때였다. 그런데 한국의 내신성적은 전 세계 유례없는 상대평가이므로, 강남의 상위 4%나 시골의 상위 4%나 똑같이 1등급을 받게 된다. 이렇게 되면 균등 선발 효과가 극대화된다. 이 개편안은 나중에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내신·수능·논술을 모두 잘해야 하는 이른바 ‘죽음의 트라이앵글’로 변질되고 말았고, 이 트라이앵글의 해체가 이명박 정부가 집권하자마자 처음 취한 조처들 중 하나다. 하지만 정부가 잘 관리해 애초의 방안이 실현되었다면 이창용 총재의 방안보다도 더 지역적으로 골고루 뽑히게 되었을 것이다.
문제는 고등학교 규모에 따라 문과·이과별로 수십~100여명 사이의 피튀기는 제로섬 경쟁이 벌어진다는 점이었다. 전국 단위로 경쟁하는 수능은, 적어도 옆에 앉은 짝꿍과 경쟁한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내신은 경쟁 단위가 작아 친구들이 모두 경쟁자로 느껴진다. 즉 경쟁의 단위가 ‘전국’에서 ‘학교’로 분절화됨에 따라 체감 경쟁 강도가 높아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처음 적용되는 2005년 고1 학생들이 첫 중간고사를 치르고 나서 자살하는 사건이 전국에 속출했고 사상 최초로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주도한 촛불집회가 열렸다. 당시 집회를 지원하던 청소년단체 대표는 “진보적 교육단체들에서 찾아와서 ‘이 제도가 얼마나 좋은 제도인데 그러냐’면서 나무랐다”는 후일담을 남기기도 했다.
물론 이창용 총재의 제안은 노무현 정부의 정책과는 다르다. 같은 분절화 정책이기는 하지만 ‘학교’보다 ‘지역’(아마도 광역지자체)은 훨씬 큰 단위이고, 따라서 이창용 총재의 제안을 받아들여도 체감 경쟁 강도가 치솟지는 않을 것이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이것이 그가 목표로 천명한 “과열 입시경쟁” 자체를 완화하기 위한 대책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부분적으로 경쟁 강도를 높일 여지도 있다. 강남 학부모는 좁아진 문을 비집고 들어가기 위해 사교육을 늘리고, 지방 학부모는 넓어진 기회를 잡기 위해 사교육을 늘릴 수도 있다.
국가교육위 기본 틀거지가 ‘이상’
그렇다 하여 반대한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그의 접근 방식에서 드러나는 범주의 혼동을 지적할 뿐이고, 그의 제안 자체는 긍정적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그에게서 촉발된 논의가 오히려 더 확장되고 새로운 제안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그에 비하면 국가교육위원회 산하 ‘중장기 교육발전 전문위원회’가 내부적으로 내놓았다는 수능 이원화, 내신 지필평가를 외부기관에 맡기는 방안, 고교평준화 폐지 등은 그야말로 암담하다. 특히 내신 시험을 외부기관에서 출제한다는 발상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어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물론 상대평가 내신에서 벗어나려다 나온 방안이라니 나름 이해되는 면이 있다. 석차등급이나 표준점수 같은 지표로 상대평가를 하는 나라는 없기 때문이다.
상대평가를 하면 무엇보다 과목 간 유불리가 극대화되어 물리 기피, 경제 기피 같은 현상이 만연한다. ‘학업능력이 우수한 학생들이 선호하는 과목은 기피 대상이 되는’ 부조리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을 제외한 선진국들을 보면 내신이든 대입시험이든 절대평가로 등급을 주든가, 점수를 주는 경우엔 원점수를 주거나 유불리를 계산해 보정한 점수(scaled score)를 준다.
그런데 한국에서 내신성적을 절대평가로 매기면 성적 부풀리기가 벌어질 것이 우려된다. 실제로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사이 몇년간 내신성적을 절대평가(수우미양가)로 매긴 적이 있는데, 중간·기말고사를 극히 쉽게 출제해 최대한 많은 학생에게 ‘수’를 주는 성적 부풀리기가 만연했고 그래서 도로 상대평가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절대평가를 도입하기는 해야겠고, 그런데 성적 부풀리기가 우려되니 내신 평가를 외부기관에 맡기는 방식을 생각한 듯하다.
비슷한 사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내신은 교사별·학교별 편차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몇몇 나라에서는 편차를 최소화하기 위해 특별한 장치를 둔다. 덴마크에서는 고교별로 일부 학급을 샘플로 선정해 표준화시험을 치르고, 이 성적을 비교해 고교별 편차를 계산, 내신성적을 보정한다. 캐나다의 여러 주에서는 주별·지역별로 치러지는 성취도평가 또는 졸업인증시험을 내신성적에 일정 비율 포함하도록 한다. 하지만 이런 경우도 내신 평가 자체를 통째로 외부기관에서 출제하는 것과는 엄연히 다르다. 무엇보다 담당 교사가 출제하지 않는 시험을 ‘내신’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형용모순이다.
무엇보다 국가교육위원회에서 내놓은 기본 틀거지가 이상하다. 오는 11·12월에 4차례에 걸친 토론회를 열 예정인데, 3차 토론회에서 대학의 재구조화 및 투자 확대, 교육·연구 경쟁력 강화, 교육재정을 다루고 4차 토론회에서 대입, 사교육, 대학서열화를 다룬다. 대학서열의 핵심이 대학별 극심한 재정 격차와 그로 인한 교육의 질적 불평등인데, 원인은 3차에서 다루고 결과는 4차에서 다루는 격이다. 이래저래 국가교육위원회에서조차 희망의 싹을 찾아볼 수 없으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서울대 학부에서 생물학, 대학원에서 과학사·과학철학을 전공했다. 박사과정 수료 후 수능 과학탐구 강사가 돼 ‘메가스터디’ 창업에 참여했다. 2003년 ‘일타강사’ 시절에 은퇴한 드문 기록을 갖고 있다. 이후 교육평론가, 정책전문가로 변신했다. 서울시교육청 정책보좌관, 민주연구원 부원장, 한겨레신문·시사인·허핑턴포스트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현재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지난 40년간의 한국 교육정책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주제로 연구를 시작했다. 저서로 <문재인 이후의 교육>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