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자들은 이 세계들의 기능장애를 분석하고 그 갈등을 보여줘야 한다. 사회학자들은 개인이나 집단에 소크라테스적 산파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1930~2002)는 1993년 12월7일 프랑스의 권위 있는 학술상인 국립과학연구원(CNRS) 금메달을 받는 자리에서 희망적인 수상 연설을 했다.
이 연설은 김홍중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가 2013년 <한국사회학>에 실어 국내에 알려졌다. 30여년 전 연설이지만 지금 들어도 어색하지 않다. 그러나 그의 희망과 달리, 언제부터인지 사회학을 비롯해 인문사회계열 학과들은 고사 직전에 몰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취업을 생각하면, 부모들부터 이쪽 전공을 말리는 일도 적지 않다.
올 것이 온 것인가. 대구대에서 사회학과 폐지를 결정했다고 한다. 대구대 사회학과는 다음달 7~8일 ‘사회학과 장례식’을 연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게 해준 사회학과의 죽음을 애도하는 추모 형식의 학술제다. 강의 개설 45년 만에 이 대학의 사회학과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니 안타깝다. 벚꽃 폈다 지는 속도로, 지방대와 지역이 소멸되고 있다는 그 위기의 신호탄일 수 있다.
고충을 이해한다 쳐도, 대학이 당장의 효용성만을 내세워 학과를 폐지하는 것만이 답은 아닐 수 있다. 사회학은 응용할 수 있는 영역도 많은 학문이다. 예컨대 새벽·로켓 배송으로 문 앞에 도착한 택배는 누가 어떻게 전달했는지, 요즘 시끄러운 명태균씨가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여론조사 결과를 조작했다는 의혹도 비판적·공동체적 시선으로 바라보고 사유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사회학이다.
그냥 하늘만 봐서는 얼마나 많은 별들이 떠 있는지 알 수 없다. 천체망원경으로 봐야 비로소 보인다. 우리 사회에서 사회학의 기능은 이런 것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사회학은 우리 모두에게 절실하고, 세상을 깊고 넓게 보는 눈이 되어줄 수 있다. 사회학과가 대학에서 자취를 감춘 다음, 입담 좋은 강사들의 입으로만 사회학을 듣는 일은 상상하기 싫다. 이젠 사회학자들이 세상 탓만 할 게 아니라 사회학이 시민을 위한 학문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